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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죽은 사람을 좋아하면 안돼?

[도서]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저/공경희 역
민음사 | 200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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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해보였다. 파수꾼은 지키는 사람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호밀밭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놀다가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란다. 이것은 16세 주인공 홀든이 여동생에게 대체 뭐가 되려냐는 질문에 즉석에서 생각해낸 답이다. 호밀밭이 왜 절벽 위에 있을까. 그것은 알 길이 없지만,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호밀밭이 절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홀든은 그 아이들이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캐처다. 아이들은 당연히 순수성을 상징하고, 홀든은 16세로 어른과 아이의 그 경계에 있다. 그의 눈에 모든 것은 가식적이고, 그래서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못마땅해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며 무언가를 행동에 옮기는 것도 아니며, 단지 겉으로는 소심하게 행동하면서 속으로 이리 저리 의식의 흐름을 따라 나타나는 모든 가식적인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또 자신은 정작 만나는 사람들에게 터무니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거짓말을 해댄다. 그의 거짓말은 어떤 목적이 있는 거짓말도 아니고 단지 작은 불편함 정도를 모면하기 위한 것인데, 때로는 전혀 할 필요가 없는 거짓말까지 천연덕스럽게 지어낸다. 세상 모든 게 맘에 들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가식적이고 싫은 삐딱한 홀든의 눈에 어린 여동생 피비는 유일하게 애정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이다. 


홀든 콜필드가 다니는 학교는 미국의 명문 사립이지만, 이 학교 말고도 다른 명문 사립을 세 번이나 걸쳐서 이 학교로 왔는데 그 때마다 번번히 낙제를 하고 이 학교에서도 영문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서 3일 남은 이 학기를 마지막으로 퇴학당하는데, 그 3일을 못견디고 룸메이트와는 쌈박질을 한 채, 무단으로 기숙사를 이탈해 뉴욕행 기차를 탄다. 그는 집도 학교도 아닌 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기로 작정했으나, 막상 혼자가 되고 자유로와지니 그 시간에 무얼 해야 할 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막막하다. 홀든이 기숙사를 무단 이탈하여 방황하던 3일간의 시간동안 홀든의 행적과 홀든의 의식의 흐름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이다. 책의 유명세에 비한다면 홀든의 행적은 별볼일도 없고, 찌질할 뿐이지만, 그러한 그의 이유있는 방황이 최종적으로 수렴하는 방식은 역시 명작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중산층 환경에서 크게 부족함 없이 살고 있던 홀든은 집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가서도 집으로 가지 않고 호텔에 투숙하고, 창녀를 부르고, 술집에 가서 엄마벌되는 여성들을 추근덕거리고, 라디오쇼를 구경가고, 클럽에 가고, 퇴학당한 다른 옛학교 친구를 불러내 시덥지 않은 소리를 듣고, 박물관에 가고, 피비의 학교에 가고, 예전 학교 선생님의 집에 가서 하룻밤 신세 지기도 하고, 또 오밤중에 전혀 모르는 여자의 집에 전화해서 술마시자고도 하고, 옛 여자친구에게 연일 전화를 걸어 들어왔는지 확인을 하고, 썸타는 여자 친구도 만난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그는 더욱 더 갈 곳 없는 외로운 존재임이 확인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는 타자의 허위와 자신의 거짓말 사이에서 겉돌면서 더욱 더 고립된 존재임을 확인한다. 허위와 가식을 속으로는 그렇게도 비웃고 증오하면서도 홀로 있는 시간을 못견뎌하며 더욱 더 이사람 저사람 조그만 인연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어대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만남을 추구하는 그는 한 마디로 모순 그 자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해서 아마도 홀든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형용사는 phony라는 말일 것이다. 배우는 연극을 하면서 마치 현실인 것처럼 지나치게 가식적이고, 피아니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훌륭한 연주를 하는 것을 알면서 겸손한 척 가식적이고,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모금 운동을 하는 엄마들도 위선과 거짓 투성이이고, 설상가상 한밤중 술에 취해 돈도 다 떨어져 갈 곳 없는 자신을 따스하게 받아주고 재워준지만, 홀든이 자는 동안 머리를 만지는 '이상한' 행동을 하여 홀든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다. 


