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수다를 떠는 이유는 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목적이 아니다. 때로는 지친 일상을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자랑질, 때로는 그저 의미없는 투덜투덜거림을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은 행복한 게 아닐까. 우리는 그런 여유를 찾기 힘들다. 내가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또한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 지루하고 우울한 말을 들어주고, 나보다 많이 가진 자의 새로운 자랑질을 참아주고, 그렇게 나를 상대방에게 보태어줄 심적, 시간적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 표현되지 않는 마음 같은 건 결과적으로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상대가 누군가 필요했을 때, 내가 그 누군가의 가장 적합한 후보였을 때, 모르고 지나간다면 나는 영원히 그를 잃는다. 자업자득이다. 서두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다. 사소한 공감.
더운 여름, 시원하게 헐벗을 수 있는 좋은 기회에 무얼 입을까 옷을 골라보다 보면, 젠장할 여름옷 디자이너들은 가끔 속옷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는걸까 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떤 건 겨드랑이가 파여서 속옷이 보이고, 어떤 건 어깨가 드러나서 속옷 끈이 보이고, 이것 저것 입어보다 다 팽개치고 말았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일상에는 이런 작은 수다를 나눌 사람들이 필요하다. 식구가 많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아 진짜 왜 옷들을 하나같이 이렇게 만들지? 그러게 입어보고 사야 한다니까 그 작은 일상에서 뻗어져 나올 수많은 말들이 있겠으나, 혼자 입을 땐 미친사람처럼 혼자말을 살 수도 없다. 이런 일상의 자잘한 일화들을 웹툰으로 그려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진 사라 앤더슨의 만화가 종이책으로 나왔다.
원제목은 <Adulthood is a myth : a sarah's scribble collection> 인데 한국 제목도 <어른이 되기는 글렀어>가 입에 착 달라붙고 내용과 기가막히게 잘 매치된다. 어른이라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해야 하고, 모든 사회적 규범과 관습을 지켜야 스무스한 현재를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못지 않게, 허둥대고,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엉망이다. 아이들과 다른 것은 단지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뭔가를 마음 먹고, 뭔가를 계획하고, 삶을 자기계발서에서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로 계속 나이가 먹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작은 위로다, 인간은 어차피 누구나 다 불완전한 존재이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러한 불완전 속에서 자잘한 일상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 당장 할 일이 태산같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책을 읽으며 혹은 영화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아침에 무거운 눈꺼풀을 뜨지도 못한채 알람종에게 꺼지라고 소리친다. 인맥관리도 사회생활의 일종이므로 열심히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늘 이런 저런 핑계거리를 만든다. 이런 자잘한 일상의 구질구질함이 너무나도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맞어 맞아 어머 나랑 친구했음 좋겠다. 어쩜 이렇게 똑같니 라고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웹툰은 ... 아~ 나의 현재 모습이며, 나의 미래의 모습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