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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카이사르의 여자, 카이사르의 시민

[도서]카이사르의 여자들 1

콜린 매컬로 저/강선재,신봉아,이은주,홍정인 공역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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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맥컬로가 마스터 오브 로마 시리즈에서 독자를 만족시키는 요소 중 한 가지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정치사를 실존했던 개별 인간들의 이해 관계와 감정선 상에서 포착함으로써, 역사 속의 외교, 정치, 법률, 군사적 사건 하나 하나를 드라마틱하게 이끌어내는 데 있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그렇게 많은 역사상의 인물들 중 그 누구에게도 편애하지 않고 중립적이고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사적인 감정이입보다는 전체 시스템 속에서의 개인을 이해하도록 끌고 간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라는 그 막대한 제국주의 부로부터 기인하는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일상을 숨막히도록 감각적이게 서술하는 기교 역시 대중(?) 소설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인하게 하는 주요 요소다.

배신과 음모, 속임수와 협작 속에서 펼쳐지는 로마 제국에서 어제의 적은 오늘의 아군이 되고, 오늘의 아군은 다시 또 내일 내 목을 베어갈 자가 된다.  이미 결말이 알려진 역사 라는 피해갈 수 없는 스포를 갖는 역사소설은  어떤 사건을 어떤 맥락 속에서 읽느냐의 문제 속에서 읽게 된다.   역사 소설을 읽는 것은  어떤 사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의문의  '왜'와 의문을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현재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를 다양한 시각의 거울에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기록이 팩트에 기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승자에 의해 쓰여졌다면, 그래서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할 어떤 부분이 피할 수 없는 왜곡된 형상으로 밖에 읽을 수 없다면,  역사 소설이 제공하는 다중 초점은 무수한 왜곡들의 겹침을 통해 알게 된 팩트에 진정성, 혹은 진실성 같은 살아있는 숨결과 객관성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역사는 생명이 있고 숨쉬는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유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역사 소설은 오히려 이름 없는 수많은 패자들의 시선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승리는 수많은 패배들이 쌓이고 또 쌓여 겹쳐지고 겹쳐지는 정도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콜린 맥컬로는 멀고 먼 고대 로마사에서 승자의 조건을 환기시킴으로써, 시대를 뛰어넘어 똑같이 반복되는 오늘의 현실, 우리의 현실을 거울에 비춘다.  마스터 오브 로마 네번째 시리즈의 제목은 《카이사르의 여자들이다. 술라가 스스로를 독재관에 임명하고 정적들을 제거하여 제국을 주무르던 시대는 가고 이제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가장 핫한 남자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카리스마, 시대가 선호하던 준수한 용모, 파트리키 귀족이라는 타고난 가문, 그리고 식을 줄 모르는 정력이다.  제목이 《카이사르의 여자들이지만 사실 1편에서 비중있게 나오는 카이사르의 여자는 오로지 한 명 세르빌리아 뿐이다.  그런데 이 세르빌리아는 누구인가.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숙적들의 칼에 죽어가면서 읊었던 그 유명한 대사 '부르투스 너마저'의 주인공, 후에 카이사르가 총해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 브루투스를 낳은 엄마이다.  

부르투스는 자기 엄마의 이부형제 카토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으면서, 카이사르가 카토와는 정치적으로 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이사르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는 전편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카이사르가 열여덟살이었던 때  자기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죽은 아내 킨날라가 낳은, 카이사르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외동딸이다. 전편의 첫권을 되돌아보면, 당시 로마를 접수한 술라는 자신의 정적인 킨나의 딸과 결혼한 카이사르에게 서슬퍼런 숙청의 칼날을 피하려면 킨날라와 이혼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망명하여 죽을 뻔했던 순정파 청년이었다.  사랑하는 킨날라가 죽은 후부터 이번 편 이전까지 카이사르의 애정행각에 대해서는 전편의 2부, 3부를 읽지 못해 알수 없지만, 세월은 그를 변화시켰고 이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바람둥이로 변해있다. 가진 것은 출중한 능력과 가문 뿐 관직의 사다리를 오를 든든한 재력이 받쳐주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율리아를 시집보낼만한 변변한 지참금조차 없던 형편이었는데,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허약한 부르투스는 우연히 본 율리아에게 반해 엄마 나 쟤랑 결혼시켜줘 하게 되고,  이것 저것 재보던 세르빌리아는 카이사르의 잠재력을 보고 정략 결혼을 추진한다. 브루투스는 때마침 세르빌리아가 아들에게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축재한 툴리아의 황금을 상속받게 하기 위해 법적 친동생이자 외모가 명백한 이부동생임을 말해주고 있는 카이피오를 암살한 덕에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가 되었다.

