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여러 감각 중 가장 쓸모없는 것 하나만 골라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몸을 아프게 만드는 통증을 고를 것이다. 통증이 진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몇 해전, 통증이 없는 남자가 맞는 일을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다가 여자 친구를 만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병이 있었고, 실상은 영화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실제로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IPA)'이라는 병을 가진 한별양은 아픔을 통해 자기 몸을 보호할 수가 없게 되어, 수없이 뼈가 부러지고 살갖이 찢기는 등,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관절과 다리는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발목부터 고관절까지 연골은 모두 닳아없어졌고, 걸을 수도 없다. 통각은 몸을 위험에서부터 가장 먼저 감지해주는 보호장치인 것이다.
감각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 그리고 생존의 역사와 같다. 빅뱅 137억년 전, 지구 탄생 46억년 전, 최초의 생명 탄생 39억년전, 그리고 30억년간 박테리아와 조류 등의 단세포 생물이 지속된 이후, 진화 역사상 빅뱅에 대적할만한 변화의 시기,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5억 4천 2백만 년전부터 4억 8천 8백만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일어났는데, 그 이전까지의 생물이 그저 물컹물컹한 단백질 덩어리가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자기 몸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플랑크톤을 소화해 다시 그 구멍으로 뱉어내는 일을 하는 단순한 존재였다면, 그 기간동안의 폭발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의 직접적 접촉과 더듬이를 통한 감각이 전부였던 생물체에 눈이 생겨나면서, 이것이 진화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 캄브리아 말기, 어떤 우주적 사건에 의해 지구상에 빛의 스위치가 켜졌고, 삼엽충이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을 뜬 삼엽충은 먹이를 독식하며 생존경쟁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고, 이후 모든 동물들이 삼엽충의 신체적 특성을 갖게 되는데, 특히 눈은 최초의 능동적 포식자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더욱 강한 기능을 장착한 생물체를 등장시켜 포삭자가 피식자가 되는 정글같은 시대를 도래시킨다. 이러한 먹이사슬 속에서 눈의 진화는 가속화되며 수많은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다. 현재 인간의 뇌는 약 40% 가량이 시각 정보 처리에 할애되어 있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감촉을 느끼고, 코로 냄새맡고 하는 모든 종류의 감각들을 실제로 처리하는 것은 뇌이다. 각각의 감각 기관은 물리적, 화학적 정보를 받아들여 이를 적절하게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변환하고 내보내는 역할만 할 뿐, 그러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일은 뇌가 한다. 만일 태어난 갓 아기 고양이의 눈을 꿰매어(실제로 이런 잔인한 실험을 진행했다) 못보게 했다가 나중에 풀면 그 고양이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뇌가 처리할 수 없어서 여전히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13년간 모든 외부의 신호와 차단된 채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던 소녀가 구출되었을 때, 아무리 가르쳐도 언어를 배울 수 없었다. 이런 예들은 태어난 후 뇌가 자극을 통해 시냅스들의 연결을 어떻게 이루느냐에 따라 감각의 처리라는 두뇌와 인지적 지능적 활동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운동 피질은 행동을 계획하고 움직임을 실행하는 기능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이다. 전운동 피질의 영역은 시각적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짧은꼬리원숭이는 연구원이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자 전운동 피질의 뇌가 활성화되었다. 자신이 직접 하는 행동이 아님에도 남이 하는 행동을 보고 그가 하는 행동에서 일어나는 똑같은 뇌의 활동이 일어나는 현상이 공감 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발화하는 신경이 거울신경이다. 거울신경은 타인의 마음이나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바탕이 된다.
EBS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감각의 제국>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감각을 처리하는 두뇌의 작용에 대해 치중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두뇌의 작용이라는 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5부작의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묶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보인다. EBS 다큐를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편당 몇 파트로 나뉘어 제공하고 있다. 글자가 제공하는 것과 시각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므로 동영상을 함께 보면 감각을 처리하는 두뇌의 작용에 대해 더욱 풍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