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화여행(실천문학사)에서 문혜진은 신화를 성스러운 신화와 세속적 신화로 나눈다. 우주창조와 같은 신들이 한 행위를 성스러운 신화라 하고, 신들이 한 행위를 인간이 그대로 반복하게 되면 마법적 힘을 가지게 되고 의례가 되면서 신화 그 자체가 마법의 주문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화는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세속적 신화다. 그는 페르시아 신화 샤나메를 우주 창조와 인간과 최초의 왕조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신화의 시대, 많은 영웅들이 나타나서 왕조가 설립될 때까지 악의 무리와 괴물이 싸우는 영웅의 시대, 그리고 역대 왕조의 역사를 읊는 역사의 시대로 구분한다.
내가 어릴 때는 그리스 신화를 잘 몰랐다. 집에 책이 있었지만 다른 동화책들에 비해 크게 흥미를 못느꼈던 것 같다. 그리서 얘기 도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신들의 이름을 주어섬기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조금 컸을 때, 내 이름의 가운데 주 자를 술주 자로 바꾸고 바쿠스 신 하라는 농담을 들었을 때, 어떤 특성과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바로바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감탄스러웠다. 바쿠스는 술의 신이지만 로마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다. 이제까지도 무슨 신이 무엇을 담당하는 신인지 잘 알지 못했다. 신화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었기 때문에, 신의 탄생에서부터 활약과 사멸까지의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방대하게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어 있는 줄 알았다.
저자는 서두에서 그리스 신화를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9세기부터 ‘이교세계’가 끝나는 기원후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p06).'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신화를 하나의 허구적 이야기책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연대기 순으로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정리된 한 권의 장편 소설이 아니라, 여러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기억들을 공유하는 연작 소설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시리즈의 가장 첫 번째 책으로 <올림푸스 신들>이라는 부재에 맞게, 각 지방의 어느 신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활약하고 또 어떤 강력한 힘을 통해 다른 신들과 대결하고 인간들과 어떤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류 역사에 어떤 의의가 있었는가를 되짚는다. 즉, 신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연대기 순으로 이야기의 나열에 주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들 사이의 이해 관계에 따라 얽히고 설킨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신들이 어떻게 변천해왔고, 최종적으로 유일신인 기독교 사상과 부딪치고 흡수되어 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우리나라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이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되어 있는 까닭에 대해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인 기원전 5세기에 살던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기원후 2세기 이후의 로마시대 관점에서 쓰인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때, 쓰인 신화는 이미 그리스 정신 대신 로마의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철학적 사고에 기반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락했다고. 그리고 로마인들은 그 그리스적 생명력을 잃은 신화들을 수집하여 일목요연하게 일정한 순서대로 정리하여 평면적으로 죽은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정리했으며 그것이 우리가 주로 접하게 된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것이다. 이후 위계적인 유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선악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윤리적 종교인 그리스도 교가 우위를 확보하게 되면서 신화적 생명을 가졌던 올림포스 신앙은 박제되어 버렸다.
각 지방마다 다른 신들을 섬겼고, 그러한 지방색이 짙은 신들은 지방의 왕들을 지지하고 관여한다. 제우스의 경우 타고난 바람둥이로 숱한 연문을 뿌리고 다니는데, 그 이유로 ‘각 지방에서 숭배되던 신들이 제우스 신항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리스의 각 부족들에게 자신들의 혈통을 주신인 제우스와 관련시키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졌다고 해석한다. 제우스가 패권을 잡자 모계사회를 기반으로 아프로디테, 아테나, 데메테르(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 저마다 숭배하던 여신들의 위상이 떨어지게 되고 그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그의 연인으로 각색되었고 남신들은 그의 아들로 취급하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이야기 자체로서 끝내는 것들이 아니라 관련 있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그것들의 연결성을 분석함으로써, 그리스 신화를 인류 문화와 연결시켜 이해하도록 인도한다. 책 날개에 보면 신들의 시대에 해당하는, 현재 2권 신들과 직접 교감한 제1세대 영웅들 이야기를 엮은 <신에 맞선 영웅들>까지 나와 있고, 영웅들의 시대에 해당하는 3편 위대한 제1세대 영웅들의 직계 후손들 이야기인 <영웅의 후예들>, 4편 헤라클레스의 모험과 아르고나우타이의 모험을 그린 <영웅들의 대모험>, 5편 선조들의 업보로 인해 비극적 운명을 겪은 영웅들 이야기인 <비극적 영웅들>, 6편 트로이아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들과 그들의 귀환 이야기를 담은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들>의 네 편이 이 시리즈의 나머지로 근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