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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기호학과 추리의 공통분모

[도서]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

움베르토 에코,토머스 A. 세벅 공저/김주환,한은경 공역
이마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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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기호라고 하면 얼핏 생각하기에 컴퓨터 자판 상에서 특수문자류에 해당되는 기호들이 떠오른다.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면, 교통표지라던가, 화장실 표시 같이 문자 대신 간단한 그림으로 글로벌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표시해놓은 모든 표식이 생각난다. 


책의 제목은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 라고 되어 있는데 책의 초장부터, 기호학자 퍼스의 연역법, 귀납법, 그리고 가추법에 의거한 추리와 홈즈의 추리를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추리와 기호학 사이의 연결관계를 셜록 홈스의 예를 통해 논한다. 


기호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 읽기 시작했더니 텍스트 자체의 흥미는 논외로하더라도, 당췌 책 제목과 텍스트 상의 관계를 잡지 못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읽으면서 차차 기호라는 것의 광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 쓰인 원제 The sign of three에서 sign을 기호로 보았을 때 얼른 생각나는 뜻이 우리가 한글로 기호라고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와 차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멍청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홈스의 추리와, 기호의 관계가 쉽게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호 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수학 기호와 고속 도로의 사인판에서 볼 수 호텔, 주차장, 휴게소 표시 같은 것은 서로간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인간의 인지적인 요소를 통해 그 기호를 해석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상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하여 읽어내는 행위,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지각하는 것과 연관된다. 어느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잃고 밤늦게까지 헤매다가 교통표지판에서 침대처럼 그려진 아이콘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 침대 표시가 호텔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텔에는 침대가 마련되어 있고, 호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잠을 자기 위한 것이므로 표지판에 침대 그림이 그려져 있다면, 그것이 주차장일 가능성도 없고, 세차장일 가능성도 없다. 우리는 경험과 직관을 통해 도로변의 침대가 어떤 의미인가를 해석한다. 쉼터나, 병원이나, 호텔이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속된 문화적 체험은 그것을 호텔이라 판단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목욕탕(온천) 표시가 더 친근할테지만, 외국인들은 그 모텔의 목욕탕 표시를 보고 한국에는 시내에 온천이 엄청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홈스가 단서를 통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기호를 해석해내는 것과 통한다. 과학자가 관찰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낛시꾼이 찌의 흔들림을 감지하고, 고고학자가 뼈의 상태로 과거를 유추하고, 빅데이터가 미래를 예측하고, 아이들이 부모의 표정을 보고 기분을 알아내는 것들 그것들의 공통선상에 그 어떤 것을 파악해내는 단서를 여기서는 기호로 이야기한다. 


홈스는 신발에 묻은 적색 흙이라는 기호를 통해 왓슨이 멀리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부치고 왔다는 매우 상세한 추리를 해 내는데, 여기서 신발에 묻은 적색 흙은 기호이며, 추리 방식은 퍼스가 주장한 가추법에 의거한다. 퍼스는 논증의 세 가지 기본에 기존에 알려진 연역법, 귀납법과 함께 가추법을 꼽는다. 가추법을 이야기하려면, 연역법과 귀납법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역법은 규칙과 사례로부터 결과에 도달한다. 귀납법은 반대로 사례와 결과로부터 규칙을 도출해낸다. 퍼스의 예로 이 두가지의 차이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연역법

법칙 : 이 주머니에서 나온 콩은 모두 하앟다.

사례 :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결과 : 이 콩들은 하얗다. 


귀납법

사례 :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결과 : 이 콩들은 하얗다.

법칙 : 이 주머니에서 나온 콩은 모두 하얗다. 


연역법은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논리구조지만, 이를 통해 아무런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지 않으며 따라서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근대 과학의 기본적인 논리 구조인 귀납법은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가능성은 많지만 그 새로운 지식들이 엉터리 추론일 가능성도 많아진다. 가추법은 한술 더 떠서 결론의 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형편없고 불확실한 논증방법이다. 가추법은 규칙과 결과로부터 사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다시 콩 예로 돌아온다면 


가추법

법칙 : 이 주머니에서 나온 콩은 모두 하얗다. 

결과 : 이 콩들은 하얗다.

사례 :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 주머니'라는 경험만 있는 사람이 이러한 가추법으로 추론한다면 오해로 가득찬 세상에서 불행히 살게 될 것이다. 다른 주머니에서 나온 콩들도 하얗고, 주머니에 애초 들어있지 않던 콩들도 하얀데, 그는 오직 '이 주머니'만을 알고 그 하얀 콩들의 출처에 대한 확신을 안고 죽을 것이다. 


내가 쥔 콩들을 가진 주머니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내가 모르고 있는 주머니에는 또 어떤 색깔의 콩들이 들어 있을까. 


주제가 좀 샜는데, 책은 쉽게 생각하면 홈스와 퍼스의 기호와 추리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부터 너는 이 파트, 나는 이 파트 이렇게 나누어 맡아서 쓴 책이 아니라, 퍼스의 기호학과 셜록 홈스의 추론을 함께 엮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의 글들을 엮은 것이다. 에코의 글은 그 중 하나다. 여기서 얘기하는 기호라는 광의의 개념을 이해하고 학술적 백그라운드만 있다면 그닥 어렵지는 않을 내용이지만 조금 추상적이고 학술적인 관점의 글들이라, 잔재미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제각각 쓴 글이라, 전문가들에게는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읽히겠지만, 디테일한 학술적 논쟁을 즐겨하지 않는 독자에겐 중복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상당 부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