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풀이 본능 - ![]() 데이비드 바래시 & 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 고빛샘 옮김/명랑한지성 |
저자 데이비드 바래쉬와 주디스 이브 립턴은 부부.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두 사람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각각 진화생물학자 및 인간행동생물학자로서도 학계의 명성을 가진 분들인데, 재미있는 건 이 유쾌하고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저자 데이비드 바래쉬는 미국의 악명높은 우파 단체가 선정한 미국의 가장 위험한 교수 101인에 꼽힌 인물이라는 점이다. 망할 극우파 무뇌들은 어디에나 존재.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고3의 아들의 고액과에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성적표를 보자 차마 대입을 앞둔 아이를 건드릴 수는 없고, 대신 어제밤에 취해 들어온 남편에게서 카드를 빼앗으며 술 좀 작작 먹으라며 바가지를 긁는다. 아침부터 부부 싸움에 화가 난 남자는 회사에 와서 부하 직원에게 그따위로 일하려면 회사 그만두라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상사에게 시달린 부하 직원은 퇴근해서 와이프에게 반찬이며 집꼴이며 사는 게 이게 뭐냐며 큰소리를 친다. 하루 종일 가사와 아이들 돌보기에 지친 아내는 다시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들을 두둘겨 팬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는? 아마도 큰 아이는 작은 아이에게 작은 아이는 강아지에게, 강아지는 개미나 땅벌레들에게라도 자기의 고통을 배분할 대상을 찾았을 것이며, 대략 이러한 시나리오로 고통 전가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원제는 "Payback : Why We Retaliate,Redirect Aggression, and Take Revenge" 로, 고통의 세 가지 전달 방식을 보복, 복수, 화풀이(3R)라고 보고, 인간, 사회, 집단, 동물이 가진 본능적인 행동인 고통 전가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들이 화풀이를 탐구하는 대상은 단지 인간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동물, 국가, 민족, 그룹 등의 예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문학작품, 그리고 동물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보여준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이 세가지 형태의 화풀이의 의미에 대하여 짚어보고, 화풀이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의 세계에서부터 민족, 국가, 그룹에까지 확대되는 하나의 본능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고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이요. 용서하는 것은 나 잡아 잡수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희생당하는 것은 이중의 고통을 낳는다. 실제적인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사회적 종속의 위험까지 얻는 것이다. 따라서 앙갚음은 문자 그대로의 목적 뿐 아니라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복구와 관련된다. 즉 내부의 호르몬 불견형을 해소해 주는 데다가 잃어버린 사회적 지위를 되찾게 해준다.
자연상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올리브개코 원숭이 수컷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풀이 행동의 관찰결과 수컷 개코원숭이는 싸움에서 패배하는 경우, 자신의 분노를 더 낮은 개체들에게 돌리게 된다. 그리고 이 때 화풀이 대상이 된 개체의 서열은 더욱 낮아진다. 이렇게 종속 스트레스를 전가한 개체들은 그렇지 않은 개체들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수치는 낮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개체에서 떠넘김으로써 종속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
민족과 국가, 종교간의 잦은 분쟁과 테러리스트 집단, 독재 정권 등이 자행하는 상호간의 보복과 학살에 대해서도 깊은 반목과 화풀이의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수십년간 국제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뜻모를 민족간의 분쟁에 대해서도 그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를 짚어줌으로써 그저 막연히 종교적 혹은 인종적 문제이려니 라고 지나쳤던 문제들에 배경적 이해를 친절히 도와주는, 그냥 앉아서 읽고만 있어도 상식이 쌓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좋은 책이다. 각 챕터별 주제는 많은 팩트들을 기반으로 한 각종 큼직큼직한 사건, 전쟁 등의 이야기들이 그 배후와 함께 풍부하게 설명되어 있고, 화풀이와의 고리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는 철학도 마음에 든다.
후세인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실패와 첫 걸프전 패배로 연이은 고통을 겪은 직후 쿠르드 족을 잔인하게 학살한다. 이 학살이 특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화풀이 뿐 아니라 '나는 호구가 아니야' 가설의 전형적인 예이기도 하다.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남부 연합군들이 자행한 이유없는 파괴 행위도 결국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KKK단 같은 테러리스트 단체를 통해 포악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의 폭력은 연합군이 아닌, 자신들보다 물리적.정치적 힘이 약한 사람들을 향했다. 연합군이 돌아간 그 곳에 남은 흑인들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본인 스스로가 어떠한 형태로라도 그러한 화풀이가 아무 죄도 없는 약자에게 고통을 전가함으로써 결국은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는 스스로의 결론에 대해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학자로서의 혹은 저술가로서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