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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가족이라는 덫

[도서]소주 클럽

팀 피츠 저/정미현 역
루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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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한국에서 겪었던 일을 경험으로 쓴 한국만의 독특한 음주 문화에 대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접했기에, 당연히 주인공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인공은 거제에서 태어나 중년을 지나고 있는 한국 작가다. 작품 속에 미키라는 외국인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여동생의 남편이다. 외국인인 작가는 한국인 화자의 입을 통해 그 한국인이 외국인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적었을 뿐,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 혹은 한국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는 없다. 이것이 소위 기존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쓰는 한국에 대한 책들이 그들의 불충분한 경험과 지극히 제한적인 앎을 통해 얻은 매우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면을 다루는 면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한국 내에서 한국 문단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미국과 일본에 소설을 출간하는 사람이다. 이 점은 이 소설 소주클럽이 매우 토속적이고도 한국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어로 쓰여져 한국말로 번역되어졌다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를 비중이 다른 다른 두 명의 인물에 투영했는데, 한국인이면서 외국에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내적 자아를 나타내고, 주인공의 눈에 형편없는 인물 미키는 한국 사회에서 한 백인이자, 가장 흔한 직업인 영어 교사로서의 미국인이 판단되고 다루어지는 즉 외부인에게 비치는 자신 혹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투영한다. 


선인세를 받아 쥐어 짜며 글을 쓰고 있는 주인공에게 거제도인 고향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평생 가정을 등안시하고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가 늘 그렇듯이 바람을 폈는데 이번에 어머니가 스파이를 고용해서 간통 장면을 사진찍었고, 어머니가 이혼하신다고, 내려와 말리라는 내용이다. 아버지의 간통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내려간 주인공은 엉뚱하게 아버지의 독도 참조기 잡이 프로젝트에 반강제적으로 투입된다. 게다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영어 문답집을 교재로 채택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미키의 탐욕스런 제안이 온 가족에게 전파되어 궁지에 몰린다. 


가족들의 강요로 자신이 원치 않는 일에 계속해서 말려드는동안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할퀴고 상처내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엮이고 또다시 아낌없이 배신당하는 형편없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핏줄이라는 필연으로 연결된 가족은 끊을 수 없는 운명이다. 


천부적인 어부였던 아버지는 그냥 가족을 소홀히 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개망나니같은 인물이다. 가족들의 일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족들 이외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고 있는, 집 보다 다방이, 밥보다 술이, 육지보다 바다가, 아들의 장래보다 눈앞에 닥친 고기잡이가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다. 엄마는 평생 자식들과 사위와 바람둥이 남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바쁘게 손을 움직여 농사를 짓고 억척같이 살림을 꾸려나가고, 남편을 간통으로 고소하고서도, 홀로 멀리 고기잡이에서 죽을까봐 글쓰는 아들을 협박해 아버지와 함께 나가라고 하는 여인이다. 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있던 천재적 축구 선수였던 형은 아버지 고기잡이에 억지로 동원되었다가 다리를 다치고 미래를 잃는다. 성형중독인 동생 부담이는 외국인 뚱땡이 미키와 결혼해, 자기가 쓰던 방을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은 고교 이래, 대학에 들어갔지만 MT 문화에 충격을 먹고 학교를 그만둔 이래로,  잡일을 하며 전국을 떠돌면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단편을 쓰고 하면서 자리를 잡아 지금은 미국과 일본에서 책을 출간하며 먹고 살만 하다. 그는 가족들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성취해서 작가가 되었지만, 가족들, 특히 부모님에게서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마치 정신을 팔아 먹고사는 것처럼 의뭉스러운 일로 비쳐지는 일을 감내한다. 


주인공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코꿰어지고, 특히 독도 고기잡이에서는 정신나간 아버지 패거리들과 일본 어선과 맞붙는 황당한 일에 연루되어 위험한 상황에 몰려들고, 작가로서의 가치관을 위협하는 미키의 음모(?)에도 계속 위협을 받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때로 벗어던지고 싶은 부담이 되었던 적이 있을까. 때로 가족과 형제들이 각자 독립을 해서 살다보면 누가 더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와 누가 더 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서로의 입장은 첨예하게 다르다. 산다는 일이 팍팍하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겠느냐마는 어려운 상태에 빠지지 않아도 훨씬 나은 길을 걷고 있는 형제는 기댈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얽히고 섥히는 관계가 단지 한국적 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토속적 음식과, 소주와 집에서 담근 막걸리가 등장하는 매우 토속적인 소설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가족의 모습을 찾고 싶어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