이틀간의 일탈 끝에 여동생 피비가 보고 싶어 도둑고양이처럼 자기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간 홀든. 낙제를  하고도 일탈을 일삼는 철부지 홀든과는 달리, 피비는 오히려 오빠 대신 아빠에게 혼날 걱정, 오빠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울음을 터트린다. 오빠는 왜 그렇게 세상을 증오하냐, 뭘 해서 먹고 살거냐, 뭐가 될거냐, 좋아하는 게 뭐가 있는지 하나라도 대봐라. 그리고 홀든이 유일하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대상은 이 어린 여동생이다.  그가 좋아하는 게 10세때 죽은 죽은 동생 앨리라고 하자, 어린 피비는 오빠에 대한 걱정으로 억장이 무너진다. 왜 죽은 사람을 좋아하냐 왜 오빠는 그모양이냐, 그리고 홀든이 한 말.


죽은 사람을 좋아하면 안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은 여러 방식으로 묘사된다. 홀든은 앨리가 죽던날 유리를 주먹으로 깨서 다친 상처를 지니고 있고, 룸메이트가 자신의 전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간다며 작문 숙제를 부탁하자, 그걸 해주는데 거기에 앨리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혼잣말로 앨리에게 자주 이야기를 한다. 홀든의 이 말은 오랫동안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 철부지 아이의 시선에서 내가 건진 게 있다면 바로 홀든이 앨리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을 추스리기 위해 잊으려 노력하고 부정하고 없던 사람으로 만드는 대신 그는 죽은 사람을 계속 그의 옆에 두고 계속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죽었지만, 죽었어도 사랑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나는 이 말에 감동했다. 사랑이 품은 것 만큼 돌려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죽었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모든 가식적이고 허위적인 것들과 결별하고, 집에서 나와 어느 한적한 시골 주유소 같은 곳에서 일을 하며 스스로 벙어리가 되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말을 할 필요가 없고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다. 그에겐 세상이 허위와 위선에 가득한 곳이지만, 결국 그가 머물 곳이 그곳이다.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구석구석  F**K YOU 낙서를 피할 수 없고 지울 수도 없어 그런 곳을 피해가고 싶지만, 그 자신 역시 어린 여동생이 만류할 정도로 말끝마다 욕설을 달고 산다. 허위의 옷을 잔뜩 입은 사람들고 섞이지 않고자 벙어리가 된다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3일조차도, 아니 그 3일 중 아주 짧은 몇시간 조차도 텅빈 시간을 홀로 고요히 지켜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할 누군가를 찾아 술집과 클럽을 전전한다. 이것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16세의 나이에 아직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한 편과 그런 것과 결별하여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어른의 두 가지 상태의 어딘가에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성립되지 않은 가치관의 혼란이다. 


앞에서, 호밀밭은 왜 절벽에 있을까를 질문했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 절벽은 순수성을 잃고 어른의 세계로 떨어지는 걸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는 한 가지 선택지를 작성해본다. 그가 진정성있게 대하는 사람은 소년인 채로 죽어 박제된 동생 앨리와 아직 10세인 여동생, 그리고 더 어릴 때의 여자 친구였던  제인이다. 피비는 커서 어른이 될 것이고, 앨리는 언젠가 잊혀질 것이고, 제인은 이미 커서 어른이 되어 자신의 룸메이트와 섹스를 했을지도 모르는 쉬레딩거의 고양이 같은 상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어느새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 역시 아직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은 상태인 것이다.


영문 원본 텍스트를 보면 구어체에 당시로서는 매우 심한 욕설(그래봤자 지금으로 치면 욕에 해당되지도 않지만)을 담고 있으며, 문장이 단문이라 영문 텍스트를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추천한다. 민음사 번역본은 너무 예의바른 청년처럼 쓰여져 있어서 잘 매치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