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는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있고 독일의 종교개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볼테르가 르네상스라는 이탈리아의 문화혁명과 종교개혁이라는 독일을 종교혁명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갖는 프랑스 사상 혁명과 문학 혁명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글쓰기 동서대전 - 한정주저 p261 내용). 이것은 글쓰기라는 무대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인데, 한 문학가를 조명하는 데, 문학적 측면 외적인 면을 보려면 역사가 어떻게 그를 기술하고 있는지를 읽으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마침 몇일 전에 읽기 시작한 프랑스사(앙드레 모루아)에서도 볼테르가 나오는데, 백과전서의 편집에 관여한 대표적 계몽주의 사상가인 것은 맞지만, 종교적 입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던 듯싶다. 어쨌든 투옥과 망명을 밥먹듯 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책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풍자에는 기존 사회질서의 불합리와 불공정을 상징적으로 폭로하고 고발함으로써 실체를 알리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볼테르의 작품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낙관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유럽의 가치 체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한 청년이 유럽 전역과 남아메리카를 거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 실날하게 고발한다. 이 작품의 미학은 되풀이되는 비극과 불운한 이야기의 폭풍 속에서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도록 쓰여진 풍자극이라는 데 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이야기 세례 속에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캉디드는 수도 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맞이하는데, 그와 그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수난은 영리하게 배치된 시대적 억압, 폭력, 학살, 그리고 부조리들과 맞부딪쳐 피흘려 스러지고 사라져가는 과정이다.
베스트팔렌 지방의 그림같이 멋있는 성에 사는 부유한 남작의 조카로서, 팡글로스의 낙관주의 철학을 배우고 믿으며 평화롭게 살던 캉디드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와 눈이 맞아, 변변한 사랑조차 해보지 못하고 쫓겨난다. 그는 지상 낙원이었던 성 밖으로 쫓겨나자 이 순진한 캉디드는 그래도 '모든 것의 최상인 세상이 잘 굴러간다'고 믿지만, 그 믿음과 동시에 불가리아 군대에 팔려가고 잔인한 학살극이 계속되는 전쟁터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우연히 거지가 된 팡글로스 선생을 만나, 퀴네공드가 불가리아 군사들에 의해 배를 갈리우고 죽임을 당했으며, 남작의 가족들도 모두 죽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배에서 폭풍을 만난 그들은 어렵게 살아남아 리스본에 도착했으나, 이 때 이 도시는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무더진 잔해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가까스레 살아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리스본의 3/4을 파괴한 지진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으로 행해진 종교재판이다. 팡글로스의 죄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 캉디드는 그것을 들었다는 것으로, 팡글로스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캉디드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볼기를 맞는다. 다 죽게된 캉디드는 노파의 도움으로 기력을 차리게 되고, 꿈에 그리던 퀴네공드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녀를 산 유대인 상인과 종교 재판소장 두 사람의 공동 소유가 되어 농락당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칼을 휘두르던 유대인과 종교재판소장을 살해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가던 중 수도사에게 돈과 다이아몬드를 모두 도둑맞아 땡전한 푼 안남은 일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팡글로스의 세상에 대한 낙관주의를 믿으며, 캉디드가 불가리스 군대에 복무한 경험을 이용하여 파라과이의 예수회 신부들의 반란을 응징하러 떠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배에 오른다. 그러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자 재판소장 살해혐의로 그를 쫓던 법관을 맞닥뜨리고, 음흉한 총독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퀴네공드를 뒤로하고 도망을 친다.
갑자기 등장한 카캄보와 함께 도망친 곳은 파라과이의 주둔군 사령관의 집인데, 우연히도 학살의 와중에 살아남은 퀴네공드의 오빠가 주둔군 사령관이자, 신부로 와 있는 것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총독의 관저에 있는 퀴네공드를 구해 결혼하겠다고 하자, 신부는 어찌 캉디드가 감히 72대 조상에 빛나는 자신의 누이와 결혼할 수 있느냐며, 화를 내며 칼을 뽑자, 캉디드도 할 수 없이 칼을 들어 그를 찔러 죽인다. 이렇게 끝날것 같이 않은 고난은 계속되지만,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엘도라도에 도착하고, 돌처럼 쌓여있는 금은보화와 다이아몬드를 잔뜩 싸가지고 되돌아오지만, 길 위에는 수많은 도둑들, 사기꾼들이 널려져 있고 퀴네공드를 구해 그녀에게 궁궐같은 집을 지어주기 위해 보석들은 차차 줄어든다.
「최선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네.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 양을 사랑한 죄로 엉덩이를 발길로 차이면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또 종교 재판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걸어서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지 않았더라면, 또 남작을 칼로 찌르지 않았더라면, 또 엘도라도에서 가지고 온 양들을 모두 잃지 않았더라면 자네는 여기서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를 먹지 못했을 것 아닌가..
훗날 그 아름답던 퀴네공드를 구해 길에서 만난 철학자들과 죽은 줄 알았던 퀴네공드의 오빠와 팡갈로스 모두 만나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그 숱한 세상 부조리를 겪고 나서도 여전히 팡갈로스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이제 팡갈로스의 낙관주의는 캉디드에게 의심으로 바뀐다. 낙관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하인 카캄보에게 캉디드는 대답한다. 아 그건 나쁜데도 불구하고 좋다고 마구잡이로 우기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