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았는데, 나오미 왓츠가 릴 이었고, 로즈는 로빈 라이트라는 배우였다. 바다위에 둥둥 떠있는 저 갑판위에서 네 사람의 나른한 삶이 이어지면서 끝난다.
영화에서는 조금 더 감정선이 상세해진다. 먼저 시작한 건 로즈였지만, 그리고 그걸 목격한 톰이 혼란스러워하면서 집을 나와 바닷가 모래밭에서 잠든 후 일어나서 다음날 릴을 찾아가서 키스하지만, 릴은 처음에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로즈가 봤다고 생각해보라고 화를 내자, 그는 그게 이유냐고 하면서 엄마가 이안의 방에서 청바지를 들고 속옷 바람으로 나오는 걸 봤다고 고자질한다. 그 얘기를 들은 릴은, 따지려고 로즈를 찾아가지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되돌아온다. 릴 집에서 계속 알짱거리다던 톰은 릴이 잠든 침대로 가서 옆에 누워 등지고 잠들지만(잠들었을리가..), 내쫓지 않자 슬금슬금 릴에게 가까이가서 거사를 치른다.
이렇게 둘의 관계가 몇년간 지속되다가, 톰이 메리를 만나 데려오자, 책에서처럼 로즈는 모두의 관계를 청산할 것을 선언한다. 이안은 펄펄뛴다. 결혼하는 건 톰인데, 왜 자기들 커플도 헤어져야 하느냐는 거다. 그는 로즈의 집 문앞에서 쾅쾅 두드리지만, 로즈는 그를 허락하지 않고, 소설에서처럼 한나를 만나서 다시 여덟명의 관계가 시작된다. 할머니 2, 아들 2, 며느리 2, 손녀딸 2..
소설의 내용과 어긋나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크게 강조한 것은 로즈와 톰, 이안과 릴의 차이이다. 이안이 로즈를 너무 심각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릴 역시 토머스가 여자를 데려오자, 산산히 부서져내린다. 남편이 죽으면서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가녀린 이미지로 나오는데, 토마스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과 달라지는 결정적인 클라이맥스 지점이 생기는데, 릴과 토마스의 정사 장면을 이안이 목격하는 것이다. 그는 분노한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이런 이유다. 로즈를 심각하게 사랑했던 이안은, 토마스가 메리와의 결혼 때문에 자신들까지 희생해왔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들은 이제까지 비밀리에 계속 관계를 지속해왔고,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화가 난 이안은 두 아내들이 있는 로즈의 집으로 돌아가서 로즈에게 당신 때문이라고, 모두의 관계를 다 밝혀낸다. 눈치 빠른 메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차갑게 떠나버리고, 로즈는 할머니들을 엄마보다도 더 따르던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눈물 흘린다.
그리고 장면은 바뀌고, 바닷 속 출렁이는 판에 넷이 나란히 나른하게 누워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 전의 그들은 활기차고 생동감 넘쳤다. 그리고 아이들이 있을 때의 그 떠들석한 장면 역시, 그 와중에 두 아내가 살짝 소외된 듯한 이미지만을 제외한다면 행복이 넘치는 소란스럽고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이다. 이제 모두가 떠나고, 그들 모두가 원하는 커플들이 아무 바람도 없이 출렁이는 갑판위에 몸을 누인 모습은 섬뜩하도록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