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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수십년 광고 인생 노하우가 농축된

[eBook]카피책

정철 저
허밍버드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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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물론 어떤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말을 만드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범위를 넓혀 생각한다면, 카피라이터의 카피 만들기 노하우는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도 적용할 기회가 많다. 사람과 사람과의 의사 소통과 지식전달은 주로 말과 글로 이루어지니까 그렇다. <한 글자> 및 <내 머리 사용설명서>를 읽고 정철을 놓아하게 돼서 생각없이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마지막에 강조한 것처럼 카피는 광고 속에만 놓여있는,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이 아니며, 일상을 유쾌하게 만들고, 세상을 더욱 따스하게 할 수 있다. 명함과 청첩장, 연하장, 자동차 뒷유리에 붙이는 초보운전 표시, 간단한 상품평, SNS 와 문자 메시지에 올리는 일상 풍경 등 모든 것이 카피가 될 수 있다. 


정철은 확실히 말과 글을 요리조리 비틀고 분해하고 조립하여, 글자들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준다. 책에는 그가 맡았던 광고 카피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효과적으로 상품에 대한 카피를 만드는 방법을 35가지로 분류하여 말해준다. 35개의 각각의 주제는 풍부한 예시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광고 카피의 실례를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미 수도 없이 듣고 보고 해서 거의 생활 속의 하나가 된 카피들을 분해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을 감동시켰는지 혹은 외면받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왔다. 


카피라이터가 만들어내는 일은 시인들이 시어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순수한 시를 상품을 팔기 위한 불손한 광고와 비교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시가 주는 감동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와는 달리 카피는 메시지 전달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바로 카피라이터가 어떤 단어들을 통해 소비자의 닫힌 마음을 뚫고 들어가느냐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 규칙들을 들어보면 이렇다. 


구체적으로 쓴다. 

'서울보다 훨씬 저렴한 파격 분양가!' 대신 '용인에 집 사고 남는 돈으로 아내 차 뽑아줬다'가 구체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뚫을 것이고, '연필심이 금방 닳지 않아 오래 쓰는 연필' 대신 '연필 한 자루로 팔만대장경을 쓰다, 연필깍이는 타임 캡슐에 넣어두세요(학생들 작품)' 같은 카피가 구체적이다. 


낯설게 불편하게 조합한다. 

닳고 닳은 편안한 조합의 문장은 눈길을 끌지 못한다. 어딘가 불편해야 눈이 모인다. 8월의 크리스마스, 살인의 추억, 우아한 거짓말, 성실한 나라의 엘리수, 거북이 달린다, 너나 잘하세요 같은 조합이 그렇다. 


쪼개 쓴다.

짧게 썰어 쓰면 흥미, 통일, 단순, 강조, 설득을 녹여놓고 싶다면 짧게 쓴다. 긴 문장은 두 문장이나 세문장으로 쪼갠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더하기는 평이한 문장에 흥미로운 단어를 더한다. '사장님을 대머리로 만드는 방법' 뭔가 아쉬운 문장에서 대머리 앞에 홀랑을 집어넣는다. '충남도민은 이 사람의 재선을 당근이라고 말한다'에서 말한다 앞에 짧게를 넣는다. 이것이 더하기이다. 빼기의 예는 '행정, 도민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 농업, 전문가와 경쟁력을 키웁니다 / 교육,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꿈꿉니다 / ...'로 이어지는 카피의 모든 행에서 압축적으로 중간 단어들을 제거하여 ' 행정, 듣습니다/ 농업, 키웁니다/교육, 꿈꿉니다/... 처럼' 만드는 것이다. 이 때 더하기가 '밖에서 쓸만한 놈을 데려와 쑤셔넣는 일이라면 곱하기는 곱하기는 그 문장 안에서 찾는 것이다. 앞의 대머리 카피의 경우는 '사장님을 대머리으로 만드는 방법'이 되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을 공부합니다'가 된다. 나누기는 헤드라인과 서브헤드로 나누는 걸 말한다. '(헤드) 밥입니다. (서브) 쌀로 만든 삼양 쌀라면, 든든한 한 끼가 됩니다' 와 같이


말과 글 가지고 장난을 친다. 

