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삼식이가 되자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했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 김훈, <칼의 노래> 중
예전부터,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그 말을 어디서 듣고 와서는 불쾌해했다. 자기 입에 들어갈 음식 하나 자기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무능한 퇴직 남편들에 대한 더 심한 농담들도 많다. 평생 가장으로 식구들을 먹여살리느라 밥을 직접 지어먹을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억울해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평소 차려주는 밥상에서 숟가락만 들 줄 아는 남자는, 전업주부 아내가 거울처럼 닦고 가꾸어놓은 부엌의 식기들과 정리해놓은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게 자칫 아내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쓸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남자의 요리를 막을 권리는 누구도 없다.
우리집에 사는 어떤 남자는 생각이 남다르다. 남자의 독립과 자유는 요리할 줄 아는 정도에서 나온다고 믿는 것 같다. 남자가 요리를 하면, 여자는 자유롭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냉장고 정리 차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냉장고에서 오래된 야채가 물이 질질 나오는 상태가 되거나 안먹는 반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소파위에 오줌싼 강아지처럼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냉장고 문을 열고 씩씩거리는 남자를 피해다니게 된다. 반면 밖에 나가 노는 측면에서 보면 여자는 자유롭다. 여자들이 어디 놀러갈 때 가장 부담되는 건 집에 있는 남자들 끼니인 경우가 많다.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집에 있으면, 남자가 집을 몇일 비우는 동안 오히려 집에 있는 여자가 끼니를 굶게 되더란 말이다.
우리 집에 사는 남자를 기준으로, 그리고 삼시세끼의 길다란 남자 차승원을 기준으로 만든 책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이탈리아나 중식이나 하는 완전 전문화된 요리책이다. 반면 이 책은 요리의 필요성도 모르고, 요리를 전혀 할 줄도 모르고, 요리에 관심도 없는 사람을 위해 요리의 필요성에 대해 쓴 책이다. 요리는 즐겁다, 요리는 필요하다, 요리를 할 줄 알면 여러가지 좋은 점이 많아,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한 권에 걸쳐 써놨는데, 형광펜으로 중간중간에 밑줄까지 쫙쫙 그어져있다. 뒤편에 레서피가 몇 개 있는데 그건 매우 유용하다. 저자에게 서민 교수의 글쓰기 책을 권하고 싶다. 내용이 있는 책을 쓰란 말이다. 어쨌든, 요리가 무서워서 혹은 와이푸가 무서워서 끼니 때마다 사먹는 영식이가 되지 말고 신선한 재료로 스스로 만든 음식으로, 당당한 삼식이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