![]() | 오베라는 남자 - ![]()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다산책방 |
성깔있고 색깔있는 꽃할배들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세인가보다. 북유럽 문화 역시 바람결에 실려 와서 잠시 스치고 지나갈 유행은 아닌가보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노인> 이 그랬듯, <오베라는 남자> 역시 북유럽에서 왔다. Saab와 Volvo 자동차를 만들고, 전세계에 IKEA 가구를 공급하는 나라, 세계 최고의 복지로 교육, 건강, 연금, 노인복지, 사회복지가 모두 무상인 나라. 여행서를 보면, 도시는 너무 빈틈없이 깨끗하고, 음식은 맛이 없고, 물가는 너무 비싸다는 나라. 스웨덴의 사회적인 모습을 소설 속에서 접하니, 너무 과한 복지도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할배들은 어디서나 대체로 툴툴거린다. 늙어 허약해지기 전에도 그들에게 매사는 불만 투성이가 된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 버리는(p119)' 곳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가 그런 할배들을 보는 시선은 조금 너그러워진 듯 웃기고 귀엽다.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동이 젊은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밌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을 가진 세계를 홀로 살아가기란 힘겹다. 그 이해 불가능한 세계와 자신을 연결해준 유일한 끈이었던 아내 죽었다면, 자살만이 희망일 지도 모른다.
오베는 이제 죽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는 자신의 삶에서 지켜온 가치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신의 마을 거주지역 내에는 절대로 다른 차가 들어오면 안된되고, 방문자 주차구역에는 24시간 이상 다른 차들이 주차하하면 안된다. 재활용 쓰레기는 정확히 분리되어 있어야 했고, 자전거 역시 아무데나 세워두면 안되었다. IKEA에서 불필요하다고 했대도, 목재 가구에는 6개월 만에 한번씩 기름칠을 해야 했고, Saab 이외의 차를 모는 사람은 모두 머저리다. 아이패드를 파는 인간들은 사기꾼들이다. 난방장치를 틀어서는 안된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는 동일한 루틴을 반복하는 정확한 하루를 살아야 한다. 자명종이 없어도 아침 6시 15분에 눈을 떴고, 아내가 난방 온도를 높여 놓지 않았는지 체크했고, 매일 아침마다 커피 여과기를 사용해 정확히 똑같은 양의 커피를 만들어냈고, 아직 세상이 잠든 그 새벽 마을 시찰을 남긴다. 모든 것이 변함없이 원위치에 놓여있는지, 누군가가 어떤 머저리들이 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또, 40년간 살아온 동네가 밤사이 도둑이나 불량배들에 의해 기물파손 차량 화재가 발생했는지를 하루도 빠짐 없이 체크한다.
오베는 얼른 이 쓸모없는 머저리들이 판치는 세상을 떠나 아내 곁으로 가고 싶다. 그는 목을 맬 고리를 걸기 위해 천장의 치수를 잰다. 천장의 가장 정 가운데에 고리를 걸어야 한다. 처음엔 드릴 소리를 내기엔 이미 해가 져 있어서, 그 다음엔 새로 이사온 옆집의 임산부와 이웃들이 번갈아 초인종을 눌러대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로 목을 메었을 때엔 지 허접한 끈이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는 매일 다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어떤 날은 Saab 자동차 배기구에 호스를 차체와 연결해서 문을닫고 마시고, 어떤 날은 약들을 먹으려 하고, 또 어떤 날은 기차에 뛰어들고, 어떤 날은 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겨눈다.
죽기를 바라는 오베, 그러나 새로 옆집에 이사온 이란계 임산부 가족과 이웃들은 여전히 그를 귀찮게 군다. 막 목적을 달성하려는 찰라에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고 차고를 두드리고 불쑥 불쑥 나타나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막 죽으려 하면 고양이를 살려내야 하고, 또 막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때 막 커밍아웃하고 아버지에게 쫓겨난 소년이 집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또 이제는 진짜로 아내 곁으로 간다고 생각되었을 때, 발작을 일으킨 사람을 살려야 했고, 또 이번에는 죽겠지 라는 찰라에 영웅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끈덕지게 문을 두드린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도 멍청하고 가망이 없어서 그는 죽을 수조차 없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이루려고 하는 궁극적 목적이 죽음일 때, 작가는 주인공을 죽여야 할까 죽이지 말아야 할까. 살 이유를 찾지 못해 죽으려고 하는 오베는 세상의 문법이 통하지 않지 않지만, 세살백이 어린 꼬마의 눈으로 보면 온 세상이 흑백일 때 유일하게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재미있'고 '웃긴' 사람이다. 어두움과 밝음이 혼재된 세상, 밤과 낮이 함께인 곳, 상실과 배신과 고독과 외로움, 수많은 난관들이 오베의 인생을 관통했지만, 끝내 유일한 빛이었던 아내마저 59세의 나이에 잃었어야 했던 오베의 생은 어둡고 그늘진 속에서도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고집불통 외골수의 구제불능 캐릭터와 늘 함께였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와 그런 그를 이해하는 아내, 그걸 아는 오베, 그렇게 그들은 완벽한 한 쌍이었기에 그들을 찾아온 젊은 날의 참혹한 불행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방해하는 사건들이 꼬이고 겹치면서 드라마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대략 이야기의 방향을 예측 가능한 쪽으로 끌고가지만, 여전히 작가가 그를 진정으로 위해 죽음을 허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끝까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결국 그가 죽든, 그가 죽지 않든 그 죽음을 향해 내딛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눈물 겹고 웃긴 자잘한 감동의 디테일들은 이 소설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