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리하는 뇌 - ![]()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와이즈베리 |
스스로 인정하고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산만하다.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멍때린다. 대화하다가 뒷북도 잘치고, 남들 웃을 때 나중에 웃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이유를 이제 조금 더 명확하게 알았다. 뇌의 중앙집중모드와 백일몽 모드의 대립 관계에서 백일몽 모드가 더 우수해서라고 한다. 백일몽 모드의 긍정적인 부분은 많은 생각의 고리들을 연결시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과 공감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는 말을 보니 창의력과 공감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른 부분들을 보상했으리라는 생각에 나름 위안이 된다. 산만하고 책상 어지럽히고 집안 잘 못치우고 하는 것들로 인해 실제로 스스로의 삶에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반대로 잘 치우고 정리도 잘 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에게도 그에 따르는 반대적 보상이 따른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유전자와 타고난 성향이 완전히 찌그른 건 아니지 않은가.
이처럼, 집중력과 창의력 사이의 시소 관계에 대한 부분이 첫 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책의 전반에 걸쳐 자주 환기된다. 물론 둘 다 강할 수도 있겠지만, 뇌의 백일몽 모드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영감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의식의 흐름에 모든 정신적 활동을 맡겨버리고 무아지경이 되는 시간이 그리 게으르고 낭비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에너지를 너무 많은 과제에 집중해서 쏟아버리는 일이 만사는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멀티태스킹에 존재하는 균형 역시 결국 집중력이냐 창의적이냐의 문제로 귀결될 때가 많다. 어떤 일을 하고 있다가 다른 일로 전환하는 작업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따라서 잦은 카톡 확인,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일은 그만큼 주의력을 새게 하고, 실수와 시간낭비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운전을 하면서 2~3분 신호대기 시간을 못참아, 카톡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데, 이러한 행위가 운전을 하는 데 있어 주의력을 분산시켜 사고 위험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카톡에 답하는 것 역시 인간관계를 위한 시간의 투자라고 보면 이런 쪼가리 시간에 멀티를 함으로써 전환에 빼앗기는 에너지와 거기서 취하는 관계적 시간적 이득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저항해봤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은 그 정의상 문제해결이나 창의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속적 생각'을 붕괴시킨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이 지속적 단위의 집중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문제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안했다는 고속도로의 번호 체계에 대한 내용이 완전 신기하고 재밌어서,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다가, 위의 백일몽 모드를 얘기했더니 더욱 궁금해서 몇 페이지 사진 복사해서 알려줬더니 너도 나도 책들을 주문했다고 한다(와이즈베리에서 상 줘야됨). 어찌되었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이럴 때 백일몽 모드와 중앙집중모드와의 뇌신경학적 구조적 대립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이해하는 데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책은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정리를 잘 하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내가 왜 정리를 왜 잘 못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어떻게? 뇌신경학적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문 과학적 지식들이 총동원된다. 어떤 종류의 정리를? 물론 책상정리를 비롯해서 친구 정리, 컴퓨터의 파일 폴더 정리, 비지니스 세계의 정리, 집안의 잡동사니 정리, 사회 세계의 정리, 시간의 정리, 어려운 일의 정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정리 등등. 이쯤되면 총체적인 인문학적 지식들이 망라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읽은 <잠의 사생활>을 비롯해서 여러 책들에서 소개된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책을 잘 안읽는 친구들이 이 책을 주문한 거 별 걱정 안한다. 여기에서 다루는 정리라는 것의 세계가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유용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 졌는데도 이미 얻은 정보를 무시하기 어려워 하는 경향(p228)' 은 사회적 판단과 관련된 인지적 착각이다. 한마디로 똥고집의 정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것인줄 몰랐던 최초의 지식은 잘못된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믿음 보존 편향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나 잘못된 사회적 정보가 만연한 사회에 기여한다. 편향에 의한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면 경력이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기도 무척 어려워진다
또다른 종류의 편향 중 기억해 할 것으로 내집단 외집단 편향이 있다. 각각의 집단은 다른 집단은 모두 획일적인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자기네 집단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복합적 집단으로 보본다. 예를 들어 인종관계에 대해 가르치는 학급에서 '흑인들은 ... 이렇게 느끼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좋은 질문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반대로 '백인들은 ...이렇게 느끼지 않나요'라고 하면 강한 반발감과 함께 밑도끝도 없이
백인중에는 보수, 진보, 유대인, 소수 계층 등 천차만별인데 백인이라고 한 범주로 사용하면 너무 폭이 넓고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연된 지역 감정은 좋은 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반감이 악의적으로 구조적으로 퍼져있는 상태에서 한 두 사람이 경험한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안좋은 존재는 그 지역에 대한 대표성으로 간주되기 쉽다.
시간의 정리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 역시 편향에 대한 부분이었다. 뇌의 각성 시스템은 새로움 편향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주인은 뇌의 주의는 거기에 쉽게 장악된다. 이것은 깊숙이 내재된 일부 생존욕구 보다 강력해서, 한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뇌의 영역이 반짝이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쉽게 정신을 뺏기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얘기했던 멀티태스킹과도 관련이 되고, 또한 새로운 중독과도 연결된다.
뇌에는 긴 사건을 덩어리로 분할하는 일을 전담하는 영역이 전전두엽 피질 속에 들어 있다고 한다. 덩어리로 나누는 것은 1) 명확하게 구별되는 과제를 줌으로써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행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2)분명하게 정의된 시작과 끝으로 프로젝트를 분할해 주기 때문에 인생의 경험을 기억하기 쉽게 해준다. 이것은 다시 기억이 관리 가능한 단위로 저장되고 검색될 수 있게 만든다.
통찰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에는 감마파가 함께 폭발하듯 터져나와 이질적인 신경 네트워크들을 하나로 묶어 주며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생각들을 일관성있는 새로운 주제로 엮어낸다 301
몰입 상태에서는 행위와 의식이 하나로 합쳐진다. 생각이 곧 행동이 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유를 경험한다. 몰입 상태의 한 가지 특징은 산만함이 사라진다.
노년층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작고 그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지만 젊은이들만큼이나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구결과 이런일이 노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 입증됐다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