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사소한 것들일수록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하지만 사소하다는 이유로 자주 그것에 대해 무지하다. 일본은 문구 덕후들을 위한 대회를 여는 모양인데, 저자는 <전국 문구왕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 후 <궁극의 문구 카탈로그를 자비출판했다. 한국판 제목은 궁극의 문구지만, 이로서 원제는 카탈로그이고, 책의 내용 역시 일체의 다른 잡설 없이 문구왕이 선택한 문구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사실 다른 모든 물건이 그렇지만, 뭘 하나 사려고 해도 물건에 대한 지식이 많이 필요한 사회다. 수십만원짜리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을 사려면 하루이틀은 공부를 해야 한다. 책을 읽고 나니 일이천원짜리 펜 하나, 테이프 하나를 사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흔히 쓰는 투명 테이프만 하더라도 셀룰러 테이프와 PP 재질로 된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끈적임이 덜한 제품을 사려면 폴리프로필렌 제품으로 사야 끈적이지 않게 오래 보관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걸 누가 가르쳐 주겠으며 누가 아나. 그리고 1~2천원하는 테이프를 사면서 무슨 원재료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어떻게 일일히 확인하나. 이 책을 보면 된다. 펜과 각종 문구용품들 중에서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서 나열하고 사진 대신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설명한다. 카탈로그다. 카탈로그인데 제품 생산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만든 것이다.
문구점을 들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문구류는 참 싸다. 칼이나 지우개 같은 것들은 한번 사면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거의 다시 사게 되지 않을만큼 오래쓰게 되지만, 그 가격은 주방용품이라든가 혹은 먹을 것들에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심지어 비싸다는 일본 제품들도 그렇다. 그렇지만, 펜류는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기 어렵다. 설사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주 다스씩 대량으로 구매해두기 때문에, 있는 걸 다 써야 새로운 걸 사지 하는 마음으로 나중에 사려고 했다가 어떤 제품인지 잊어버려 같은 제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또 제품 종류가 너무나도 많이 있어 일일히 다 써보고 구입할 수도 없기도 하다. 내 경우 그 좋다는 제트스트림과 별로 궁합이 잘 안맞는 거 같다. 자주 떨어뜨여서 그런지, 아니면 쓰다 안쓰다 해서 그런건지 잉크가 뻔히 많이 나오는데도 안나와서 마구 눌러 종이까지 찢어지도록 짜증을 부리다가 그래도 안나와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 몇년 전에 완전 좋은 펜을 발견했는데 사쿠라의 젤리롤이라는 펜이다. 주로 A4 용지에 뭔가 메모하거나 기록하기 위해 휘갈겨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 용도에는 첫째도 술술 잘나와야 하고, 둘째도 술술 잘나와야 하고, 셋째도 술술 잘나와야한다. 이 책에 보면 펜의 그립감과 밀착감 두께 등등 정말로 많은 요소들이 펜의 기능과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지만, 내게는 휘갈겨 쓰더라도 조금이라도 끊어지는 부분 없이 술술 잘나와야 한다. 그립감은 두꺼운 것보다는 얇은 게 좋다. 어쨌든 나왔다 안나왔다 하는 볼펜은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
처음 소개하는 펜은 펜텔 하이브리드 테크니카인데, 이것도 써본 것 같다. 하이브리드 잉크의 등장은 문구계의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은 사건으로 유성과 수성 볼펜의 장점을 합친 현재의 '젤잉크'라는 정식 명칭이 생기기 전에 채택된 이름이었다고 한다. 필기감이 부드러우며 색이 선명하고 화사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내 경우 이 볼편을 볼 때 가늘다는 생각이 나는 건, 아마도 내가 생각없이 고르다가 가는 펜을 사 놓고 가늘다고 불평하는 건지, 이 펜 자체가 국내에서는 0.3mm 만 나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책에는 하이브리드 파인 0.6mm 0.4mm, 테크니카 시리즈는 0.3, 0.4, 0.5mm 로 다양하다. 부드러운 필기감과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저자는 설명하는데 내게는 살짝 펜두께가 두껍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