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음악 뿐만 아니다. 한 시대의 청춘이 품었던 이상, 그 속에 핀 청춘의 그림자들을 향수와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겼다. 이제 그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김광석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항상 80년대의 좌절된 꿈이 또아리처럼 남겨져 있다. 그가 자신만의 깊은 울림을 음악에 남기고 스스로 떠날 수 밖에 없었음에 대해 시간이 지난 오늘, 김광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젊은날의 꿈을, 젊은날의 사랑을 젊은날의 슬픔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내가 평생 살면서 철학이라는 분야가 가장 난공불략의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몇 권의 철학 입문서를 읽었다. 꽤 오래전에 읽었지만 철학에 관련된 책이라고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늘상 머물러 있다가, 여러 종류의 입문에 해당하는 철학책을 읽은 것이 1~2년 사이의 일인데, 읽은 책들 중, 국내 저자가 쓴 책도 처음이고, 적어도 무슨 뜻인지 문장과 문단적인 차원에서는 이해를 한 책도 처음이다. 책 제목이 철학하기지만 김광석과 철학하기라고 해서, 김광석의 노래말과 인생을 옄은 에세이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대순으로 김광석의 노래 가사에 철학가들의 사상을 하나씩 대입하여 풀어나가는 철학책이다. 물론 김광석의 노랫말과 엮이다 보니 본문이 철학책 특유의 논문체보다는 조금 노골노골한 문체여서 읽기가 훨씬 편했고, 번역서가 아니어서 가독성도 좋았다.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김광석의 노랫말이 그닥 심오하고 철학적이라기 보다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언어라 하나의 철학 사상으로 풀이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는 것도 있었으나, 오히려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그랬다.
<거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사상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플라톤의 이상의 철학이, <나무>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철학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데카르트의 이성의 철학이, <사랑했지만>은 흄의 의심의 철학이, <이등병의 편지>는 칸트의 자기이성비판에서 밝힌 자기 비판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이, <타는 목마른으로>는 마르크스의 역사와 물질의 변증법이, <슬픈 노래>는 니체의 어린애와 같은 초인의 철학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이,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은 벤담의 공리주의와 밀의 의무주의를 잇는 롤스의 정의론이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저자 김광식의 몸의 철학이 각각 대응되어 소개된다. 저자 김광식은 가수 김광석과 모음 하나만 차이난다. 그리고 <말하지 못한 내사랑>에서 짝사랑에 대한 예로 광식이 동생 광수에 나오는 광식이까지 소개되어 광식과 광석이 못다한 짝사랑의 대열에서 하나가 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토대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을 설명하는 내용이 좋았고,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 롤스의 정의론을 끌어들이는 건 좀 억지스러웠다. 그동안 하이데거의 철학은 현존재니 거기니 어쩌니 좀 이상한 말들로 범벅이 된 외래 서적들을 통해 접한 사상은 알쏭달쏭 뭐라는 소리일까 싶었는데, 정말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이제 조금은 설명에 있는 만큼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죽음과 대결하라는 뜻은 생이 영원할 것처럼, 세상이 내게 부여한 존재의 의미나 가치들에 따라 살아가지 말고, 당장 내일, 혹은 한달 내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매순간 다시 못올 시간을 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쉬운 거였나. 죽음의 불안이 엄습하면 모든 일상적인 존재와 존재자들이 비본래적인 것이 되며, 죽음이라는 유한한 시간의 의미 앞에 세상이 부여한 모든 가치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존은 하루를 살아도 그 비본래적인 것을 버리고 본래적인 것, 죽음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라는 것이다. 아들 샌들러가 쓴 두꺼운 책에서 접한 하이데거보다 몇 장 안되는 이 책에서 읽은 많하이데거가 더 좋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의 가사는 매일 활짝 웃고 기다려주던 그녀가,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심플한 가사를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최소의 혜택을 받는 약한 자인 여자에게 최대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정의로운 사랑이다... 여자를 성실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은 만큼 여자에게 사랑을 주는 규칙을 원할 것이다. 왜냐면 내가 여자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사랑의 규칙이야말로 정의로운 규칙이며, 정의롭고 행복한 사랑을 가능하게 해준다(p322).' 나는 이 대목이 좀 서걱거렸다. 물론 이 대목과 다음 대목을 통해 롤스의 철학을 설명하는 것은 이해가 되었으나, 가사를 잘못 해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에서 중요한 것은 남과 여의 권력 구조가 아니라 사랑의 권력구조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너그럽게 용서하고, 더 보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베푼다. 그러므로 이 때 정의를 말하고 싶다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그녀(혹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녀(혹은 그)가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얻기 위해 약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덜 사랑하는 사람이 롤스의 정의를 따른다면 낭만은 강아지가 물어가고, 정의적 사랑이 판을 치게 될까.
간혹 학생들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는데, 적절한 철학자의 비유를 들어 보내준 답변이, 교수로서의 저자가 학교 내에서 학생과 교감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엿보게 했다. 여러 철학자들의 핵심 사상을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보니, 대체 왜 철학자들은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이 뒤짚어 엎고 파기될 철학을 죽기 살기로 연구하고 전파하였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였다. 감성이 중요했다가, 이성이 중요했다가,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는 변증법의 핵심이었다가 다시 물질이 정신을 지배했다가 시대를 따라 변하는 철학이란 게, 생각하는 방식을 굳이 어떠한 틀에 넣으려는 시도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