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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10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문학동네

전쟁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한 수백명의 여자 군인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저마다의 상처를, 저마다의 침묵으로 끌어안고 죽어야 끝나게 될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집필당시 이미 전후 40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침묵 속에 묻혔던 전쟁이 생생하게 목소리가 되어 나오자, 그들은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자기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40년의 세월을 전쟁의 파편들을 안고 늙어가는 동안 인생의 끄트머리쯤에 도달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죽고 난 다음에 멋대로 역사를 바꾸지 말고 물어보라고 한다.  



무엇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그들에게로 이끌었을까. 수년 혹은 수십년간 수백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육성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산문처럼 인터뷰 풍경과 자신의 생각을 곁들였다. 수많은 2차대전의 여전사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끝에 1983년 집필이 완성되었으나, 2년동안 출판사에서 묵혀 있었고 1985년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수백명의 할머니들이 제각기 경험한 제각기 다른 전쟁의 기억이었다. 잘잘한 전쟁의 파편이  남은 생, 남은 생각의 구석구석 점령하고, 밤마다 포화 속, 시체 속에서 끝나지 않을 똑같은 일들을 겪는 그들이 직접 전해주는 각색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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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생명을 입고 살아나 땅에 발을 딛는 장면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크고 위대한 것이 작고 평범해지는 그 순간을.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 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여성이었다. 키보다도 높은 총을 들고, 자루같은 군복을 입고, 발이 두 개가 들어가는 군화를 신었지만, 그들은 여성이었다.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여성들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치마를 벗어던졌고, 귀거리를 빼야 했고, 긴 머리카락을 싹뚝 잘라 밀어버려야 했다. 죽음이 삶보다 더 친숙한 최전방의 전선에서 여자의 삶을 위한 자리를 기대하는 건 사치다. 그러나 용감무쌍한 언니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을 버릴 수 없다. 늘 이야기 속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함께 따라다닌다. 알렉시예비치는 " 그 아이가 죽어서 관 속에 누웠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거야". 남자들의 임무 속에서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스스로의 본질을 변질시키기 위해 얼마나 자주 사소한 것들이 거대한 것들을  압도하는지를 묵도한다. 


그런데 왜 군대는 여성성을 억압해야 할까. 얼마 전 TV 군대 체험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느낀건데, 왜 여성들에게 군대 체험을 시키면서 남성도 아닌 여성을 가장 잘 아는 여성 교관이, 군인이지 여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군인은 군인이고 여성으로서 군대에 갔으면 여성 군인인거다. 남성이 다수이긴 하지만, 소수인 여성이라고 해서 성 정체성을 억압하고 남성이 되어야만 각기 맡은 전투력이 향상되는 것일까. 그들은 그 참혹하고 거친 곳에서 수도 없는 죽음을 묵도하고 끔찍한 장면을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감내하면서도 여성성을 몰래몰래 꺼내보하였다. 


전우의 시체로 가득찬 이른 봄볕 아래 한줄기 민들레 꽃을 보기 위해 너덜너덜 다친 몸을 일으켜 세워 창 밖을 바라보았고, 고양이 한 마리에 감동했다. 귀고리를 숨겨두고 몰래몰래 한번씩 끼곤 했다.  내일 전투에서 죽을 것을 예감하고는 줄기차게 새 속옷을 요구한다. 죽는 것보다 죽음 후의 모습을 더 신경쓰는 여성이었다. 포탄에 맞아 몸이 갈갈이 찣겨 남겨지는 것이 더 두려운 여성들이었다. 갈아입지 못한 속옷을 입고 죽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은 여성들이었다. 대부분 이러한 여성성은 남성 대령들에게 의해 많이 묵살되었지만, 아버지 벌의 한 대령은 소녀 병사들을 위해 여자 미용사를 데려다주고, 눈썹과 속눈썹, 머리를 물들이는 것을 승낙한다. 그는 여러분이 예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쟁은 길다. 금방 끝나지 않는다며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그 소녀병사들을 거의 대부분 죽음으로 내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예쁜 나이에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의 얼굴을 한 그 거친 곳에서 병사들은 뛸 듯이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그들은 모두 안다. 그 날이 마지막일 거란 걸.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공기도, 햇살도 마지막일 거란걸.


