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기숙사의 한 친구에게 짝사랑하게 된 동향 출신의 선배가 생겼다. 동향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볼 기회가 있었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선배 얘기 뿐이었다. 스무살 청춘을 흔들어 놓았던 그 선배의 나이 역시 스무살 청춘. 선량하고 푸른 청춘이었다. 그 선배가 친구가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 하숙하던 집으로 불렀던 날, 그 친구는 울면서 돌아왔다. 매일매일 꿈꾸던 그 멋있던 선배와의 첫 데이트는 선배의 강간 미수로 끝났다. 강하게 저지하는 친구의 청바지를 거의 반을 완력으로 벗겨냈다. 그녀의 말이 아직까지 떠나질 않는다. 저항을 하는 데 어떻게 바지 단추를 푸르고 지퍼를 벗기고 그 빡빡한 청바지를 내릴 수가 있지? 나는 순박한 그녀를 의심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내 앎의 한계로는 무언의 동의가 있지 않은 이상 옷을 벗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힘이 너무너무 센거야.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바지를 벗기고, 아무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힘이 너무너무 세서 꼼짝할 수가 없었어. 그렇다. 그들은 힘이 세다는 것이 나에게 평생 각인된 첫 이성의 차이에 대한 배움이었다. 힘이 너무 세다는 것. 막판에 어떤 순간이 왔을 때, 힘으로는 절대로 남자를 당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멋있는 남자라도 언제라도 강간범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뢰적 인간관계 형성을 취약하게 한다.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세상 어디에서곤 만연되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논리 앞에서 꼼짝 달싹할 수 없는 위치에 서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힘이 너무너무 세다.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너무너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