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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 8점
루이스 캐럴 지음, 정윤희 옮김, 김민지 그림/인디고(글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이를 위한 책일까 어른을 위한 책일까. 나는 어릴 때 몇 번이고,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번 앨리스 책을 읽으려고 하다가 몇 페이지 못넘기고 만 적이 있다. 어릴 때는 너무 어려워서, 이거 아마도 좀 커야 이해할 수 있을꺼야 라고 생각했을테고, 커서는 이건 순수한 동심을 갖지 않은 한 이해하기 어려운 동화야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시리즈는 기이한 사건들의 연속적 발생과 엉뚱발랄한 대화들을 인내심있게 읽어 내려갈 동심도 필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언어 유희들 속에 담긴 상징과 패러디를 이해하기 위한 성인의 통찰과 지식도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먼저 언어유희 부터 이야기하자. 나갗느 한국의 독자들이 유독 앨리스 읽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상대로 나온 번역판이 대체로 충분히 원문의 언어가 나타내는 뜻에 주석을 달아놓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또한 원문 자체의 이중 삼중의 상징성을 애초에 우리나라 말로 옮기기 힘들어서이기도 하다. 다행히, 인터넷의 바다는 넓고도 깊지 않던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 두 개의 원문텍스트와  PDF 및 해석까지 제고하는 사이트를 찾아냈는데, 어제 밤까지 작동하던 사이트가 지금 이 순간(2015-11-08) 서버가 다운중이시다. 다행히 PDF를 다운받아 카르타에 넣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을 원문으로 읽었으나, 위대한 수학자의 언어유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영어 실력이 까막눈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성과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 언어 유희중 까막눈을 더욱더 두드러지는 까막눈으로 만드는 시가 재버워키인데, 우리말이던 영어이던 알아먹을 방도가 없지만, 영문 작가들에게는 칭송받는 루이스 캐럴의 최고 시라고 한다(나무위키). 재버워키. 읽기가 어려우니, 일단 한 번 들어보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알흠다운 목소리와 톤으로 읽어준다.




'Twas brillig, and the slithy toves
Did gyre and gimble in the wabe:
All mimsy were the borogoves,
And the mome raths outgrabe.
"Beware the Jabberwock, my son!
The jaws that bite, the claws that catch!
Beware the Jubjub bird, and shun
The frumious Bandersnatch!"
He took his vorpal sword in hand:
Long time the manxome foe he sought-
So rested he by the Tumtum tree,
And stood awhile in thought.
And, as in uffish thought he stood,
The Jabberwock, with eyes of flame,
Came whiffling through the tulgey wood,
And burbled as it came!
One, Two! One, Two! And through and through
The vorpal blade went snicker-snack!
He left it dead, and with its head
He went galumphing back.
"And hast thou slain the Jabberwock?
Come to my arms, my beamish boy!
O frabjous day! Callooh! Callay?"
He chortled in his joy.
'Twas brilling, and the slithy toves
Did gyre and gimble in the wabe:
All mimsy were the borogoves,
And the mome raths outgrabe.

시리즈의 첫권인 이상한 나라의 원제는  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1865) 혹은 Alice in wonderland지만 첫권 이후 약 5년 후 펴낸 두번째 권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의 원제는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1871)인데, 거울나라의 앨리스라는 한국어판 제목 일본어판 번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나무위키 : 거울나라의 앨리스)고. 이 시는 앨리스가 맨 처음 거울 속으로 들어가서 하얀 왕과 여왕을 만났을 때 탁자에 있던 책에서 발견한 시이다. 거울 속의 세계에서 글자들은 뒤집혀서 보인다. 처음에 앨리스는 모르는 글자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거꾸로된 거라고 깨닫자 가까스로 읽는데까지는 성공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쨌든 온갖 생각들로 꽉차고, 누군가가 어떤 것을 죽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후에, 앨리스는 험티덤티를 만나 언어의 쓰임새에 대해 논쟁하다가 그 시를 떠올리고는 시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시를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하고,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책에서 번역한 시를 해석해주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첫 네 소절은 이렇다. 

오네경, 미끈한 토브들이 
풀단지에서 맴돌며 송팡했다.
보로고브들은 전부 조비했고
녹돼지들은 길을 잃고 에취휫휫거렸다.

