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면 세상은 암흑이다. 빛이 있어도 보지 못하거나 인지하지 못한다면, 밝은 세상도 그들에게 암흑이 된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 그만큼 연구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실제로 중세인들이 컴컴한 어둠속의 삶처럼 천년 내내 비참하고 야만적인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중세가 암흑인 것은 예술과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말할 때, 거의 천년에 걸친 그 방대한 시기를 마치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껑충 뛰어넘는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또한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유라시아 패권이 서구가 아닌 동방과 아시아로 넘어간 것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과학사, 예술사, 철학사 등에 뭉텅 빠진 그 시간들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며 1천년이라는 무구한 세월이고, 그들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어 왔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때로 기뻐하고 때로 슬퍼했으며, 먹고 입고 자기 위해 일하고 말하고 사랑했을 것이다.
"로마 사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예는 로마 시민들의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우구스투스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끝나기 오래 전부터도 제국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었다."
"로마 제국 내에 독신자 비율이 아주 높았고 기혼자들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다. 현대의 작가들이 개탄해 마지않는 자녀 없는 가정과 소규모 가정이 많았다. (중략) 모든 계급에서 인간의 추수는 좋지 않았다. 특히 교육을 많이 받고, 가장 개화되고, 종족의 지도자가 될 상류 계층에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
인구가 감소하면 제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행정 비용이 훨씬 상승한다.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의 통치자들은 야만인들의 피를 수혈한다. 처음에는 소량을 수혈했으나 점점 더 많아져 마침내 로마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로마인이 아니라 야만인의 것이 되고 말았다. 게르만 족이 제국 내로 들어와 변경 지역에 정착하며 들판을 경작하고, 용병으로 뛰다가 정규군으로 활약하고, 고위직을 차지하면서 군대는 야만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군대가 야만화되면서 민간의 풍습도 야만화되었다. 절반은 야만화된 로마 제국은 야만인들을 상대로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서 야만인들을 동원해야 했다.
"4~6세기의 로마인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문명이 야만의 힘 앞에 쇠망해 가는 시대의 삶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토록 방대한 땅을 차지했던 그 찬란한 문명의 로마는 왜 멸망했을까. 로마가 야만족들의 침입을 계속 받으면서 차츰차츰 허물어져가고 있을 때, 5세기의 사람들은 야만인들에 의해 약탈되고 쇠락해져가는 이 처참한 사태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현재의 사태에 눈멀어 있었다. 호화로운 시골 별장들은 변함없이 파티를 열었고, 대학의 교수들은 강의를 계속했고 저서를 집필했고, 놀이와 극장은 계속 만원 사례였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 해까지도 로마의 귀족은 여전히 아들을 집정관으로 만드는 문제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위기는 언제나 있었고, '위대한 제국'은 언제나 그것을 잘 극복해냈다. 포르센나, 브레누스, 그리고 한니발.. 그러나 5세기의 로마는 과거와는 달랐고,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저자 아일린 파워는 그들이 '동시대인들의 치명적인 근시증상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각자의 타락과 각자의 패배와 각자의 타협이 그들의 한없이 추락시키게 될 연결고리들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외부 세계에서 진행중인 일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지 않았다. 실제로 생활에서도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그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내일은 어제와 똑같을 것이고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천년이 흐른 뒤에야 단테, 셰익스피어, 코페르니쿠스, 뉴튼이 로마 쇠퇴 이후의 깊은 구렁텅이에서 서서히 올라왔으며 '그러한 등정은 완만했을 뿐 아니라 단속적'이었다.
이 책은 남아있는 문헌들 속에서 시대를 추측 가능하게 하는 몇몇 인물들을 발견하고, 그 인물과 관련된 일, 문화 등을 또다른 문헌들 속에서 캐어내는 방법으로 시대의 풍속과 역사를 추적한다. 로마의 멸망 이후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서구 사람들의 삶을 세기를 대표하는 몇 사람들이 유적과 일기와 편지등을 통해 함께 추적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샤를마뉴 시대의 농부, 13세기 베네치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 초서의 책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런타인, 14세기 파리의 어린 아내에게 애정어린 자기계발서(생활 백과)를 남긴 자상한 늙은 가부장, 15세기의 양모상인 토마스 베트슨, 헨리 7세기 시대의 에식스 직물 상인 토마스 페이콕을 만난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연히 기록에 남겨져 있고, 독자에게 그들이 남긴 글들의 작은 단서들로부터 시작하여 당시의 풍습과 문화 관습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