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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천명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 삼촌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

[도서]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천명관 저
예담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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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깡패들이 주인공이면 더더욱 싫다. 폭력이 생활 수단이 되는 것을 묵인하는 사회 구조를 또다시 영화와 문학에서 묵인한다는 것이 이 부조리한 사회를 묵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깡패들이 나와서 의리를 이야기하고, 조악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삶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몇년 전까지만 해도 판을 쳤었다. 이 소설도 깡패들이 나온다. 마초적이다. 힘자랑을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밌다. 소설이 소설답다. 소설이 소설답다는 것은 거기에 엄청난 양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거다. 술술 읽힌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전체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에 일단 쉽게 읽힌다. 


1편에서 생의 엄청난 굴곡을 경험했던 삼촌은 드디어 좀 잘 되나 싶었는데 산넘어 산, 강넘어 강이라고, 이제는 아예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쓴다. 그 누명을 혼자서 뒤집어 쓴 것은 바로 그 망할 놈의 사랑 때문이다. 삼촌은 사라진 연인(희망사항)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원정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1편에서 계속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마치 머리가 나쁜 것처럼 생각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원정을 사랑할 수 있을까.


중국집 여사장을 만나서 가게와 집을 상속받는 것은 너무나도 억지스러웠지만, 그것으로 인해 결국 젊었을 때 저질러 놓은 아들과 그 아들을 버린 잘못을 속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끼가 저지른 살인죄를 우연히 술마시고 횡설수설하는 삼촌에게서 알게된 '나'가, 그 사실을 이용하여 종태와 토끼와의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 부분은 눈을 뗄 수 없게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종태에게 닥친 최후는 처음부터 불운했던 종태를 설명하는 작가의 한 방식으로 해석하겠다. 


민주화 운동에 자신을 바치던 첫사랑은 자신이 사랑하던 정치적 야망이 뚜렸했던 선배를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았다. 그들의 하룻밤과 첫사랑의 끝은 90년대 민주화 운동에 몸바친 젊은 사랑들의 초상화다. 그 얼마나 공허한 싸움이었나. 그러나 그렇게라도 천천히 역사는 흘러갔고, 개밥에 도토리가 된 X투사들은 정렬을 쏟을 대상을 잃었다.


지겹도록, 온몸을 바쳐서 멍들고 찢기고 투옥되고 상처받으며 사랑한 삼촌은, 결국 온몸을 다치고 찢기고 그 예쁜 얼굴마저 칼로 그어져 상처나 버려진 여배우와 인생의 맨 끄트머리에서 함께 남은 여정을 가게 된다. 아무리 깡패들 나오는 소설이라지만 감격의 눈물이 안나올 수 없었다. 근래 읽은 소설중 몰입도 최고였다. 


원문 작성 : 예스 24 서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