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퍼드 픽오버] 한 권의 물리학
![]() | 한 권의 물리학 - ![]()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최가영 옮김/이한디지털리(프리렉) |
읽은 후까지 몰랐는데, 얼마 전에 리뷰했던 <수학의 파노라마>를 쓴 클리포드 픽오버가 쓴 책이다. 읽은지 얼마 안된 책과 포맷이 완전히 똑같아서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물을 한국의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했나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저자도 같았다. 이번에는 물리학이다. 클리포드 픽오버의 책은 국내 번역된 책으로 <뫼비우스의 띠> <우주의 고독> <신의 배틀> <오즈의 수학세계><수학 X 파일> 등이 있고, 아마존에 찾아보니 수학과 물리 뿐만 아니라, 의학, 뇌과학, 컴퓨터, 인문, 종교, 인간행동과 지능, 시간 여행, 외계생명, SF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4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분자생체물리학 및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디스커버와 오디세이 등에 기고하고 컴퓨터 전문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50여개의 특허까지 보유한 다재다능함을 출판물에도 유감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책의 두께는 600쪽 가량이고, 모두 완전 컬러에 백과사전적인 물리학 지식이 시대별로 나열된 것이 <수학의 파노라마>와 거의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책에서 물리학이 다루고 있는 시간 범위이다. 수학의 파노라마가 고대부터 시작한 것에 비해 이 책은 빅뱅이 탄생한 137억년전부터 시작해서, 물리학적인 시각으로 볼 때 마일스톤에 해당하는 총 250여가지의 물리학 개념들을 연대별로 소개하다가, 100조년 후의 우주소멸과 그 이후의 양자부활까지를 다루고 있다. 물리학의 개념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억겁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각 마일스톤은 더도 덜도 없이 딱 한 페이지의 설명과 그에 대한 일러스트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컴퓨터 그래픽, 상상화, 특허 자료 등 큰 종이를 가득메운 다양한 이미지가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겠다. 빅뱅의 시작과 우주 소멸로 끝나는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물리'라는 학문의 광대한 응용범위이다. 학창시절 물리 과목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고 하면 혹시 천재아닐까 싶은 마음에 존경스러울만큼 물리라는 학문은 복잡한 공식과 난해함이 먼저 떠오르지고, 또한 실제로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아직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불확실한 것들임이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라는 학문은 세상의 진리를 파헤치는 학문임에 틀림없다. 뉴튼을 비롯한 몇몇 위대한 과학자가 스스로 연구한 정교한 우주의 법칙에 압도되어 종교로 귀의한 것을 보아도 결국 물리학이라는 것은 우주의 비밀을 증명가능한 과학으로 캐고자 하는 학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선사시대의 투창기, 부메랑, 해시계, 트러스, 아치 등은 그 시대를 변혁시킨 주요 발견들이었을 것이다. 이후 기원전 2C 전후반으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사이폰, 부력, 양수기, 지구 측량법, 도르레, 발화거울 등이 나타나지만, 무려 1천년 이상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방대한 기간인 1150년까지는 마치 페이지가 뭉텅 빠진 것처럼 뛰어넘는다. 저자 픽오버의 선택이지만, 그리고 서양 물리학에 초점을 맞춘 책이기에 기독교가 지배했던 비과학적 문명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지만, 이렇게 긴 기간동안 그가 픽업할만한 물리적 발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후에도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의 우주관이 나오기 전까지는 투석기, 무지개의 원리, 모래시계의 시간 계산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후는 우리가 아는 것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고, 새로운 이론이 거듭 등장하면서 책장은 촘촘하게 연대를 채운다. 매력적인 그림들과, 시대와 시대를 가른 주요한 발견들을 페이지별로 할애한 이 책은 분명 그러한 포맷이 가진 장단점을 뚜렷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선택한 250개의 개념들은 물리학적으로 볼 때 우주 역사의 빅 히스토리에 있어 한 페이지를 차지할만한 주요 마일스톤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적인 개념들을 수식 없이, 개념적 해석 없이 깊이 있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쉽게 이해가능한 깊이 있는 물리학적 주재란 환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와 같이 포괄적인 개요를 읽고, 그 주제 자체를 이해할 수도 있다는 마음은 비우고 읽는 것이 좋다. 한 페이지 페이지에서 다루는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과 우주론, 카오스 이론, 쿼크, 힉스 입자 등은 한 권의 책으로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인 개요들이다. 한 페이지의 설명으로는 그냥 그런 것이 있다,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 정도를 포괄적인 차원에서 보았다는 것에서 만족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다시 말해, 즉, 피상적이고, 한페이지로 한정되어 있기에 보다 차원높은 주제들은 각 마일스톤의 개념을 파악하기에 그 디테일이 충분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물리학이 다루는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리학이 비행기를 날게 하거나 배를 띄우거나 빨래를 돌리거나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를 망가뜨리거나 하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것들을 해결하는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공식 같은 걸 이해하는 학문이란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궁극적인 것은 우리의 앎 너머의 것들,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종교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해가면서 우리를 스스로 자각하게 했던 것임을 생각할 때, 이렇게 긴 우주의 역사, 빅 히스토리 속에서의 물리의 위치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의의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