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밖 여운/소설

[하퍼 리] 파수꾼 - 각자의 파수꾼은 각자의 양심이야

guiness 2015. 9. 11. 11:39
파수꾼 - 10점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열린책들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p374)


많이 존경하던 사람에게 어느날 실망한 적이 있던가. 나를 단단하게 보호하던 성벽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세상을 비추던 밝은 빛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 보고 들은 모든 말,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나를 규정하는 단단한 가치관으로 쌓여 옳은 길로 인도하는 기준이었던 어느날, 우리는 우상의 실체를 깨달을 때가 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올 때도 있고, 천천히 다가올 때도 있다. 하나씩 하나씩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하다가 점점 틀어져서 완전히 생각과 행동이 완전히 나와는 다른 방향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될 때도 있다. 급격하든 점진적이든 어쨌든 그걸 깨닫는 날은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성장의 아픔을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돌이킬 수 없을만큼 생각이 달라서, 삶의 기준이 달라서 아프고,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모두 허상이어서 결국 인생은 혼자서 가야하는 길 이어서 서럽다. 


진 루이스에게 아버지는 우상이었다. 아이가 말을 배울때부터 침대에서 법률 책을 읽어주고, 세상의 정의를 가르쳐준 사람. 엄마의 빈 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자상한 아버지이자 친구였고, 아이들의 어리석은 질문에 끝까지 인내하고 대답하며 모든 지식을 알려주는 파수꾼이었다. 하퍼 리의 두번째 책 그러니까 이 책 <파수꾼>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독자들에게조차 역시 진 루이스의 아버지 애티커스는 기대고 싶은, 자상하고 민주적이며 정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파수꾼이 출판 소식이 전해졌을 때, 책에서 진 루이스가 애티커스에게 크게 실망한다는 내용을 흘려들은 독자들은 고민해야 했다. 깊이 감정이입한 독자들 역시 깊이 감동했던 애티커스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과 앵무새죽이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앨리배마 주와 당시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와 40~50년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전쟁이 끝난지 거의 백년이 가까와지고 있는 시점이지만, 참패한 남부는 타격을 받았고 가난했다. 여전히 미국은 흑과 백으로 인한 사상의 미국을 차이가 남과 북으로 확연히 가르고 있었으며, 그것은 흑과 백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첨예한 갈등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독자성을 보존하려고 싸운거야. 자기들의 정치적 독자성, 자기들의 개인적 독자성(p276)


남북전쟁은 승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노예해방 운동이었지만 남부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주의 독자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치른 전쟁이었다. 그들은 연방정부에 대항하여 주의 독자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앵무새죽이기와 달리,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진 루이스의 보수성이었다. 그녀는 앵무새죽이기의 배경이 되는 어린 시절에도 당시 여자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톰보이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무언의 진보적 성향을 내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파수꾼에서도 마찬가지로, 숙녀처럼 옷을 입고 숙녀처럼 조심성있게 행동하라는 고모의 말을 코로도 듣지 않으며 무시한다. 그러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가 찬송가를 변형해서 부르자 그녀 역시 뼛속까지 앨리바마 출신의 백인임이 드러나는 행동에 주목했다. 이것은 마치 진루이스가 애티커스의 인종차별적인 행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는 것 만큼이나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행간을 통해 시대적 의의와 인물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따져보아야 하는 건 하퍼 리의 책의 특징인데, 그런 이유로 앵무새 죽이기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꼼꼼히 읽겨 몇 번 반복해서 않으면 너무나도 많은 걸 놓치게 되는 소설이다. 성가대 지휘자에게 원래대로 불러야 한다고 얘기하는 장면은 이제까지 앨리바마주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흑인들을 대해왔던 방식으로 계속해서 흑인들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인종 문제는 인권에 대한 문제이므로 크게 다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고향을 , 그곳 사람들의 붙박이처럼 변함없는 생각을 증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사랑한다. 그녀 역시 주정부를 연방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 속 가장 반인륜적이었던 장소와 시대를 빠져나와 지난 날의 영광을 회상하며 흑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기를 거부하던 시대. 흑백 문제가 가장 첨예했던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 진 루이스가 평생 추억하는 애틋한 기억들로 가득찬 정겨운 곳이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청춘을 보내며, 진보적으로 사고(한다고 생각)했던 진 루이스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린다. 이 소설의 1/3 가량은 아버지에 대한 충격적 실망을 다룬다. 결국 뺨한대 맞고 정신차리고 성장하는 것처럼 흘러가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든, 일생에 한 번은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이세상 그 누구도 어떤 성인이라 하더라도, 완벽하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할 수는 없으며 만일 일치한다면 그것은 허상에 대한 허망한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이제 진 루이스가 아버지로부터의 그늘에서 빠져나와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고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결정해야 할 성인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과는 다르다. 믿고 따르던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이제 자신과 다르더라도 그 생각과 행동의 뒤편에 놓여진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도 함께 성찰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캘포니아가 자신을 남남처럼 대했을때 진 루이스가 받은 슬픔은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것과 다름없다. 그 반응을 통해 그녀는 겉으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하퍼 리는 언젠가는 진 루이스가 자신을 키워준 캘포니아가, 비록 월급을 받고 어린 형제들을 키워주긴 했지만, 자신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음을 그 가족을 떼어 놓고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서 희생하고 헌신한 것에 대한 대가는 그저 따뜻함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것임을, 역사의 잔인함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