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
![]() |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 - ![]() 홍승찬 지음/북클라우드 |
음악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몹시도 지치고 힘들 때, 귓가에 들려오는 한줄기 음악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일상에 매몰되어 잊었던 사람을 생각나게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져주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은 말하지 않고도 감정을 전하는 국경 없는 언어이기도 하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2년반을 끌며 3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역사상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2차대전 의 레닌그라드 전투 중 지옥보다 처참했던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연주회는 작곡에서 연주회까지의 과정이 기적과도 같았다. 약골로, 참전하지 못한 쇼스타코비치는 독일군에게 포위된 레닌그라드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교향곡의 작곡을 끝냈고, 소비에트 당국은 이 곡으로 전투 의지를 고무시키고 싶어했다. 이미 볼쇼이에서의 초연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고 미국에서조차 앞다투어 초연을 하고자 경쟁했던 이 곡은 정작 레닌그라드에서는, 독일군의 포위를 뚫고 악보를 전달하는 것부터 역경이었다. 목숨을 걸고 악보를 전달한 공군 중위와 지휘를 맡은 지휘자, 시체실과 군부대에서 찾아낸 악단의 생존자와 일반 연주자들이 힘을 합쳐 어렵게 연습해서 기적같은 연주가 이루어지던 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가고 배고픔과 추위로 죽음과 가까이 있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전장에 있어야 할 군인들까지 다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로 모여들었다. 그 날 울려퍼진 이 교향곡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던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하여, 처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은채 버틸 수 있게 했다(p 226~233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요약)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늘 음악과 더불어 산다.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원하는 어떤 종류의 음악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거의 무제한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 문화 평등의 시대에 도달했다. 다른 곳에 쓰는 돈과 비교해봤을 때 거의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음악과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이 주로 음악방송이었고, 디제이들이 음악을 틀어주며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요즘처럼 음악을 취향껏 골라 귀에 꽂고 다니는 시대에는 라디오도, 음악보다는 토크쇼 위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이 책 <나를 꿈꾸게 하는 클래식>은 라디오에서 음악과 함께 들으면 더 좋을법한 내용들,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클래식과 팝에 한정시키지 않고 또 음악가나 음악 자체에 한정시키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을 자근자근 들려준다. 마치 클래식 라디오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은,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감정적이지도 않은 문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3~4 페이지의 짧은 글들의 모음인데, 전적으로 음악 자체에 대한 평론이 아니고, 음악을 사랑하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장소를 비롯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는다.
저자 홍승찬은 음악평론가면서 공연예술감독 및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장르와 관계없이 한국의 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클래식 음악과, 팝음악, 오페러와 뮤지컬, 공연예술 뿐만 아니라, 음악가의 사랑과 삶을 조명하기도 하고, 중국의 서태후나 우리나라의 김종필 전총재와 같이 역사적으로 공연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업적과 걸었던 길을 짚어보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 콰르네라와 스트라디바디 그리고 가장비싼 피아노 스타인웨이, 펜더가 신중현에게 헌정한 기타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하늘을 이고 있는 원조 호수 위 오페라 무대인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세계 최고의 시설을 갖춘 뉴욕의 카네기홀의 역사와 그 역사를 기록한 인물 등 세계 곳곳의 유명한 연주회장에 관한 일화들, 주목할만한 음악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의 음악 교육 이야기 등 음악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식적 이야기들을 많이 늘어놓았다.
예술가들의 사랑, 특히 음악가들의 사랑은 그들이 작곡한, 혹은 연주한 음악 내에 고스란히 사랑을 표현하고 그대로 복사되어 수십 수백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에, 그들의 사랑, 그 사랑 속에서 태어난 음악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지그리트의 목가>는 당시 둘다 유부녀와 유부남이었던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바그너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곡으로, 집으로 부른 작은 오케스트라가 계단 층계에서 연주하여 아직 자고 있는 부인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깨워 선사한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이 밖에도 30년간 한번도 직접 만나지느않고 편지로만 주고 받은 차이코프스키와 폰메크의 부인의 사랑,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이 탄생시킨 영감 역시 역시 시대가 이어준 감동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꼭지 읽고 그 속에 있는 음악을 찾아 듣고 하면서 읽었는데, 아무리 쉽게 음원을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가장 손쉽게 해당 음악을 액세스할 수 있는 수단은 유튜브라 유튜므에 의존하면서 들었는데,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찾을 수 없는 것과 딱히 어느 부분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책이 CD 혹은 다른 종류의 (공개) 음원과 함께 제공되었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음악과 음악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