반값 등록금 집회 현장에 사용된 피켓에는 '반값습니다'라고 적었다. '넌 못해/ 넌 못할거야./ 넌 못할 줄 알았어//가슴에 못을 박는 말입니다./ 못은 가슴이 아니라 벽에 박는 물건입니다' 못한다는 단어에서 벽에 박는 못이라는 단어를 이끌어내었다. (아재 개그가 카피의 소재가 된다)


인기, 유행, 관심을 훔쳐온다.

세상에서 주목하는 이슈에서 멀어지면 광고 역시 주목받지 못한다. 싹스탑이라는 양말 광고는 온 나라가 남북정상회담에 주목하여 시끌버끌할 때 '백두에서 한라까지 양말부터 통일하자'는 센스있는 카피를 썼다. 


힘을 뺀다.

불필요한 느낌표, 물음표, 따옴표, 쉼표, 말줄임표는 군더더기이다. 감동은 강요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언어를 사용한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1956년 카피라는 개념도 없을 때, 대선당시 정권과 맞선 민주당은 후보 신익희는 이 전설적인 구호를 처음 썼다.골목을 뛰어다니던 똥개도 이 구호를 짖고 다닐 정도로 온 나라를 휩쓸었던 구호인데, 안타깝게도 신익희 후보는 선거를 열흘 압두고 유세하러 가던 호남선 열차 안에서 급사했다고 한다. 정권 교체의 열망이 그렇게 무너져갔다. 저자는 이 구호를 살려서 2010년 민주당 카피에 이렇게 활용했다. 


1. 못살겠다 갈아보자

4대강 삽질 때문에 딱 죽게 생긴 개구리가 말했다. 

2. 못먹겠다. 갈아보자

무상급식 반대하는 권력에게 숟가락이 말했다

3. 못보겠다 갈아보자

권력의 시녀들이 방송국을 접수하자 리모컨이 말했다.

4. 못믿겠다 갈아보자

청년실업에 두 손 놓은 권력에게 청바지가 말했다. 


이 광고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버스 광고로 만들어진 이 광고가 버스에 붙여지자, '버스운송사업조합인가 하는 곳에서 서울 시내 버스는 정치 광고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난데 없는 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누가 이를 주도했는지 심증만 있었을 뿐 물증을 갖지 못했다고.


리듬을 살린다.

있다/없다. 길다/짧다, 켜진다/꺼진다와 같은 대조되는 리듬을 살린다. 'VTR을 켜면 어학 고민이 꺼진다.', '기름은 없다. 기술은 있다(S-OIL), 정치는 짧고 교육은 길다(강금실 후보), 기업의 높이보다 기술의 깊이를 생각합니다(금호건설), 잘 벗어야 잘입는다(LG트롬 스타일러).등 수도 없이 많은 예가 대조적 리듬을 사용했다. 그 중 북녘에 나무보내기 운동본부의 카피는 울컥한다. '사람이 못가면 나무가 갑니다 /  북녘땅에 내 아이 이름표를 단 나무를 심어주세요' 두줄짜리 헤드라인 역시 갔네/가네, 했다/한다와 같이 반복적 대조적 문구로 리듬을 살릴 수 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문재인이 우여곡절끝에 가까스로 단일화했을 때 하루만에 만든 카피도 이를 잘 활용했다. '같은 꿈을 꿉니다 / 같은 곳을 봅니다 / 같은 길을 갑니다' 쯧 아직도 씁쓸한 그 때의 단일화. 마지못해 한 단일화, 마지못한 표정.... 


꽝 하고 마무리.

반전도 좋고 행동을 유도해도 좋다. 마지막엔 쾅 하고 심금을 울려야 한다. 짠~한 공익 광고 하나가 마음을 적셨다. 비싸서도 못입지만 이 글을 보니 절대로 밍크를 입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삽니다.....밍크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삽니다. 


