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욕망의 힘 - ![]() 이명옥 지음/다산책방 |
왜 인간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또다른 종류의 욕망을 품고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역사를 통해 헛된 종교 활동을 해왔던걸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줄을 자르고 가진 것을 다 걸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p223)'. 책에서 인용된 문장이 있다.
두목,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긴 줄 끝에 묶여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의 줄과 다를 지 모릅니다. (...) 당신이 줄 사이를 오고가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과연 그럴까. 작가 이명옥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정체를 원초적 욕망, 사랑과 권력과 야망 등의 탐욕, 존재 추구에 대한 욕망, 성취욕, 그리고 관계 회복에 대한 소통의 욕망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그것들을 예술 로 표현한 작품들을 찾아 미술과 문학을 함께 연결시켰다. 그림이 주가 되는 책이면서, 그 그림 설명과 해석, 그리고 그것과 통하는 문학 작품 속 문장들을 짧게 인용한다.
미술과 관련된 책이 휴식과 위안을 주는 까닭은 예술가의 영감이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 그 자체에서 주는 힘도 크지만, 그 작품과 함께 하는 여백과 텍스트의 힘도 무언가 보탬이 된다. 예술적 사조와 표현 방법, 역사, 미학 등 그림과 관련된 이론을 공부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 휴식보다 앎의 기쁨을 더 기대하게 되지만 읽어야 할 텍스트가 많고 그러다보면 미술작품 자체에 보다는 그 미술 작품의 의미와 의의에 대한 텍스트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은 미술 작품에 대한 텍스트는 하나의 그림 당 1~2페이지 정도로 짧다. 텍스트들의 내용 역시 그림에 대한, 욕망이라는 주제하에서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적 방법으로 가볍게 적고, 문학작품에서 빌려온 인용 텍스트들을 통해 그림을 설명한다.
이런 미술책의 대부분이 전세계적 메이저급의 서구 화가들의 그림을 다루는 데 비해, 이 책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한다. 국내와 해외 거의 반반인 것 같다. 또한 21세기의 최근 작품을 비롯해 우리가 책으로는 접하기 어려웠던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있어서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죽음은 언제나 예술가에게 치열한 주제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아마도 더욱 죽음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댄 채로 그 바로 앞의 죽음에의 영감으로 작품을 완성한 이들도 많았다.
죽기로 결심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강인함과 삶을 견디는 데 요구되는 정신적 강인함 중 어떤 것이 더 강한가(p255)
천재작가 리하르트 게르스가 1908년 25세의 나이로 자살하면서 남겼던 절대 절망의 웃음은 자신의 모든 그림과 자료들을 불태우고 마지막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담고 있다. 친구 작곡가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데와의 불행한 사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이 세기말적 불안, 절망, 허무함이 짙게 깔린 비엔나의 분위기와 겹치면서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는 작가의 추측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무섭고 두려운 죽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천재작가의 최후의 모습이 베일 속에 감추어진 예술가 내면의 삶과 내면의 죽음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반면 미국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에이즈에 걸려 임종을 앞둔 죽음의 공포를 '조화, 균형, 비례 등과 같은 고전적 형식미에 완벽하게 녹여내(p258)'었다. 저자가 인용한 몽테뉴의 수상록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