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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2015 결산] 책과 씨름하던 정겨운 풍경을 책 속에서

[도서]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저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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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빠르게 지나간다. 책 속의 글씨들은 내 생각의 물꼬를 터 주며 보이지 않는 저자의 영혼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때로 대치하기도 타협하게도 만든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들은 참으로 찰라적인 순간에 이루어지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휘발되면 없어질 생각들. 산적한 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호시탐탐 책읽을 기회만 엿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나의 생각이 오래 전에 읽은 다른 책들과 또 오래전에 보았던 풍경들,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던 이야기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보고 들은 것과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진 기억의 신경망이 책 속의 글씨들과 새롭게 조우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는 그 연결과 만남의 순간이다. 아쉬운 건 스치듯 지나가는 그 짧은 생각과 생각의 만남은 언제나 흔적도 없이 휘발되어 날아간다는 것이다. 잊어버릴 걸 뭐하러 읽나. 생생한 감정과 결합함으로써 쌓이는 경험은 우리에게 오랜 기억을 주지만 책에서 만난 추상적 생각들은 그 아무리 대단한 깨달음과 진리라 하더라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책을 읽으며 만들어낸 지적 감정적 생산물은 유효기간이 짧다. 유효 기간이 지난 글자들은 안개같은 망각 속을 떠돌며 무언가를 기억하려 하는 순간마다 좌절감을 준다. 유비쿼터스라는 말조차 이미 식상해질만큼 터치 한 번으로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 세대에 적응된 자연스러운 기억의 퇴화라고 해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읽음에서 생기는 지식과 생각의 결실을 망각으로부터 구제하고픈 바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만의 바람이 아니었고, 기억을 잃어버린 스마트폰 세대의 고민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오감하는 짧막한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디지털 도구들을 이용하고 있듯 옛 사람들도 그 시대에 그들이 가진 수단인 붓과 먹으로, 물꼬를 튼 생각의 결을 놓치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적었다. 펜과 종이가 넘쳐나고, 키보드와 터치화면이 아주 작은 일상까지도 꾸역꾸역 삼키고 쏟아내는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그 옛날에도 메모라는 게 가능할까 의아해지지만 그들은 적었다. 책 속에 숨겨진 고결한 뜻을 이해하는 그 찰라의 순간을 붙잡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물을 떠와 먹을 갈았을 것이다. 먹을 가는 일은 메모앱을 띄우기 위해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손안의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켜는 일만큼 간단하지 않다. 벼루에 적당히 물을 넣어주고 정성을 다해 갈아야 한다. 먹의 까만 잉크가 물과 합쳐져 글씨를 쓰기에 적당한 농도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분과 초 단위로 세계 곳곳과 통신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선뜻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책과 별지에,그리고 때로는 나뭇잎에 적고, 먹과 오징어 먹물까지 이용했다. 시대를 상상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남긴 선물이다.


여행을 할 때, 그들은 그 무거운 돌덩어리 벼루와 붓과 물을 싸서 이고 지고 다녔다. 연암이 쓴 열하일기의 그 생생한 이국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의 감정, 그것은 기억의 한계가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가는 말을 멈추고 '휴대용 벼루를 꺼내 급히 갈아 외무릎을 세우고 앉아' 메모하는 연암을 상상했다. 우리가 멋진 풍광에 감탄하고 찍고 공유하고 올리고 하는 행위들을 하는 것처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휘발되기 전 포착하고 싶었던 선조들이 말에서 내려 먹을 가는 모습은 시대를 떠나 호모 사피엔스로서 공유하는 유전자를 떠올린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책에 매료된다. 책에 관한 이야기여도 좋고, 책을 좋아하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여도 좋다. 출판 시장과 중고서점 탐험기도 좋고, 발터 뫼르스의 소설처럼 책으로 가득한 도시를 상상한 판타지까지, 책을 소재로 하는 어떤 책이라 해도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은 정민 선생이 고서적에서 발견한 옛 선인들의 책사랑 이야기들이다. 


한중일의 장서인 비교가 흥미로웠는데, 오늘날에도 중고책을 구입했을 때 전주인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하는 것처럼 고서에서도 한국인은 책의 장서인 부분을 오리고 붙이는 등의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주인의 흔적을 없앤 데 비해, 중국에서는 책을 거친 개인의 흔적을 장서인을 통해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누구의 장서인이 찍혀져있느냐에 따라 고서적의 가치가 변하는 것이다. 가난했던 선비들이 서로 책을 빌려 보고, 열손가락 모두 동상에 걸려 피가 터질 지경에도, 책을 필사하여 생계를 꾸리던 선조들의 눈물겨운 사연, 연중행사로 습기차 굽굽한 책들을 모두 꺼내 뽀송뽀송하게 말리던 어느 바람불고 화창한 날 풍경, 시대를 초월한 모기들의 괴롭힘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이조함의 <속함해> 책 곳곳에서 박제된 모기들 모습, 책벌레가 책에서 신선이라는 글자를 세 번 파먹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맥망이 된다던 전설, 책을 읽으며 여백에 깨알같이 적은 생각이 책장 밖으로 넘쳐 흘러 주렁주렁 메모지를 봉지 메달 듯 달고 있는 고서적들을 보면서 한없이 친근감을 느낀다.


<독기>와 <옹기>를 쓴 명나라 사람 오승백의 메모법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허우적 거리는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참고할만한 방식이다. 항아리나 궤짝을 항상 두고 있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 안에 던져두는 것이다. 메모가 쌓이면 분류와 손질을 거쳐 한 권의 책이 된다. 책을 읽으며 스치는 생각들은 책에서 읽은 지적 활동을 기둥삼고 있으므로 탄탄하고, 생각을 확장시키고 붙잡아 맬 수 있는 단단한 근거를 지닌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면 재분류와 여분의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엮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벗삼고 책으로 인생을 풍미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책에서 찾는다. 책에 남긴, 옛 사람들의 사상과 때로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그들의 깨알같은 일상과, 책 속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파리 머리만한 크기로 적어놓은 메모들은 끝내 우리의 궁금증과 상상력에 한 줄기 빛을 던진다. 죽이고 죽여 권력을 쟁취해서 생긴 부스럼들과 그 권력의 필요에 따라 옷을 갈아입은 사회 제도만이 역사였던가. 나는 희화화된 왕위쟁탈전과 오락화된 암투가 주축이 된 역사에는 흥미가 없다. 혜원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이 생생한 그들 삶의 핍진함을 재생한다면 거기에 다소 상상력이 섞여 있어도 좋다.


오래된 것들은 사라져간다. 이미 사라졌고 지금도 꾸준히 사라져간다. 세대가 바뀌고 희미한 자취만 남았을 때에 비로서 우리는 버려졌던 것들을 불러 내어 상품화된 향수로 집단의 기억을 재생산하고 또 소비한다. 많은 사라져갔던 것들 중엔 우리 세대가 다시는 향유하지 못할, 정겨운 일상 속 풍경들이 있다. 이 책은 상세하고 정겨운 곳으로 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책벌레 선조들의 읽기와 쓰기 습관을, 상상과 억측이 아니라 직접적인 근거로 제시된 고서들의 해석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은 벅찬 행복감과 즐거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