뚱딴지같은 헤드라인

헤드라인이 엉뚱하면 궁금해서 바디를 읽어보게 된다. 예를 들어 '택시요금 2,500만원' 이런 헤드라인을 보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게 된다. (낛시를 하려면 미끼를 잘 던져야.) 헤드라인이 엉뚱할수록, 뚱딴지 같은 수록, 말이 안될수록 소비자 시선은 그 광고에서 쉽게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시된 것 중  '박원순은 박원순이 아니다' 역시 시선을 끌었다. 바디가 긴데, 그 중 일부를 옮겨오면 '...박원순은 대한민국을 더는 한나라당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분노의 합집합니다. 박원순은 내년 더 큰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합집합이다...'


말을 채집하라.

타깃이 초등학생이면 초등학생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우주인이 타겟이면 우주인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정철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충고한다. 떡볶이 햄버거를 사주며 그들 이야기를 귀 아프도록 듣고 그들 언어 습관을 통채로 훔쳐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학습지 회사가 돈 싸들고 달려와 제발 우리 학습지 카피좀 써달라고 조를 것이라고. 보청기 광고를 따려면 경로당으로 가서 박카스를 따드리고 어깨를 주물러드린다. 증권회사 카피의 예로 '상한가로 모십니다/당신의 능력을 굿모닝증권에 상장하십시오' 가 있다.


집착과 선점, 단어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든다. 

SK는 고객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풀무원은 바르다라는 단어에 집착한다. 그 단어는 이미 그들의 것이 되었기에, 같은 가치를 가진 다른 회사는 다른 단어를 써야 한다. 고객이라는 단어는 이미 SK라는 회사에 연결되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덜컹, 꽈당, 비틀.. 의성어나 의태어를 쓴다. 

(벌)벌벌벌, 한 벌 가격으로 두 벌, 세 벌!, (낙지)발발발 발짜르게 움직이면 돈을 번다. (망치)쾅쾅쾅 가격, 내려치고, 내려치고 또 내려쳤다. 이것은 아크리스 백화점 세일 광고였다. 김치냉장고 김치톡톡은 톡톡을 브랜드로 썼다.



휴머니티는 영원한 크리에이티브의 테마

자신의 일로 닥쳐버린, 집단 이기주의로 보일수도 있었을,  초고층 스포츠센터 건립 결사 반대 현수막을 저자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


스토리텔링

전어가 예전에는 기름져서 버리는 생선이었는데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생선'이라는 스토리텔링이 한몫했으리라는 저자의 추측이다. 


라이벌을 공격하라

쌈은 구경하는 재미, 은근히 라이벌의 헛점을 잡아 공격의 도구로 씀으로써 자신의 홍보 효과를 거두는 작전도 좋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제품만 들여다보지 말고 시장을 함께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제품이 시장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에 따라 소비자에게  말 거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레스토닉이라는 듣보잡 침대회사가 넘버원 침대 회사 에이스를 상대해야 할 때, 넘버원에게 시비를 걸었다. '침대가 침새를 용서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레스토닉 매트리스 기술을 따라와 주십시오' 여기서 에이스가 말려든다면 스프링 논쟁이 불붙을 것이므로 시비를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포카리스웨트는 2%를 공격하는 광고를 했다. '...부족할 때 마셨는데 왜 여전히 목마른 걸까?' 사장이 부들부들 신문을 내던지는 모습이 상상된다. 한 아이스크림 회사는 조안나라는 아이스크림을 공격하기 위해 '원유가 아닌데도 좋았나?'라고 광고했다. 내 이야기만으로 비교우위를 알리기 어려울 때 상대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삼성 에어컨을 상대해야 했던 LG 듀얼 에어컨의 카피는 '한 개는 한계가 있습니다'다. BC카드 카피도 시원하다. 'BC 건설 있습니까? / BC 제과 있습니까? / BC 생명 있습니까? / BC 전자 있습니까?' BC는 카드에만 매달리는 거의 유일한 기업으로, 삼성카드, 현대카드들의 약점을 찌른다. 


소비자를 겁주라.

광고에서는 이를 위협도구라고 한다고.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과도 같은 타이틀의 제목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북은 PDF로 되어 있다. 크레마나 휴대폰으로 읽기 불편해서, 크레마 루나 깔고 PC에서 읽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북보다는 종이책 버전을 권한다. (나는 600원 벌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