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밖 여운/교양

[프레데릭 르누아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guiness 2014. 7. 24. 22:51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 10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장석훈 옮김/판미동


내게 철학은 너무나 졸리운  것이고, 내게 종교는 너무 편협된 것이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인류 역사상 아마도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분들이지만, 사실 그분들의 생애와 그분들이 전한 말씀,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론 믿고 있었다. 인류의 위대한 세 스승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를 함께 묶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오랜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서로 가까운 역사 속에서 살아간 위대한 성인 세 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한꺼번에 같은 차원에 두고 이야기한다.

 

역사속의 그들, 종교속의 그들, 철학 속의 그들을 같은 주제 하에서 만난다.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된 방법, 그들이 살고 죽은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유년기,  성 문제와 배우자 및 가족관계, 그들의 인격과 개성, 죽음을 맞이한 방법과 태도, 가르침의 방법 등의 인간으로서의 세 성인이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고,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이라는 주제로 2부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를 몇 가지 주제를 통해 보여준다.

 

우선, 가장 궁금할 내용 첫번째, 이 책은 종교적 영역과 논쟁을 떠나 있다. 책의 저자는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특정 종교에 대해 편향적인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다. 1부는 성인들의 인간적인 관점과 역사와 기록 속의 그들에 대해 다루지만, 신적 영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그 분들을 역사적으로 조명해볼 때 공통점이 많다. 가장 큰 특이성은 누구 하나도 직접 글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들이 실재로 존재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훨씬 부족하므로 학계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그들은 존재했었다고 받아들여진다. 붓다는 2500년 경 북부 인도에서, 그리스인 소크라테스는 2300년 전 아테네에서, 에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그들의 기록은 말로 구전되다가 제자들에 의하여 글로 옮겨졌는데, 소크라테스의 경우 사후 몇 년 뒤의 일이었고, 예수의 경우엔 사후 수십년 뒤, 붓다의 경우 사후 수백년 뒤에서야 그들의 말씀이 글로 옮겨졌다. 그 기록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점 더 퍼지고 방대해졌다.

 

그들은 직접 구두로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들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테네에 머물렀던 소크라테스는 시장과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말을 하였다. 그의 대화는 아이를 낳듯 논리와 진리를 낳는 과정이라고 해서 산파술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아늑하고 안정된 집을 싯다르타의 경우 세손이라는 권력조차 버리고,모든 것을 탈탈 털어버린 채 고행의 길을 자처하였다.

 

그들의 성 문제도 약간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나, 여자와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미소년인 알키비아데스에 빠져있었지만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왕가의 세손이었던 출가 전 싯다르타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둔 상태였으며, 난교도 서슴치 않은 채, 흘러넘치는 풍요와 육체적 쾌락의 극치 속에서 살았다. 예수의 경우는 독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 1945년에 발견된, 4세기 경에 쓰여진 외경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정부였다는 대목이 나오고, <다빈치 코드>에서도 이를 인용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지만, 저자는 논쟁을 피하고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역시 비슷했다. 붓다는 길고 긴 생애동안 수없이 많은 장소를 걸어다니며 불법을 설파하다가, 마지막 순간 열반에 들었지만,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당했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모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초연하게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들을 받들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시민법정에 섰지만, 배심원들을 향해 비굴하게 선처를 호소하는 대신 일장 연설을 함으로써 그들을 자극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한달 동안 격리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크리톤이 도망가자고 권유하지만 거절하고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며 초연하게 독배를 마셨다. 예수의 마지막 식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복음 사가들은 예수가 정치적 이유라기 보다는 대사제들을 모욕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본다. 그들 모두 죽음이 닥쳐도 자신들이 가르친 바를 저버리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죽음을 대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오래도록 면면히 흐르며 인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붓다는 의식을 잃고 열반에 들기 전 "굴레에 갇힌 모든 것들은 소멸되어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이 45년 동안 이어진 전법륜을 요악하는 말을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독특하다. 독배를 마신 후 자리에 누워 얼굴에 천을 덮고 온기가 빠져나가 죽음을 맞던 중 갑자기 얼굴에 손을 가져가 덮은 천을 들어 올리더니 크리톤에게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마리를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라고 말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으로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는데, 이 말에 매료된 철학자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료 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풀이했다. 소크라테스다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세요,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릅니다" 였다. 세 성인은 모두 공통적으로 무지를 악의 근원으로 보았고, 끊임없이 앎을 전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이해하기 쉽게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사상에 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는 책이다.  시대적 배경과 문헌 들의 내용, 종교로서 혹은 철학으로서 발전하기 까지의 과정과 여러 갈래의 주장들이 갈라졌다 통합되면서, 어떤 것은 이단이 되고, 또 어떤 것은 유일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 또한 흥미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