그러나 막상 전쟁터에서 남녀 구분이 없다. 2차대전에 참전한 구소련 여성 군인은 1백만명이 참전했다. 그들은 전차병, 보병, 자동소총병, 기마병, 저격수, 항공기 정비사, 운전병 등 똑같이 남자들이 하는 일을 할당받아, 똑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위생병, 간호병, 외과의, 빨치산, 연락병, 취사병, 건설기술병, 기계선반공들도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방 전선으로 뛰어들어 자기 몸무게의 두 배인 부상자들을 질질 끌어 나르고, 차디 찬 진흙바닥을 하루 종일 기어 다니며 지뢰를 제거하는 공병 소대의 지휘관이었고, 포탄이 떨어지는 속에서도 빵을 굽는 제빵병이었고, 그 무거운 물품들을 이고 지고 끌고 참호 속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물품 보급병이었고



그들은 아이들이었다.  열여섯 중학생 아이들이 서로 전장에 나가겠다고 군정치위원회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너무 어리다고 대부분은 퇴자를 맞았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덜 끔찍한 후방이나 통신병 위생병으로 보내면, 또 최전방으로 보내달라고 생떼를 썼다. 뜻하는 대로 안되면, 바로 전선으로 걸어가 직접 합류한다. 여기 인터뷰한 여성 군인대다수가 징집이 아닌 자원입대였다. 그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자신이 없는 조국은 있을 수 없다고 배운 소녀들이었다.  아직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여자 아이는 처음으로 맞닥뜨린 피를 보자, 부상당했다고 소리친다.   아직 키가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들, '열여덟 열아홉에 전선에 나갔다면 그런대로 몸이 튼튼해졌을 텐데 성장이 끝나기도 전 열여섯에 나가 회복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4년 만에 머리가 하앟게 세고 인생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파가 되어 돌아온 상실된 무엇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 수 있었을까. 그녀들은 목숨보다 더 소중한 뭔가가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지나왔다. 때로 이념이 모정보다 강했다. 꼬마 아이를 시켜 바구니 밑에 지뢰를 가져오게 하는 빨치산 연락병(엄마)이 있었고, 온 몸이 까맣게 탄 채 독일놈들에게 끌려다니는 두 아들 형제의 시신을 보고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울음소리도 낼 수 없는 엄마의 모진 침묵이 있었고, 독일군들의 손에 유린당하며 죽임을 당하기 전에 자기 손으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죽이는 엄마가 있었다. 



조국을 위해 싸웠건만,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한 것처럼, 이웃과 형제를 위해 싸우고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왔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족은, 애인은 그들을 외면했다.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 남자들과 똑같이 몸이 부서져라 싸우고 돌아와 평생을 안고 지고 살아야 할 중상들을 지닌 채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상처입은 숭고한 전쟁 앞에서 차가운 외면의 벽과 마주한다.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서 몇 안되는 살아돌아온 여자 병사들은 창녀 취급을 받는다. 군대의 암캐들이라며 온갖 말로 모욕당했다. 물론 그들도 사랑을 했다.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똑딱하는 순간의 죽음, 그렇게 가까이에 죽음이 있었고, 때로 사랑이 있었다. 전쟁중에는 전우로써 그렇게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던 남자들이 전후에는 군복냄새나는 여성들을 외면한다. 함께 전쟁을 치르고 어렵게 살아 돌아온 약혼남의 부모는 어떻게 전쟁터에서 데려온 여자와 결혼할 수 있느냐며, 네 동생들은 시집도 못간다며 내친다. 말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을 이겨낸 전쟁이 끝나기만을 고대하고 기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미워한다. 


2천명이 아니다. 2만명도 아니다. 20만명도 아니고 200만명도 아닌, 2천만 명이 전쟁에서 죽거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스탈린 치하에서 죽거나, 전쟁에서 살아돌아왔다는 이유로 죽었다. 죽음을 비껴난 사람들은 상처입었다. 잘린 팔과 다리들은 의무실 구석에 쌓여갔으며, 세상 어딘가에 몸이 성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간호병이 있었고, 죽과 국을 한 솥 가득 끓여놓았지만, 전투가 끝나고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할 때를 자주 보았던 야전 취사장의 솥단지가 있었고, 팔다리가 끊어질락말락 덜렁거리는 상태의 부상병을 이송하기 위해, 덜 끊어진 심줄을 이빨로 끊어내야 했던 위생병이 있었다. 


죽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40년간 눈을 감으면 훤히 보이는 풍경. 여인은 어느 봄날.. 이제 막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을 따라 걸으며 부상병들을 찾는 모습을 매일 마주한다. 어떤 여인은 모든 빨간색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빨간색 음식도 먹지 못하고, 빨간색 옷도 입지 못하고, 빨간색이 들어간 어떤 물건도 가지지 못한다. 그들에게 빨간색은 피였고, 전쟁이었기에.


* 별점 5+5로 모자라는 책이다. 이런 책을 위해 별점을 아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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