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로봇의 부상>이라는 책을 읽고 별점을 만점을 주었는데, 너무 헤펐다. 이 책을 별점 만점을 주려니, 그 책과의 차이를 나타낼 방도가 없다. 저서가 많지 않은 국내 저자를 과소평가한 걸 반성한다. 사실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 책이 더 좋은 이유가 있는데 좀 더 중립적이고, 좀 더 사색적이라는 점이다. 로봇의 부상이 미래의 직업에 대해 비관적이라면 이 책 역시 비관적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기술문명의 폭발적이고도 혁명적 발전에 수반되는 윤리적 사회변화에 대해 더욱 통찰력있는 자신의 시각을 제시한다. <로봇의 부상>을 읽고, 아 어떻게하나 우리의 예쁜 아들 딸들은 미래에 뭘 해먹고 살건가 라는 걱정 밖에 안드는데, <로봇의 시대, 인간의 일>은 그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흥미로운 현상들을 생각해보는 유익한 시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빠른 로봇의 발달로 인한 일자리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데이터가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므로 더욱 현실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알면, 곧 한국을 알게되겠지만, 디지털 정보의 독점화가 가져오게될 가속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역시 한국이 미국보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 사회 구조가 다르고, 서비스 산업의 양상이 다르고, 아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다. 이런 다른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제시하려면 국내 저자가 직접 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내용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말을 많이 적어놓은 전문 IT 서적이 아니라, 최근 몇년동안의 변화를, 아마도 천천히 피부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그러한 변화들을 전체적으로 큰 그림으로 보는 데 의의가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셀프자동차에 대한 내용 역시 <로봇의 부상>에 있는 내용과도 중복되는데, 분명 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것은 멋진 신세계다. 그 멋진 신세계가 실현되는 동안, 세계의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모든 운전자들은 모두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사실을 마지막에 섬뜩하게 제시하는 <로봇의 부상>과, 그와 더불어 그러한 자동차가 스스로 데리러 와서 데려다 주는 동안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러한 신세계가 가져올 위협, 원격 해킹으로 인한 차량 통제권 상실 혹은 서버의 오류로 인한 대형 사고,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의 문제, 무엇보다도 위험한 상황에서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하는 도덕적 윤리적 문제 등과 같이 우리가 미처 생각지 않고 무턱대고 좋은 기술을 받아들였을 때 생기게 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얼마전, 그녀(2013)를 보았다. 간단한 물음에 답한 사용자에 맞춤형 운영체제가 생성된다. 이제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와 함께다. 아무때나 말을 걸어오고, 이메일을 분류하여 처리하고, 잠자리에서 섹스까지 한다. 엑스마키나도 재미있게 봤지만 휴머노이드의 하드웨어가 그정도 레벨의 지능을 갖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이언스 픽션의 경계 너머 깊숙한 곳에 있다. 생각해보시라. 인간의 하드웨어는 생명 탄생과 함께 그 진화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손, 인간의 표정, 인간의 눈빛, 인간의 언어(목소리), 인간의 걸음걸이와 모든 행동 등 정교한 인간의 움직임은 250만년전부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수십억만번의 변이가 버리고 선택하여 적응한 것이고, 휴머노이드란 그렇게 진화한 인간이 겨우 수십년전부터 흉내내어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그리 쉽게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빠른 IT 기술로만 구현가능한 기술이 아닌것이다. 유전학과 뇌과학이 그리고 그 배후의 수많은 과학들이 동시에 어떤 선을 넘어야 가능할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그것은 후천적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태어난 이후, 자라면서 습득한다. 20년동안 교육받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조만간 컴퓨터가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엑스마키나>보다 <그녀>가 더 그럴싸하다.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내가 가장 감명깊었던 장면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다. 혼자(그들의 운영체제에게) 대화하고 웃고 울고 하는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지만, 그들 각자들은 사람보다 자신들의 운영체제와 더욱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대화, 자신의 이상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개체들, 몸없는 정신들...
저자 구본권은 <정보의 유효기간이 단축되는 지식반감기>라는 멋진 소제목의 챕터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게될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수용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제시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계속 학습하지 않으면 이내 낡은 지식과 권위에 의존하는 구세대가 된다. 이는 우리의 아재 세대들을 통해 이미 학습된 터이다. 모든 정보는 절대지식이 될 수 없고 유효기간과 반감기를 지닌 가변적 지식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직업에 관련해서, 오래전 이미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지만, 로봇이 약사, 변호사, 의사 등의 전문가의 일까지 대체하기에 최적화된 시대에 한 분야의 지식을 십여년간 교육받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 이 책 현재 10년 대여 도서다. 전자책으로 반값으로 구매해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