제목이 카이사르의 여자들이어서 계속 세르빌리아 얘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사실 1부인 이 책에서는 실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카이사르와 사랑에 빠진 여자들이 세르빌리아의 사적인 감정과 카이사르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공통의 이익이 만나면서 정적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들이 결혼하게 될 사돈끼리 서로의 치명적 매력에 눈이 맞아 나눈 정사는 이미 병든 남편 실라누스와 수년간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였던 실라누스에게 임신을 알려야 하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불러왔지만, 냉혈적인 세르빌리아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유약한 남편과 딜을 하고 침실을 공유하여 남들 눈에 뱃속의 아기가 실라누스와의 합방에서 온 결실로 꾸며낸다. 그리고는 카이사르와 또다른 딜을 하는데 바로 임신으로 인해 둘의 정사가 불가능한 일곱 여덟달의 임신 기간동안 카토의 아내 아틸리아와 비불리스의 아내 도미티아를 유혹해 달라는 것이다.

카토는 세르빌리아와 어머니쪽 가문의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아버지쪽으로는 천한 유전자가 섞여 있으며, 자신의 아들 부르투스와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던 터이다.  그리고 비불르스는 카이사르에게 이미 위험한 정적의 범위 내에 있고, 그의 아내는 세르빌리아의 또다른 이부 여동생 포르키아의 남편쪽 친척이다. 이들을 꾀어 낼라는 요청은 단지 그들의 남편들에게 수치를 안겨주기 위해서다. 그러한 수치들이 모여 카이사르의 정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스물 한 살에 이미 시민관을 수여받은 그는 정치적 특전이 주어졌고, 10년 일찍 원로원이 되었으며 공적 장소에서 그가 나타나면 누구든 기립 박수를 쳐야 했는데, 이는 그를 젊었을 때부터 정치적으로 돋보이게 하고 차별화시켰다. 보니파의 대척점에서 변화를 갈구하던 카이사르는 급진파의 이미지를 가지고 낡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선해나가는 동시에 고등조용관으로 임명되면서, 메갈레 경기대회와 부친의 장례 경기 등의 축제를 성대한 규모로 기획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낸다. 그로 인해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고, 점점 채무자들의 압박을 받아 곤란한 처지에까지 몰렸는데, 이 위기를 극복할 묘안을 실행에 옮긴다. 술라의 장난으로 말더듬이인 채로 연설을 해야 하는 최고 신관 자리에 올랐던 새끼 똥돼지 메툴루스 스키피오가 위독해지면서 폼페이우스가 심어놓은 호민관 라비에누스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최고신관을 포함한 신관과 조점관을 트리부스의 선거로 돌려주는 법을 입법화한 것이다. 이미 이 때부터 정적들은 원로원과 기존 세력들이지 대중이 결정하는 어떤 선거에서도 그는 이길 자신이 이길 것을 알았다. 게다가 어디에 내놓아도  결점없이 완벽해 보이는 카이사르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단일화를 못해 카툴루스와 바시아 이시우리쿠스의 두 명의 후보자를 내놓은 보니파였기에 그는 이제 로마의 최고 신관 자리에 올라 그의 소비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월급과, 집과 집무실을 제공받고, 빚쟁이들에게는 신뢰와 유예를 제공한다.

이 때부터 이미 카이사르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선 자들은 로마의 전통과 관습의 수호를 자처하는 보니파로, 비불르스, 카토,  카툴루스였고, 카이사르와 죽이 맞아보이는 인물은 돈을 긁어모은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키케로 등이 있지만, 그것도 오직 필요할 때뿐이다. 카이사르에게 항상 가까이 있는 것은 민중들의 지지인 듯이 보인다. 카이사르가 협력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인물 중 하나인 아피아수 클라우디우스 풀케르가 초기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다시 관계가 꼬인다. 클라우디우스의 망나니 남매들이 카이사르의 두번째 아내와 어울리게 된다.  풀케르의 막내 동생 클로디우스는 매형 루쿨루스의 수하로 동방복무에 따라갔다가 교활한 행동으로 그를 실패시키고, 자신과 누이들과의 근친 관계 적나라하게 스스로 폭로하여 엿을 먹이고 와서도 꾸준하게 망나니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카이사르는 세르빌리와의 관계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여 술라의 손녀 포메이아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외적 아름다움이 내적 멍청함을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는 여성이다. 폼페이아에게 첫날밤에 실망한 카이사르는 다시 마주치는 게 싫어 사랑하는 딸을 만나러조차 집에 잘 안가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훗날 정신을 차리고 아내가 누구와 어울리는지 봤더니 아피아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의 남매들이었던 것이다.  

카이사르와 아우렐리아의 이중적인 잣대도 웃기는데, 비상식적인 세르빌리아와의 외도 뿐만 아니라, 동료 정치인들의 아내를 단순히 엿먹이기 위해 꼬여내고는 버리는 그의 여성 편력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즐거워하면서, 아내에 대해서는 나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사람을 붙여 미행을 하고, 누가 집안에 들락거리고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아우렐리아가 항상 알 수 있도록 빈틈없이 감시한다. 대형사건이 일어나는 대신 엄청난 역사적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는 카이사르와 삼두 정치 시대의 시대 정치적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관계를 구축해나가는 스토리여서 다음편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