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영화는 감상평이 두 종류로 나뉜다. 이 좋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서 정말 아쉽다. 좋은 작품을 몰라주고 상영관 몰빵하는 파렴치한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어쩌구저쩌구... 영화계 욕이 첫번째다. 두번째는 망한 영화는 망한 이유가 있다고 원인을 캐는 거다. 이런 작자들은, 전형적으로 우연히 운좋아서 혹은 주변에 널린 금수저 덕분에 성공해놓고, 자신의 성공의 법칙을 일반화할 수 있는 것처럼 떠벌이는 자기계발서 저자와 닮았다. 갑자기 생각난 듯 두번째 종류의 글을 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재미있게 봤는데, 흥행하지 못한 이유는 눈에 훤하다.
음악 영화라면 음악이 서사와 결합할 때의 감동이 어마어마한 폭발적인 효과를 낳기 쉽다. 때로 음악이 주가 이루는 영화에서 서사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이런 영화들은 음악가들의 삶, 음악에 얽힌 사건, 음악을 매개로 한 소통과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음악 자체가 뿜어내는 막강한 감정적 힘이 관객의 마음을 마구 움직이면서 서사마저 아름답게 한다.
해어화의 소재도 음악이다. 기생학교에서 정가를 하는 소율은 가장 뛰어난 예인으로 모든 사람의 기대를 모은다. 이 때 빚때문에 팔려온 서연희에게 다가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성장한다. 소율은 기생 아들이자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윤우와 사랑을 약속하고, 앞으로 조선을 위해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서연이 어느날 당대 최고의 가수 앞에서 노래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 목소리에 반한 윤우는 서서히 서연희에게 빠지고,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소율은 일본 고위급에게 몸을 내주고 그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그렇게 내용은 뻔한 치정극으로 흘러간다.
원래 이 영화 리뷰를 안쓰려고 했는데 쓰는 이유는 여기서 잘만 하면 이런 뻔한 치정극을 아름다운 음악 영화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놓쳐버린 감독, 음악감독의 실수를 지적하고 싶어서였다. 정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튜브를 찾아서 들어보니, 이게 조금 재능있는 배우가 서너달 배운다고 따라할 수 있는 종류의 음악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게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별로 느낌이 없는 예술도 그 앞에서 누군가 울거나 감동받았다고 온갖 난리를 치면 덩달아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게 예술이라지만, 적어도 기본은 해야 한다. 전통적인 정가를 부르는 예인들의 혼을 담은 목소리와 영화안에서 어줍잖게 흉내내는 생목소리는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런 종류의 옛음악이 대중들에게 먹히지 않을 것을 우려해, 많이 생략하고 가요 위주로, 한효주가 부르는 정가도 대충 살짝 흉내만 내고 가요로 넘어간 것 같은데, 낯선 음악이라도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이라는 보편적인 슬픔을 담은 서사와 돈을 많이 들여 복원해낸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영상이 바탕이 되었다면, 정가라는 낯설고도 잊혀진 음악을 대중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서사에 엄청난 품격을 더해주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분명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정가가 귀족들만의 음악이라면, 친일파와 일본군들을 상대해야 했던 소율의 사랑을 잃고 목소리 마저 외면한 슬픈 여인의 혼을 모두어 정가라는 장르에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것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요를 잘 활용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서현을 위해 작곡한 <조선의 마음> 역시 뭔가 당대의 분위기가 안나고 80년대 풍의 발라드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그렇게 조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목소리는 어딘가 뻣뻣하다. 그런데 사실 한국 대중가요사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없으니, 더자세히 못쓰겠다. 어쨌든 정가의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한 것, 당시 전설이 되었던 음악을 잘 리메이크해서 보다 큰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 영화와 맞물려 여주인공의 가족이 스캔들이 있었던 모양인데, 질투로 눈이 멀어 몸을 팔고, 창녀가 되어 남의 인생을 말아먹고도, 자신만이 슬프고 비련한 여주인공이고자 했던 주인공의 역할만큼은 정말 잘 소화해낸 것 같다. 배신은 배신이고, 악행은 악행이다. 그리고 사랑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랑은 변하는 거란 걸 받아들이는 것이 중하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