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사회적 주제의식을 가지고 발로 취재를 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이 책 역시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지만, 들어 앉아 머리 쥐어짜고 쓴 에세이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쓸 지 대략 정하고 공들여 기획해서 사진기자, 출판사 편집 직원 등을 동원해서 매달 한번씩 방문하며 쓴 글들이다. 요즘 케이블 종편 프로그램 중, 저런 걸 왜 하나, 저런 프로그램을 누가 보나 싶은 프로그램인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것 중 하나가 <나는 자연인이다>인데, 사실 그런 프로그램은 노년기를 눈쌓인 첩첩 산중 산골 구석으로 들어가 사는 것이 로망인 남편만 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집 저 집 의외로 그 프로그램 즐겨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처럼 구질구질한 궁상의 최고봉을 달리는 건 아니지만,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지리산 산골 마을에 터를 잡고 소박한 일상을 일구는 사람들이다. 그 책에는 이 책의 주인공인 버들치 시인의 이야기도 많이 실려있었던 모양이다. 책이 나온 후 그 곳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다면 방문객들이 너무 많아져서 고요한 정취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되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 버들치 시인을 검색해보면 여러 블로거들이 지리산 여행중 일부러 찾아가서 계십니까 하고 들어가 버들치 시인을 만나고 사진까지 찍고 왔다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조용히 살고 싶어 산 속에 들어갔는데 그 조용한 생활이 책에 나와 히트를 치게 되니까, 조용함을 잃어버린 아이러닉한 상황.. 유명세란 이렇다. 뭔가 공지영 작가가 굉장히 잘못한 듯한 분위기..
그럼 땅 값이 올랐다고 신나라 할까.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게 공지영 작가가 소개한 소박함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은 땅을 사서 전원주택을 짓거나 한 게 아니라 그냥 아주 낡은 시골집을 빌려, 가꾸고 사는 경우라서, 이렇게 유명세를 타다 보면 낙후된 도시의 골목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집값과 땅값을 올려놓아 결국은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일구고 그 지역에 정체성을 부여하던 입주자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 시골 구석에까지 번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 거의 거저 빌려주었던 집주인, 땅주인들이 그리고 거대 자본들이 그곳을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버들치 시인과 공작가의 지리산 친구들은 주인이 나가라 할지 혹은 땅을 팔아버릴 지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는 거였다. 이 부분은 지나가면서 살짝 흘렸던 말인데 내가 책 읽으면서 별의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그렇다면 책 때문에 유명세를 타서 너무 많은 방문객들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게 된 지리산 친구들에게 왜 더 민폐가 될지도 모르는 또다른 책을, 그러니까 이곳 지리산 자락의 버들치 시인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가.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돈 때문이다. 버들치 시인이, 무슨 스님도 아닌데, 무소유를 원칙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고, 현금이라고는 딱 200만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생기는 족족 기부 등으로 없애버리는데, 그 200만원 역시 나중에 죽으면 친구들에게 민폐라, 관값으로 준비한 돈이다. 그런데 그렇게 무소유로 사는 삶이 때로 삶에 위협이 되는데, 갑자기 심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게 된 걸 알게 된 공지영 작가와 그 친구들이 십시일반해서 수술을 시켜 사람을 살려놓은 후, 공지영 작가가 이 책을 써서 인세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보태기로 한 것이다. 공작가의 처음 생각은 버들치 시인에게 직접 에세이를 쓰게 할 셈이었는데, 사람들이 (버들치 시인에게 하는 말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인이 에세이 써서 돈 번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는 안쓰겠다고 버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면 당신이 밥을 하쇼, 글은 글꾼인 내가 쓸테니, 대신 맛있게... 이렇게 해서 출판사와 함께 1년 스케줄동안 대부대가 한 달에 한 번씩 버들치 시인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먹고 마시고 놀고, 그렇게 먹고 마시고 놀은 이야기들을 글로 사진으로 옮긴 게 이 책이다.
그러니까, 주로 먹고 마시고 놀은 이야기이다. 50넘은 어른들이 뭐하고 놀게 될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제목이 밥상이라 시골 밥상의 다양한 레서피가 주가 될 줄 알았는데, 소개하는 음식들은 소박하고 흔한 재료로 가장 소박한 양념들을 사용해서 자연의 맛을 더한 음식들이다. 음식 자체만 궁금하다면, 평범한 시골 밥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미각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직접 가꾼 야채와 자연의 맛에 정성의 양념이 더해지고, 아재 개그와 지루한 왕년에 시리즈도 웃으면서 들어주는 친구들이 함께 하는 밥상은 최고급 식당의 최고급 음식보다 맛있어 보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