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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도서]통제 불능

케빈 켈리 저/이충호,임지원 공역/이인식 해제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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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캐빈 켈리는 과학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 창업자 및 초대 편집자이고, 이 책을 1994년에 썼다. 20여년동안 국내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었는지, 2015년 11월에 초판 1쇄라고 나와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최신 기술과 미래를 전망하는 종류의 책이 20여년이나 넘게 이제서야 번역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용이 양적으로 너무 방대한 까닭에 어느 출판사에서건 어느 역자건 그동안 이 책을 번역할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로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이제서라도 나온 이유는 책자 맨 뒤의 작은 글씨 '이 책은 해동과학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공학한림원>과 김영사가 발행합니다.'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잠재적인 독자층의 수요를 생각해봤을 때 재단의 지원이 없이는 만들어 내기 힘든 책이다. 또 한가지는, 20여년전에 쓰여진 혁신 기술적 관점이 20여년전에는 미래였던 오늘날 읽어도 유용하려면, 과학 기술을 전체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가능하다. 


반도체 집적 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나고 가격은 두 배 이상 내려간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20여년전의 컴퓨터 성능과 오늘날의 컴퓨터 성능은 비교 불가다. 기술의 발전 역시 비교 불가다. 인류의 미래는 기술의 미래가 결정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다양한 측면들을 들여다봄으로써 거시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그 거시적 방향의 커다란 줄기가 생명과 기술의 결합이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조작하기 시작하게 된 아주 초기부터 기계가 추구해온 것은 인간의 능력을 흉내내고 인간의 동력을 대치하는 것이었다. 도구에서 기계로 진화하고 그것들이 단순한 종류의 로봇이 되기까지 그것들의 원초적 목적은 인간의 수고를 대신하는 것이었고 궁극적 목적은 인간과 같아지는 것이다. 학습하는 기계의 가능성과 철학에 대한 노버트 위너의 책 <사이버네틱스>가 나온 해는 <킨제이보고서>가 나온 해와 같은 1948년이었고, 킨제이보고서 만큼이나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후 1~2년 안에 전자 제어 회로가 산업계에 혁명을 가져왔다. 기계들은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되먹임 구조를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다. 


기계들은 점점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생물의 전 집단이 속한 생명계를 닮아간다. 책의 초반에 개미와 꿀벌 집단의 집단 마음에 대해 나온다. 꿀벌이나 개미들의 집단 행동은 마치 그들 집단 전체가 하나의 뇌를 가진 것처럼 매우 효율적으로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데, 반면 개별 개미들이나 꿀벌 개체들 각각은 무뇌인 듯 별 생각없고 무식하다. 그것들이 상호 네트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움직이면 가장 효율적인 생전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리를 측정 불가할만큼 시력이 나쁜 개미는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최단 경로를 탐색한다. 서로에게 방출함으로써 서로에게 경로를 남기는데 쓰이는 페로몬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증발되기에 도시들 사이의 경로가 짧을수록 남겨진 페로몬이 많고, 이러한 자기 강화 효과에 의해 짧은 거리 탐색 알고리즘이 동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병렬 컴퓨터에 적용된다. 병렬컴퓨터는 분산 네트워크로 설명되는데, 오늘날 일반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알고리즘 언어는 순차적이고도 논리적인 과정으로 처리되는 것에 비해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다. 


당연히 인간은 순차적으로 생각한다.당연히 인간은 순차적으로 생각한다. 컴퓨터 언어는 인간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므로 마찬가지로 순차적으로 실행된다. 어떤 복잡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중간 계산 결과를 끊임없이 중간 단계의 장소에 저장하고 그 값을 다시 다른 것과 연산하고 비교하면서 컴퓨터의 처리가 이루어진다. 셀수 없는 갯수의 인간의 뇌세포들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개별적이면서도 총체적으로 연결되어 행동하지만, 막상 인간이라는 하나의 총체적 전체적 사고와 행동은 논리와 언어라는 사고 순서에 의존해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세포들이 상호 작용하여 한 단위 한 조각 조각의 생각과 행동들의 연속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벌들과 개미들의 집합적 사고와도 닮았다. 책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은 아니 '다세포 생물은 본질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거대한 병렬 코드를 운영(601)'한다. 이 때 분산된 개별 프로세서들은 개미 혹은 개별 세포들처럼 매우 단순하여 존재/비존재, On/Off의 조합만으로도 처리의 일부가 된다. 


