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고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흔히 알고 있듯 1960년대에 제기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라는 두 단계의 작업모형은 아직까지도 유효하지만 현재의 발전된 모델이 설명하는 시각에 의하면 너무 단순하다. 기억은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뇌 구조가 작동하며, 기억 형성과 회상에 관여하는 중요한 기관은 해마가 관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을 떠올리는 데는 전두엽 피질의 관여도가 점점 높아진다. 기억의 종류는 서술기억, 일화기억, 절차기억, 의미기억, 공간기억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렇게 구분된 기억의 활동은 뇌의 각기 다른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시냅스 강화라는 활동이 관여하는데, 기억의 형성과정은 시냅스 강화 활동인 '기억 흔적'이 장기기억장소로 옮겨져 '응고' 과정을 거친 후, 이 기억흔적은 몇분에서 몇 시간 간격으로 재활성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장기기억저장소에서 불러내 강화하는 과정은 '재응고' 과정인데, 불러낸 직후의 기억흔적이 불안정해져서 잘못 수정되거나 조작될 수 있다. - 게스 <뇌과학.. 50..> 리뷰 중 2016.6
한 인간의 기억과 재생이 어떤 한 인간의 일부를 규정하는가? 대체된 기억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총질과 활활타는 불길이 난무하는 액션극이지만, 영화는 내내 이 주제를 관통한다. 어릴 시절 학대로 전두엽 발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범죄자 제리코는 감정이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다. CIA 요원 빌은 미국의 핵무기 제어 시스템을 해킹한 해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요원인데, 테러단 쫓겨 뇌사 상태다. 인류의 파괴가 목적인 테러단은 CAI의 목을 죄어오고, CIA는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단서를 가진 유일한 사람인 빌의 기억에 접속하여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사이코패스 사형수 제리코에게 빌의 기억을 이식시킨다. 물론 끔찍한 두통과 함께 깨어난 제리코는 머리속을 어지럽히는 이상한 생각의 조각들의 정체에 대해 알 길이 없고, 자신의 암묵적 기억이 자아내는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성질머리 급한 CAI 헤드는 그가 쥐뿔도 기억해내지 못함을 알아채고 '치워버리라'고 명령하나, 짐승같은 범죄 본능을 가진 사이코패스는 여러 번의 위기에도 살아난다.
제리코가 직면한 혼동은 원래 자신의 본능에 역행하여,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감정을 갖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빌의 감정 기억의 핵심을 차지하는 아내와 딸에 대한 애틋함이 함께 이식된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야만적인 범죄인인 제리코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빌의 집으로 찾아가서 자기도 모르는 번호키들을 이용해서 문을 열고, 용의주도하게 빌의 아내를 만나 하는 행동, 제리코를 쫓는 CIA와 테러단을 자유자재로 상대하여 따돌리고, 후에 위험에 처한 빌의 아내와 아이를 목숨을 걸고 구하는 한편 핵미사일로 세상이 박살날 위기에서도 구하는 영리함은 대표되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무감정 제리코의 거대한 몸집에서 우러나는 무식한 행동과 대조를 이루면서도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후에 제리코의 기억 속에 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빌의 아내와 빌의 딸은 제리코에게 마치 빌의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하지만, 제리코의 야만적 본능은 과연 빌의 기억에 의해 씻겨진 것일까? 빌의 아내는 사랑하는 '죽은'남편의 기억이 이식된 남자를 남편의 화신 혹은 아바타 정도로 여기는듯한데, 여기에 또다른 질문이 또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만일 내가 죽고 나의 기억이 다른 사람에게 심어진다면 그는 나인가? 적어도 나의 일부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한 시간과 감정과 의미들을 그대로 기억하는 타인을 만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만일 내 아빠가 내 할머니가 나의 어린시절 함께 했던 모든 기억과 감정과 의미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식한다면, 나는 그 타인을 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니( 아 생각만 해도 슬프고 아련하고..그립다)..
이 때 두 가지는 분명 충돌한다. 제리코에게는 야만적 행위에서 느끼는 쾌감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는 감정을 느낄수도 읽을 수도 없는 사이보그 같은 존재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는다는 감정에 대해 알 길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은 감정이란 게 없다는 것만을 인지하고 있던 그가 빌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어떤 슬픈 감정, 제리코는 그걸 영원히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억이식술은 48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만 가동한다. 빌에게서 심어진 학습된 기억은 서술기억, 일화기억, 절차기억, 의미기억, 공간기억 등 빌이 생을 통해 획득한 모든 정신의 토대다. 이 심겨진 기억은 제리코의 본능을 삼키고 얌전히 현대 사회에 적응하게 할 수 있을까? 제리코의 본능과 빌의 기억이 만들어낸 이성과 감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높은 정신활동 그 두가지 상반된 영혼은 제리코의 몸에서 어떤 괴물을 낳게 되지는 않을까? 빌의 아내와 딸이 제리코에게 느끼는 감정이 깊게 이입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씩 웃는 케빈 코스트너의 미소가 열린 결말로 섬뜩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