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국내에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연일 매스콤에 오르내리는 유명세를 치렀다. 삼성가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서 100억 넘는 고가의 작품이 지급된 문서가 추문을 둘러싼 것이었다. 덕분에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모르면 간첩이 되는 그림이 되었다. 재벌의 기업윤리와 도덕관과는 별개의 문제로, 책은 국보급 문화재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측면만 다룬다. 그 값비싼 미술품을 비자금으로 사들였건 아니건, 삼성의 고 이병철 전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국보급 예술품을 수집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어 개방하는 등의 예술품 수집 활동은 국내 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들이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우리 민족은 엄청난 수탈을 겪었고, 수천년을 전해오던 유물들 역시 탈탈 일제의 약탈을 비껴가지 못했다. 도굴꾼들은 왕실의 무덤과 유적을 파헤쳤고, 사찰은 물론 개인 소장자들까지 마수를 피하기 어려웠다. 간송 전형필이 엄청난 재산과 유산을 유물을 사들여 보존함으로써 문화재 보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면, 삼성가는 예술품에 대한 무지막지한 애정, 소장욕, 덕후 기질에 거의 무한한 재력과 전문 인력을 뒷받침으로 엄청난 국가 보물급의 수집품을 모았고, 기업 마인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삼성문화재단과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특히 삼성가의 막강한 경제력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 반출된 주요 예술품 반환을 가능하게 했다. 고 이병철 회장은 본인 스스로가 기업 경영의 최전선에 있을 때조차 생전 매일 개인 교사를 두고 서예를 익힐만큼 한국 서화와 문화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심이 있더라도 재벌이 관심이 있으면, 수집이 용이하다. 아직 유물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했으니, 남아 있는 것들, 빼돌린 것들, 도굴된 것들 등등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도 분명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 실린 국보급의 대단한 작품들은 일제강점기와 전란에 목숨을 걸고 때로 간장 종지 하나인 밥상을 먹으면서 지키고 보존해 오다가 삼성가의 손에 양도된 것들도 있고, 일본에 반출되었으나 한국인에게는 팔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미국을 통해 사서 어렵게 국내 반입해온 것들도 있고, 우연히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이 엿장사에게 팔렸던 것도 있고, 업자들에게 샀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도 있다.
고 이병철 생전 당시만 해도,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빤했으므로, 고가의 희귀한 예술품이 어디선가 발견되거나 매물이 나오면 바로 연줄이 닿았다고 한다. 골동품계의 큰 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집앞은 새로 발견된 혹은 매물로 올라온 골동품을 소개하려는 업자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었다. 이병철은 이렇게 수집된 수많은 유물들의 관리에 대해서 말년에 가서야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삼성문화재단과 호암 미술관을 건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호암은 이병철의 호이다. 호암 미술관은 곧 확장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고, 미술관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점을 알아차린 이건희는 차기 프로젝트를 도심에 짓기로 한다. 이것이 리움 미술관이다. 리움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엘, 렘 쿨하스의 합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20세기 대표 건축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그 이름도 유명한 프랭크 개리가 선정되었으나, 부지 선정과 외환위기 등으로 철회되고 후에 세 사람의 협엽으로 현재의 리움 미술관이 지어졌다.
미술관의 생명은 수집품의 양과 질이다. 호암 미술관과 그 소장품들은 고이병철 회장의 작품이고, 리움 미술관과 소장품들은 이건희의 작품이다. 리움 미술관은 세 개의 건축가가 지은 세 개의 별관에서 각각 고미술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별도로 취급하는데 호암과 리움 이 두 미술관을 합쳐 삼성가가 지니고 있는 국내 명품 유물은 국보 37, 보물 115 로 152건이다. 이는 간송미술관 23, 호림박물곤 46건을 보유한 것과 크게 비교되는데, 이렇게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할 수 잇었던 것은 물론, 고 이병철의 광적인 수집욕도 한몫햇지만, 이건희 체제에 와서도 국보 100건 수집 프로젝트와 같이 지속적으로 문화재 수집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맨으로, 고 이병철 시절부터 명품 컬렉션을 주도하고, 박물관 건립과 활동을 이끌었던 인물로, 삼성맨다운 엘리트다. 고고학자, 미술사학자, 수집학자, 박물관학자 등으로 이력이 나와있는데,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해서 고고학, 미술사학, 인류학, 중국학 등을 공부했으니 고미술품 수집과 박물관 경영에 적합한 인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미술관을 만들고 기획전을 준비하고 하던 과정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는 삼성가에 대한 충성심이 반영되어 보인다. 물론, 삼성가의 검수를 거친 글이라고 밝히고 있고, 그들의 감수 없이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기는 힘들 것이므로 이해하기로 한다. 저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 오래된 보물들이 풍파를 견디고 숨겨왔던 이야기들이라고 한다. 도자기 한 점, 금관 한점, 삼국시대 쓰여진 글씨 한점, 이런 물건들의 현재 가치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다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세상에 던져지면서 맞서야 했던 그 시간들, 그 이야기들을 찾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가 얘기 하고 싶은 만큼, 또 우리가 듣고 싶은 만큼 그 보물들이 간직하고 있던 긴 시간동안의 이야기는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삼성가가 얼마나 희귀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지, 내일 당장 호암미술관과 리움 미술관을 가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품고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