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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잃어버린 게놈, 잃어버린 사촌들

[도서]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스반테 페보 저/김명주 역
부키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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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만년 전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서로 갈라져나오기 전, 같은 조상을 공유했을 때다. 유전자 게놈에는 이런 숫자들이 쓰여져 있지 않다.  유전자 게놈을 통해 무엇인가를 탐구해가는 과정 속에는 날카로운 통찰과 복잡한 추론이 필요하다.  과학은 단지 실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실험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는 가설에서 나온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유전자를 공유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알아낸 다음에도 유전학자들은 할 일이 많았다. 인간의 기원을 찾는 문제에 있어서 힌트는 적고, 기술은 한정적이다. 인간의 게놈 속에, 혹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속에서 서로 무언가를 공유했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언제 갈라져 나왔는지 알고 싶다. 네안데르탈인의 DNA의 남아있는 유전자 조각의 염기 서열 뿐만 아니라 현생인류와 공통 조상을 공유한 유인원의 게놈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 필요하다.  인간의 게놈이 유인원(침팬지, 짧은 꼬리 원숭이)의 게놈과 다른 위치를 찾아내서,  그 위치의 네안데르탈인 게놈이 현대인과 같은지 유인원과 같은지를 확인했다.  만일 현대인과 같다면 그것을 초래한 돌연변이는 서로 갈라지기 이전에 발생한 변이이다. 반면 유인원과 같다면, 그 변이는 최근의 것으로 갈라진 후 현생인류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유인원같은 염기를 가진 비율을 바탕으로 얼마나 오래전에 네안데르탈인의 DNA 서열이 인간에게서 갈라져나왔는지를 추산했다(상세내용 p298참조)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조사이 650만년전에 살았다면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모두에게 DNA 서열을 전달한 네안데르탈인+사피엔스인은 83만년 전에 살았다. 현대인 두 사람씩 묶으면 이 관계의 조상은 50만년 전이다. 


언제 분기가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그 공동조상들이 아프리카에 살았고, 유럽을 건너가 네안데르탈인이 되었다. 아프리카에 남은 공통 조상들은 현생인류로 진화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 사이에 많은 변이가 있다면 유전자 서열에서 발견된 더 많은 차이는 분기 이전의 공통조상에서 축적된 것이므로 분기시점을 더 앞당겨 보아야 한다. 불확실한 사실들을 고려해 이들(저자와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집단의 분기가 27만에서 44만년 전이다. 공통 조상이 아프리카를 이후 현생인류로 진화한 사피엔스는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다시 만난다.  


과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진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추구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학은 유력 인사들과 죽은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학자들의 제자들이 '통념'을 결정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이렇게 결정된 통념을 무너뜨리는 한 가지 방법은 ...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에 대한 추가 분석을 내놓는 것이다.(p312)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하지 않다. 그들이 가진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소장된 네안데르탈인의 뼈조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유전학 기술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함부로 잘라 없앨 수 있을만큼 흔한 것이 아니었다. 고생물학자들이 보기에 '파괴하고 화학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으로' 연구에 이용하기에 너무 귀중한 유물이었으며,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료를 특별히 관리하고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안데르탈인의 뼈조각을 소장한 많은 박물관에서 유전학 연구를 위해 훼손시켜 내어주는데 주저했고, 제공되는 양 역시 적은 양이다. 어렵게 뼈조각을 회수한다 해도 그 긴 세월의 풍화에 살아남은 유전자는 많지 않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짧게 말하면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도 데니소바인들과도 지구의 곳곳에서 마주쳤고 그곳에서 널리 몸을 섞었다. 그런데 한 5만년쯤되었을 때 현생인류는 무언가 획기적인 도약을 했고, 그때부터는 사랑하는 대신 그들을 멸종시켰다. 이렇게 짧은 결론이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것은 거대한 과학이 어떻게 작은 생각의 씨앗으로부터 탄생되고 그 과정에서 거대한 벽과 부딪히고 이겨내고 하는 것, 그리고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삶과 사랑등 모든 것을 담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그 중에서 현대인의 오염과 싸운 이야기가 책의 절반은 차지한다. 함께 연구한 연구자들의 성격, 외모, 말투, 연구 내용 등을 비롯하여 디테일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저자의 꼼꼼함에 새삼 팀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