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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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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아폴레이우스] 황금당나귀 1800년 전쯤 루키우스 아폴레이우스가 쓴 산문 방식의 소설로 세계 최초의 운문 방식의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였다고 하고 공간적 배경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지중해 연안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로마로 간다. 장편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 속에 여러 다른 소설들이 비중이 별로 없는 작중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형태로 되어 있어 천일야화와 비슷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주 스토리의 드라마틱함과 주인공의 고생담의 비중이 전체 이야기들 중 가장 크므로 장편 소설의 범주라규 해도 큰 무리는 없다. 돈키호테를 비롯한 여러 근대 소설들이 이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고나 차용했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는 호기심 강한 루키우스가 마법 덕후여서 덕질하다가 당나귀로 변..
[시가 아키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책이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지인의 가족이 잃어버린 당사자 명의로 수백만원의 대출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게 진짜로 일어나는 일이구나 싶었는데, 이 소설은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단순히 스마트폰 액세스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칠칠맞지만 순진한 도미타 마코토는 택시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다. 스마트폰의 대기화면은 여친 이나바 아사미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다. 그 남자의 스마트폰 속에는 아사미를 졸라 찍은 누드 사진이 들어있다. 스마트폰을 습득한 남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사람 뿐 아니라, 그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인까지 그들의 운명은 잠재된 범죄에 노출된다. 그렇다면, 도미타 마코토의 스마트폰을 주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부 세트 - 전8권 -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씨앗을뿌리는사람보르코시건 시리즈는 현대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산맥 중 하나라고 한다. 30세기의 우주. 지구인들은 자연계의 웜홀로 다른 항성계로 이동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제국을 건설한다. 각 항성들은 고유의 문화와 정치 체계와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바라야 행성은 한동안 웜홀이 막혀 수백년간의 고립시대를 경험했고, 그에 따라 뿌리깊은 남여차별 사상과 (다른 행성에서 볼 때) 야만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연대기 순으로 출간된 세트 상품을 구매했는데, 나중에 2권이 더 나와서 국내 출간은 총 10권이다. 은 나중에 나왔지만 연대기순으로 먼저다. 주인공 마일즈가 태어나기 전 부모 세대가 적국의 포로로 ..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정부의 출산우대정책으로 세자녀 출산을 조건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12세대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은오와 요진은 먼저 입주한 세 가정에서 마련한 조촐한 환영식에 초대된다. 사람들이 처음 만날때 으례 묻고 답하는 질문, 은오와 요진은 이 질문이 편치 않다. 먼저 선수를 쳐 자신이 집안 일을 하고 아내가 돈벌러 나간다는 말에 앞으로 서로 도우며 한가족처럼 살아가게 될 이웃들은 아 그렇구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간만의 차이로 미리 입주하여 이미 누군가의 주도로 형성된 친목과 분위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남의 아픔을 집요하게 캔다. 첫만남에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는 거고 ‘제가 능력이 안되다 보니 아내가 출근을 합니다’ 라고까지 했으면 더는 캐지 않는 게 예의지 이런 거 물어도 되나 모르겠네 라고..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배경은 공항 대기실 인물은 딱 두 명이다. 장면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가고 있는 소설은 2인극을 위한 희곡을 연상시키는데,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이 낯설다.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잡티와 주름을 얼굴을 잘 포장해서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다. 남에게 잘보이기 위해서도 하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서도 한다. 누구더라, 레이먼드 카바였나, 작가 중 누군가는 작업실로 쓰는 방에 가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고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다고 하던데, 화장이던 옷이던 단정하게 입는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것들을 덮고 추구하는 현재에 몰두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양복을 차려 입고 컴퓨터에 앉으면 게임을 하거나 악플 같은 걸 달러 찌질한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대신..
[도리스레싱] 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시하는 남성의 심리를 통쾌하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나 안전 장치가 부족했던 시대에, 남녀의 섹스라는 행위가 남성에게는 정복, 여성에게는 굴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일 이 소설을 100년 쯤 후에 읽는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맥락에서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열린책들육체와 정신은 양분될 수 없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이 정신을 관장하는 것과 같은 기관에서 이루어지므로, 정신의 모든 작용이 끝나면 육체 역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시몽의 심장이 뛴 이유는 시몽의 심장을 관장하는 뇌가 시몽의 다른 모든 정신적 조건들과 소통하며 심장의 박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뇌가 정신을 처리하지 못할 때, 뇌는 육체의 기관인 심장을 처리하지 못하고, 심장이 스스로의 몸에서 내는 에너지와 호르몬과 화학작용으로 뛰지 못할 때, 그 심장은 이미 죽은 자(뇌사자)의 통제하에서 벗어났으므로, 시몽의 것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누가?) 불과 몇시간 전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도 소식을 듣고 백킬로미터를 달려 집..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현남, 오빠에게 무엇이 페미니즘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상속에서 자각하지 못했던 불합리한 울타리. 여성이라는 틀. 그것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해주는 것.먼저 태어나 부당한 세상에 저항했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선거권을 인권을 동등한 권리를 쟁취했던 선배들이 덜부순 것들 혹은 도저히 부술 수 없어 보이는 뿌리박힌 인습들 그런걸 알아가기 하는 게 페미니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기는 쉽지만, 삶 속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소설을 통해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소설을 통해 주제의식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지겨운 계몽이나 선동 문학이 되기 쉽다. 분명 우리에겐 틀에 박힌 여성의 이미지가 있는데 때로 그것아 문화적 틀 내에서 시대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걸로 몇겹씩 곱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