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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신화의 섬, 유배의 섬, 학살의 땅, 망각의 섬, 제주

[도서]제주 뮤지엄 여행

김지연 저
더블엔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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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에 차를 실으면 먹을 거 입을 거 잔뜩 싣고도 반너절이면 건너갈 수 있는 곳에 살다 보니 우리에겐 천상의 휴식처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그래서 친정집 드나들듯 자주 가서 오래 머무는 곳이 된 제주이건만, 제주도민들이 '육짓것들'이라고 지칭하는 나는 그들이 지칭하는 이방인 이상이 될 수 없었던 거다. 4.3 평화 기념관을 가서야 4.3 학살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대략 뭐 그렇고 그런 사건이었겠지 혹은 5.18의 비극처럼 흔해빠진 우리 근대 역사의 비극 중 하나라고, 알아봤자 어쩔 도리가 없잖아라고 변명하면서, 사실은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에 계속해서 자세히 알게 되기를 거부해왔던 거다.

치가 떨렸다. 청산되지 못한 일제로도 모자라, 일제에 충성했던 그 비열한 손으로 이제 동족을 향해 총을 겨누고 학살했던 사람들. 어수선한 광복의 시기에 오로지 통일된 자주 독립을 염원하던 그토록 순박했던 사람들을 제주 인구의 1/10에 달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해 죽인 역사가 어찌 이토록 조용히 잊혀지고 있었던가. 화면에서 고노무현 전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들울 수 있었다. 과거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대표해서 사과한다는 그 말 한마디, 그것울 듣기 위해 어찌 그토록 오래동안 제주민이라는 사실마저도 숨겨야할만큼 차별받고 감시당하고 살어왔어야 했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만의 비극이었던가. 수십년이 흐르도록 사과는 커녕 빨갱이로 몰려 자식까지 연좌제의 사슬에 묶인 채로 생을 지탱했어야 했던 제주의 수많은 주민들, 아직까지 몸에 박힌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고 지고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데 제주는 이제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리고 평화롭고 고요하기 그지없던 중산간 마을에까지 부동산 열풍이 일고 사방 곳곳에 뭔가를 요구하는 플랭카드들로 넘쳐난다.

갈 때마다 하나 둘 씩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지난 여름에는 작정하고 박물관 순례를 하였다. 책에 나온 박물관은 이미 거의 다 방문한 터였다. 국내 최고 휴양지인 제주는 명성만큼이나 박물관이 많다. 많다 보니 기대에 못미치는 곳도, 내용에 비해 지나친 입장료를 내는 곳도, 박물관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곳도 많았다. 그 많은 박물관 중에서 이 책에 실린 곳은 시산이 넉넉하다면 가볼 만하다. 공립박물관들은 지방의 공립 박물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컨텐츠가 조금 부족한 듯 느껴졌고 사립 박물관들은 책에서 소개한 아라리오 미술관과 본태 미술관, 현대 미술관 정도가 가볼만 하다. 직접 가 보았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했던 정보가 이 책에서는 자세히 설명 되어있어 유용했다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과 가마오름은 별로 안땡겨서 가보지 못했는데 책을 통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 이용되면서 강제징용으로 건설한 엄청난 규모의 여전히 발굴중인 땅굴과 그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수탈과 아픔의 증거들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왜 우리는 제주를 이토록 모르고 있었던걸까.

유배의 땅 제주. 수탈의 역사 학살의 역사 그 망각의 뒤편에서 제주는 한 때 200년에 걸쳐 유배의 땅이었다. 문자 그대로 한양 땅에서 3천리 유배길에 이르는 땅은 제주 밖에 없었으며 배신과 음모의 희생양들은 척박한 땅 제주로 유배왔다. 추사 김정희가 대표적이어서 그를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도 제주에 있는데, 그의 그림 세한도에 나오는 집과 똑같이 생긴, 감자 보관용 헛간처럼 소박하게 다자인되어 있다.

신화의 땅 제주, 제주는 1만 8천여 신들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설화의 형태로 전승하고 있는 신화의 땅이다. 돌문화공원에서는 오백장군과 설문대할망과 같은 제주의 독특한 신화와 상징들을 태고적 원시풍광과도 같이 광대하게 조성된 돌 조각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한겨울에 가봤었는데 책으로 된 설명을 보니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