만일 컴퓨터를 인간의 지적 작용이 아닌, 인간의 원초적 메카니즘과 닮게 하려면 진화적 코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진화란 우연의 산물이다. 하나의 성공이라는 우연 속에는 수천 수만의 실패라는 또다른 우연이 있다. 그 실패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새로운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진화적 알고리즘은 컴퓨터 분산 시스템의 결실이 될 수 있다. 병렬 알고리즘을 이용해, 실제로 진화적 메카니즘을 만들어낸 여러 예들이 제시되어 있는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읽기에 애로사항이 많긴 했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적응은 어떤 구조를 새 구멍에 맞게끔 구부러뜨리는 행위이다. 반면에 진화는 구조 자체의 아키텍처-구부러지는 방식-를 다시 개조하는 더 깊은 변화로, 종종 다른 구조들을 위한 새 구멍을 만들어낸다. 659


이렇게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진화의 그 개념이다. 다만, 인간의 도구로서, 기계 혹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은유적으로 쓰다보니 책에서는 모든 개념들이 은유와 실제 단어 사이에서 매우 혼동되기 쉽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기계가 진화한다는 뜻은, 그 기계가 어떤 목적을 위해 변화하는데, 물론 그 변화는 우연성에 기인하며, 엄청난 실패들이 버려지고 남은 하나를 말한며, 그 변화가 또다른 새로운 변화를 계속 불러오면서 새로운 메카니즘이 탄생하는 걸 말한다. 그 예로 리처드 도킨스의 바이오모프를 들었는데, 책에서 읽을 때는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게적어놨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니 30초만에 쉽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생명체의 모양이 어떻게 진화 가능한지를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보여주는데, 초기 생물체는 가장 단순한 점 혹은 선 모양으로 되어 있고, 동물들이 갖는 기본 특성인 대칭성을 비롯해서 아주 간단한 몇몇 규칙이 다음 세대 모양으로 변형되는 주어진다. 그 모양 변화를 위한 알고리즘에 몇가지 변수들을 주면, 이 세상에서 하나의 점 혹은 선으로 비롯하여 서너 개의 규칙에 의해서 생성될 수 있는 모든 모양이 몇만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2차원적인 모양이고 스크린 크기에 제한되어 있다. 그 모양은 때로 나비같아지기도 하고 지상에 있는 상상 가능 혹은 상상 불가능한 모든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을 보면 사람의 모양이, 혹은 동물의 모양이 복잡한 진화 과정을 통해 어떠한 아주 작은 순간의 변이에 의해 생성되었을거라는 비장한 생각마저 든다. 



책을 쓴 저자의 열정을 생각하고, 1천페이지 분량의 책을 내놓은 출판사 및 역자들을 생각하면 책을 읽는 일조차 미안해질 정도다. 방대한 양의 참조와 지식을 끌어들여 기계의 생물학적 진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끌고가는 저자의 열정과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통찰하는 도발적인 은유들은 감동적이지만, 때로 장황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인문학적 기술의 한계로 인해 피상적으로밖에는 기술하지 못할 너무 많은 양의 기술적 실례를 철학적 은유와 비유로서 한도끝도 없이 늘어놓다보니 읽는 일이 때로 고역이었다. 철학적 비유의 남발을 적절한 수준에서 끊고 명료한 의사 전달을 했다면 페이지수도 절약하고 좀 더 즐겁게 책을 읽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두껍고 (분명 남지도 않을) 책들을 출판하고 번역한 분들께 존경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