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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진지하지만 웃긴 고민 해결

[도서]비밀보장

송은이,김숙 공저
다산책방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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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올라가서 삽질중 으허헉 짜증나

책을 받고, 아 진짜 무슨 이런 책을 보냈대, 수준을 어떻게 알고..라고 툴툴 거리며 테이블 위에 두었다가 마감일이 이번주까지라고 카톡에서 삑삑거리기에 게놈 책을 읽다가 머리좀 쉬어갈 생각으로 들었다가, 오히려 이 책 먼저 끝내게 되었다. 엄청 재밌다. 뭐가 어떻게 재밌냐면, 웃기다. 엄청 웃겨서 낄낄거리면서 읽는데 읽다보면 꼬돌꼬돌 씹히는 알맹이들이 있는 거다. 


티브이를 많이 안봐 잘은 모르지만, 일박이일, 무한도전 이런 오락 프로그램들이 남자들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로 가기 시작하면서 여성 개그맨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던 것 같은데, 그런 추세는 십여년간 계속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송은이와 김숙이 원래 엄청 친한 선후배 관계인데, 연예인들의 생활이 안정된 것이 아니어서인지, 둘이 동시에 뭐 프로그램 맡은 것도 없고 해서 심심했었던 모양이다. 우리 뭐 재미난 거 해볼까? 해서 시작한 게 팟캐스트 방송이 <비밀보장>이었다. 공중파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당연히 몇명 듣지도 않고 답글도 거의 안달렸었는데 곧 입소문을 타서, 팟캐스트 1위의 대박을 쳤고 그러다가 공중파 <언니네 라디오>로 진출하게 되었다고. 나는 예전부터 송은이가 엄청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많이 안나온다고 여겼다. 


어쨌든 개그우먼 둘이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했을 법한 분위기의 책을 받아들고는 시큰둥했던 것과는 달리, 첫페이지부터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팟캐스트를 찾아 들어보니, 책의 구성이 헐렁한 진행상의 잡담이라던가 쓸모없는 인트로 같은 것을 싹 제거하고 알짜배기 대화만을 컴팩트하게 배치해놓았다. 그래서 그 긴 방송을 길게 듣고 있는 것보다 압축된 내용을 책으로 읽는 게 나에게는 더 맞았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은근 결정하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고민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친구 결혼식에 얼마나 조의금을 내야 할지,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면접 때마다 머리속이 하얗게 텅비어버려 떨어지는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동성애자인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한다면 몇살쯤 하는 게 좋을지, 소개팅할 때 솔직해야 할지, 매너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지, 연극모임에 나가는데 사랑 연기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사귄지 몇 주 되어 키스를 해야 하는데 장소는 어디에서 해야 하는지, 소개팅 앞둔 뚱뚱녀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등등 제법 고민거리가 되고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할 정도가 되는 내용을 다루는데, 방송에서 뭐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아닌 코미디언 둘이 이런 고민을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의 막강한 인간관계 때문이다. 


고민이 선택되면, 그들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임자를 선정해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건다. 물론 섭외해두었고 준비된 답변일테지만, 그렇게 적절한 조언과 웃음을 함께 선사해줄 적임자를 빠르게 찾아내어 담백한 인터뷰를 끌어내는 두 콤비의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였다.  20대 중반의 취준생이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부모님께 알려야 하는지에 대해 홍석천의 답변은 울컥할 만큼 마음을 건드렸다. 


(홍석천)처음에는 다 힘들어...웬만하면 커.밍.아.웃.을 하.지.말.라.고 하.는. 편이거든. 부모님께 너무 큰 아픔이기 때문에..

...

(김숙) 결국은 평생 숨기기는 힘들자나. 이정도면 좀 밝혀도 된다 하는 나이가 있을까.

(홍석천) 삼십대 초반에서 삼십대 중반. ...어쨌든 집에서 쫓겨나도 방 하나 내가 구할 정도로 경제적인 안정이 되어 있으면 좋지.


사랑 감정 연기가 안되는 배우에게 연기자 이재용의 충고는 전문적이다. 그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을 상황이 주는 자극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물리적인 환경이나,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나누고 있는 대화를 통해 교감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두 사람과 관련된 노래를 선택해서 자꾸 듣는다든지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하라는 것이다. 정서적 기억의 한기로 자기 경험을 토대로 연기에 담을 줄 알아야 절절한 사랑을 연기할 수 있다는 말. 멋지다.


이런 고민들이 너무 심각하다면, 아주 깨알같은 별 고민같지 않은 짧은 고민도 즉석에서 해결해준다. 아이폰 신상을 새로 샀는데 케이스를 씌울까 말까 같은 사소한 고민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숙의 대답은 이렇다. 아이폰 신상은 2년 쓰다가 중고나라에 갖다 팔아야 되니까 케이스를 씌워라 가 답이다. 엄마가 맨날 집에 몇시에 오냐고 물어보는데 몇시에 집에가야 잔소리를 안들으면서 최대한 늦게갈까 라는 청소년다운 질문에는 정확히 11시 30분을 제시하고 거기에 플러스 5일에 한 번씩은 일찍 들어가줄 것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여름 패션에 하얀바지를 입으면 속옷이 비칠까 걱정된다는 고민에는 흰바지는 비치라고 입는 거라며 빨간색 같은 강렬한 색을 입으라는 충고다.소개팅한 남자가 네 번 만나고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자신이 까인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 여성에게 김숙은 단칼에 이렇게 정리한다. "언니 정말 너무 눈치가 없다. 그냥 까인 건 까인 거에요. 왜 이유를 알고 싶어해?" 똑똑한 사람이라도 사랑에 실패한 마음에 아뒤 상황 정리가 이렇게나 안될 때가 있으며 친한 친구라도 뭐라 대답해주기 어려운 상황일 때,  이 간단한 걸 직접 이렇게 말해줘야 세상 이해가 되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는 거다.  


출처-예스24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