험티덤티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네경(Brilling)은 오후 4시를 뜻하는데 저녁식사를 위해 음식을 데우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미끈(Slithy)은 미끄럽고(lithe) 끈끈하다(slimy)는 뜻인데 여기서 미끄럽다(lithe)는 활동적인(active)과 같은 의미의 합성어다. 토브(toves)는 오소리(badgers)와 비슷하고 도마뱀(lizards)과도 비슷한데 코르크 마개 따는 기구 같은 것으로 해시계 밑에 둥지를 틀고, 치즈를 먹고 산다. 맴돌며(Gyre)는 뱅글뱅글 돌고 도는 것(go round)을 그리고 송팡(gimble)은 송곳으로 팡 하고 구멍을 뚫는 거다(to make holes like a gimlet). 그러자 앨리스는 응용력이 생겨 풀단지(The wabe)는 해시계를 둘러싸고 있는 풀로 된 단지 같은 거겠네요(grass-plot round a sum-dial) 라고 상상하는데, 험티덤티는 해시계 앞뒤로 아주 길게 뻗어 있기 때문이라며 설명을 덧붙인다. 조비(Mimsy)는 조잡하고(flimsy) 비참하다(miserable)는 뜻, 보로고브(Borogove)는 아주 작고 허름해 보이는 새(Thin shabby-looking bird)를 뜻한다. 이렇게 한참을 언어의 쓰임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책에는 원문 단어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괄호 속의 원단어들은 내가 사이트에서 찾아서 매치한 것이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도 없을 뿐더러 재미있을 리도 없다. 영어권의 아이들보다는 영어권의 언어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스토리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조금 부장님 개그 같은 말장난도 보인다. 각다귀와 만난 앨리스는 사물의 이름에 대해 논쟁한다. 각다귀는 만일 이름이 없으면 공부를 하라고 부르지 않을테니 이름을 갖지 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앨리스는 자신에게 이름이 없어도 미스라고 부를테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각다귀 왈 그러면 미스라고 부르면 대답하지 않으면 수업을 미스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라는 그런 시시껄렁한 말장난이지만, 만일 사물에 이름이 없다면, 이라는 꽤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름이 없는 숲으로 들어간 앨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잊고, 또한 자신의 이름을 잊은 사슴을 만나 서로를 껴안는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은 자신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슴은 자신이 사람을 보면 도망가야 하는 그 사슴이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앨리스를 껴안지만, 숲에서 빠져나온 사슴은 이름을 기억하고 숲으로 내빼버린다. 존재를 기억해낸 그들은 서로 피해야 하는 숙명적 관계마저도 기억해냄으로써 사슴은 도망가버리고, 앨리스는 슬퍼하게 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원더랜드에 다녀온 앨리스가, 6개월 후, 거울 속으로 다녀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스토리는 아기 고양이와 체스를 하다가 꿈을 꾼 이야기다. 거울 속으로 들어간 그 꿈 속에서 앨리스가 마주한 세계는 체스판위에 건설되어 있고, 앨리스 자신은 폰(Pawn)으로 마지막 여덜칸인가 까지를 무사히 이동을 하면 여왕이 된다. 앨리스는 딱히 모험이랄 것은 없지만 하나의 칸마다 다른 생명체들을 만나고,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아주 이상한 행동과 말들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마음 고생을 한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꿈을 꿀 때 목적지를 향해 어딘가를 열심히 가기보다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배경이 나도 모르게 바뀌는 것과 같이, 앨리스 역시 자신도 모르게 배경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렇게 배경이 바뀌었다는 것은 체스의 한 칸을 갔다는 걸 말한다. 

얼마전에 읽은 대칭의 세계라는 과학 서적에서 앨리스가 다녀 온 세계는 아마도 반물질의 세계일 것이다라고 했던 설명이 생각난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내의 양성자와 전자의 전하가 바뀌어 반양성자와 음전하가 되면 그것이 반물질이다. 우주는 대칭적이다. 우주의 탄생과 그 우주의 가장 원초적인 입자의 대칭성은...인간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반사람일 것이다. 반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모든 나사는 오른쪽으로 돌리면 풀어지고 왼쪽으로 돌리면 조여질 것이다 시계는 반대쪽 방향으로 돌 것 글씨는 모든 사람이 다빈치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생명체의 DNA나선은 왼나사 방향으로 꼬여있을 것이다. 약력은 물질세계와 반물질세계에서 거의 똑같이 작용하지만,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스핀이라고 불리우는 물리량이다. 전자의 스핀방향과 반전자의 스핀방향이 반대이고 양성자의 스핀방향과 반양성자의 스핀방향이 반대이므로 물질과 반물질의 세계는 거울 속 세계처럼 모든 스핀이 반대가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대칭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삶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끄는데, 루이스 캐럴은 거울 속 세계를 매력적인 혼돈의 세계로 상상했다.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를 만난 세계에서 앨리스는 잠들어 있는 붉은 왕을 만나는데, 트위들디는 앨리스가 잠들어 있는 붉은 왕의 꿈속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붉은 왕이 잠을 깨면 앨리스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트위들들을 포함한 주변 사물 그리고 앨리스는 지금 잠들어 있는 왕의 꿈에 나오는 여러가지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진짜가 아니며 왕이 깸과 동시에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에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린다. 나중에 앨리스가 자신의 꿈에서 깨어나자, 흰여왕과 붉은 여왕은 모두 집에서 함께 키우는 아기 고양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셋이 함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 앨리스가 매트릭스를 비롯한 현대의 여러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구석구석 루이스 캐럴이 만들어놓은 여러가지 황당한 이야기 조각들에는 정말로 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환상과 과학 사이의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