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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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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을 주어야 해 [도서]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저/이소연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여성운동사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버지니아 울프의 은 문학이라는 측면, 즉 여성의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혁신적인 생각을 기술한 책임은 분명하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강연체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책이 나오던 해보다 한 해 전인 1928년 켐브리지에서 이라는 주제로 두 차례에 걸친 강연을 끝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다. 이 때의 청중들에 대해서는 펭귄 문고의 특성인 매우 길고 친절한 서문에 포함된 비평이나 자료에도 별 내용을 찾을 수 없으나, 그날 강연을 마치고 켐브리지에서 돌아오던 날 쓴 일기에는 청중이 글쓰기를 열망하는여성들인 것임을 암시하는 문장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장에 나..
[앨리너 캐넌] 루미너리스 루미너리스 1 -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다산책방 계속해서 2편을 읽기 전에 1편의 내용을 약간 정리해둔다. 배경은 1860년대, 뉴질랜드의 금광 호키티카 마을이다. 세 개의 사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1. 크로스비 웰스가 마을에서 떨어진 골짜기의 외딴 오두막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2. 같은 날 마을의 잘나가는 창녀 안나 웨더렐이 거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자살 미수로 감옥에 갇혔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다. 3. 동일한 시간 크게 성공한 에머리 스테인스가 행방불명된다. 이런 일이 일어난느 동안 소설의 화자 무디는 갓스피드호를 타고 금을 찾아 이 마을에 들어오던 중 배는 폭풍을 만나고 흔들리는 배 안의 화물칸에서 기괴한 사건을 목격한다. 크라운 호텔에 숙소를 정한 그는 호텔 흡연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청년의 야망과 사랑과 배신과 증오, 그리고 용서 [도서]적과 흑 (하) 스탕달 저/임미경 역 열린책들 | 200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단눈치오의 을 읽다보니, 예전에 읽고 리뷰를 1편만 쓰고 말았던 스탕달의 생각이 났다. 두 주인공 모두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고, 비극적으로 사랑을 끝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사치와 향락에 쩔은 붕괴 직전의 귀족들의 일상과 대화, 심리를 상세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에서 쥘리앙은 의 안드레아와 비교해보면 치기와 불안을 껴안고 고뇌하는 젊은 청춘이며, 안드레이와 비교해볼 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신분과 부를 기반으로 예술적 감각과 재능과 광범위한 지식 수준 등 모든 면에서 비교 불가의 초라한 청년이다. 쥘리앵은 확실히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당시 자유와 평등을 열망하던 프..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쾌락 1830년대에 프랑스에서 쓰여진 스탕달의 에서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쥘리앙은 왕정복고라는 시대적 불운에 갇힌 자신의 운명을 사랑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듯 갈구한다. 1857년에 출간된 플로베르의 의 주인공 엠마는 화려하고 우아한 귀족적 삶을 꿈꾸며 파멸을 향해 물질적 향락과 손에 잡히지 않는 쾌락을 추구했다. 왕정과 귀족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방향에 눈 먼채, 무한한 부가 샘솟듯 공급되는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적 삶을 그린 쾌락은 19세기 말, 그러니까 그러한 체제말의 귀족의 몰락이 새로운 시대의 뒷전으로 사라지기 직전이라는 감각 없이 타고난 신분상의 부와 향락이 영원할 것처럼 그려진다. 나른한 귀족들의 일상은 탐미적이고 퇴폐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엠마가 꿈꾸었던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종이로 만든 가짜 행복 속에서 [도서]종이달 가쿠다 미쓰요 저/권남희 역 예담 | 2014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떠미는 곳에서, 떠나는 사람들 가끔 꿈을 꾸듯 떠남을 동경한다. 현실이 비루할 때, 발붙인 땅에서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이 황폐하다고 느낄 때, 쳇바퀴처럼 늘 제자리인 이곳이 감옥처럼 답답할 때, 바다 건너 멀고 먼 반대쪽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위안이 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두려움과 불안을 이길 때, 이 정든 세계를 정녕 떨치고 떠나야할 만큼 현재와 미래가 절망적일 때, 가슴 터지도록 두려움과 설레임을 가득 안고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떠난다. 열정을 걸고 청춘을 바쳐 이룩한 모든 것을 버리고 존재가 속한 세상 밖으로 사라져야만 한 줌 남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땅을 치고 통곡해도 변하지 않는 운명이 밖으로 떠밀어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우리는 떠난다. 내가 읽은 ..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 루이스 캐럴 지음, 정윤희 옮김, 김민지 그림/인디고(글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이를 위한 책일까 어른을 위한 책일까. 나는 어릴 때 몇 번이고,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번 앨리스 책을 읽으려고 하다가 몇 페이지 못넘기고 만 적이 있다. 어릴 때는 너무 어려워서, 이거 아마도 좀 커야 이해할 수 있을꺼야 라고 생각했을테고, 커서는 이건 순수한 동심을 갖지 않은 한 이해하기 어려운 동화야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시리즈는 기이한 사건들의 연속적 발생과 엉뚱발랄한 대화들을 인내심있게 읽어 내려갈 동심도 필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언어 유희들 속에 담긴 상징과 패러디를 이해하기 위한 성인의 통찰과 지식도 필요하다는..
[르네 바르자벨] 대재난 대재난 - 르네 바르자벨 지음, 박나리 옮김/은행나무SF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읽은 거라고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제외하면 몇 개 한 손으로 꼽을만큼도 안되지만, 그 매력은 거시적인 시각으로 현재의 인류를 통찰하는 데 있다는 점을 느낀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들의 의존성을 새삼 깨닫게 하고, 사회적 관습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지난 세기에 쓰여진 현재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소설이라면 독자는 소설속에서 상상한 미래의 기술과 이미 구현되었거나 쓸모없는 기술, 그리고 앞으로 갖게 될 기술들 사이에서 그 소설의 예언적 혹은 예측적 능력을 후세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평가하는 즐거움도 얻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