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사랑은 언젠가 빛과 열이 약해져서 서서히 꺼지는 순간이 있겠지만, 약속이 실현되면 인연은 계속된다. 그러나 때로, 약속이 실현되기 전에, 약속을 만들기도 전에 인연은 끝난다. 짧고 긴 만남이 끝나고 끝과 끝 사이에 남아있는 물건들, 만져지는 것들, 망막이 초점을 맺으면 그 물건에서 반사되는 빛을 뇌신경 회로에서 처리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만남을 회상시켜준다. 어리석었던 첫 끌림과 바보같았던 사랑과 또 그렇게 수순을 밟고 지나간 언쟁들과 싸움들을 기억한다. 기억과 결합해 과거를 과거 속에 버려두지 않고 자꾸 현재에 끌고 오는, 그리하여 잊고 싶은, 잊어야 하는, 과거의 시간을 붙잡아주는 물건들이 있다. 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할까. 그것은 또다른 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혹은 또다른 너 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너와 내가 박제된 과거 속에서 아득한 망각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자꾸 떠올라 자맥질할 때 우리는 안다. 이제 그 물건이 떠나야 함을. 떠난 사람은 이미 떠난 것이고, 떠났지만 내가 보내지 못한 것들은 버림이라는 의식을 통해 기어코 외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라리오 박물관은 제주에도 있다. 제주에 있는 뮤지엄은 탑동모텔, 탑동 자전거샵, 탑동 시네마로 구성되어 있다. 낡고 오래된 근대식 건물을 완전히 허물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스란히 남겨놓은 것도 아닌 상태로 반쯤 부수고 반쯤 남겨놓았다. 과거의 흔적은 그렇게 지워진 것도 아니고 남아있는 것도 아닌 채 하지만 앙상한 뼈대와 세월이 짓이겨놓은 때국물 자국으로 남겨졌다. 탑동모텔의 오래된 객실 내, 타일로 만들어진 네모나고 깊은 욕실이 인상적이었다. 때궁물과 낙서와 바랜 흔적들로 남겨진 더러운 침대와 바닥의 일부와 문짝들은 다시 작품이 되어 전시되었다. 스스로의 목적과 이별하고, 실연당해 남겨진 낡고 더러운 건물의 잔해들이 새로운 목적이 된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어 스스로를 기념한다. 이렇게 돌고 돌다보면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떠날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까.
떠나보내면 잊혀질까. 버리면 기억조차 사라질까. 수많은 견딜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견딜 수 있는 시간으로 변했다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뮤지엄이 한쌍씩 두 개 있는데 입장료가 따로따로 만원가량. 시네마와 자전거샵만을 보고 말 작정이었다. 책을 읽었으므로, (입장료도 비싸고 해서) 탑동 모텔에 있는 실연 박물관을 굳이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근데 실연 박물관을 전시중인 탑동 모텔은 입장료에 커피값이 포함되었다. 커피나 마시기로 했다. 커피는 극적으로 맛있었다. 그 지극히 개인적인 헤어짐의 사연들은 책으로도 충분했다. 어떤 가족의 아빠가 즐겨타던 오프로드 지프차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기증한 가족들은 아빠에게 남편에게 쓴 편지를 함께 기증했다. 그게 인쇄되었던 페이지가 생각났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로비의 커피샵에서 커피마시며 인적 없는 제주의 탑동 거리에 잡아먹을 듯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의 열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닫을 시간이 다가오길래 한칸씩 올라가서 대충 돌아보았다.
이북으로 구매했던 책이라, 책을 펼쳐서, 오프로드 차에 관한 사연을 남편에게 읽어주었다. 늙어서 눈이 안보인다나 어쩐다나. 나는 뭐 젊은가. 몇줄 읽다가 목이 메어서.. 그냥 덮고 말았다. 개인의 실연이 박물관에 박제되다. 멋진가? 슬픈가? 개인의 실연이 인쇄된 책 속에 담기다. 슬픈가? 멋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