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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2015 결산] 당신이 읽는 것이 곧 당신이다.

[도서]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편저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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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의 말이 강한 메시지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거나 줄을 긋는다. 깨달음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글자로, 밑줄로, 기억으로 남긴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도 될 것인가. 혹 습관처럼 매일 하는  행동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닌가 의심과 선택의 기준은 어디에서 나올까.  삶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시기에 그 기준은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같은 어른들에게서 받은 세계관이 될 때도 있지만,  책은 가장 가까이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먼 옛날부터 2천년을 넘게  오래도록 살아  남은 선조들의 가치 철학들에서 옮겨 적은 삶의 기준은  결단의 순간마다 내가 내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등불이 될 수 있다. 훌륭한 명언이 주는 메시지가 파동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원천이 되기도 하고, 때로 삶을 헤치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 


책은 책이다. 일기장은 일기장이다. 노트는 노트다. 각자의 목적은 다르다. 이들의 목적에 대해 다시 토론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노트다. 책인데 노트다. 무슨 말이냐 하면, 책을 읽고 뭐 아주 엄청나게 감명받은 내용을 노트에 적었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아무 사견 없이 노트 내용을 책으로 '잘' 엮은 것이다. 여기서 '잘'은 여백의 미를 잘 활용했다는 뜻이다. 여백이 많다보니 내용(글자수)에 비해 책의 두께가 엄청 두껍다. 일반책처럼 편집했으면 1/3 정도로 압축 가능했을 것 같은데, 두꺼워서  뽀대난다. 그리고 두꺼워서 비싸진다. 


어릴 때도 이런 책이 집에 있었다. 각종 명언들만 모아 놓은 책들. 대개는 출판사에서 기획하지만, 이 책은 독서광으로 알려진 이석연 변호사가 직접 자신의 노트에서 골라 뽑은 것들이다.  영국에서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건강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다고 하는데, '먹는 것' 대신 온갖 다른 것들을 넣어도 말이 된다. 구글에서 you are what you 까지 입력하면 더 그럴 듯한 것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나는 You are what you belive 라는 말이 쫌 맘에 든다.  내가 최초는 아니겠지만 나는,  'You are what you read'라고 생각한다. 


무슨 책을 읽고 사는지, 그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 알 수 있다. 그가 읽은 책의 어디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조금 더 알 수 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그 책과 소통하고 교류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엮어낸다면 그 사람을 만나 10분동안, 혹은 1시간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릴 호구조사 따위의 빤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의 일부 측면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그의 생각 혹은 그의 가치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저자를 조금에서 더 알려준다. 이 책에 저자 자신의 언어는 서두 밖에 없다. 말하자면 출판사의 편집인 같다고나 할까. 얼굴 없는데, 이름은 있는. 아니다 이름은 있는데, 저자의 생각(가치관)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 책의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지를 읽으니 대략, 어떤 인생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그려진다.  그래서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대략 추측할 수 있다. 1부는 법률, 역사, 리더쉽에 관련된 명언집이다. 사마천, 세익스피어, 칼릴 지브란, 센델의 말들 법률 부분에,  헤로도토스, 에드워드 기번, 시오노 나나미, 이덕일, 유성룡, 마오쩌뚱 등이 역사 부분에, 월간조선을 비롯하여 논어와  링컨의 연설문들을 비롯한 다양한 출처에서 리더쉽에 대한 문장들을 가져왔다. 2부 역시 세가지 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 비해 내용이 명확히 분류되지 않지만 처음(4장은)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주제로, 5장은 야심, 욕망, 소유, 인생 등 전반적인 가치 철학에 대한 내용이고 6장은 글쓰기에 관련된 말이다. 6장이 가장 흥미로왔다.


제목인 호모 비아토르가 무슨 말인가 했는데 5장에서야 나온다. 비아토르란 떠도는 인간을 말하는 모양인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5>에 나오는 말이다. 호모 비아토르는 나그네 길에 머물 때 아름답다. 아르고 원정 대모험을 끝내고 이올코스에 정착한 그리스의 영웅 이아손의 뒤끝은 이렇듯이 누추하다. 영웅은 머물지 않는다.


앞뒤  문맥 없이 이 말만으로는 작가가 애지중지 노트에 옮겨적고 했던 만큼의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다. 내게는. 


3부에서는 조금 노골노골한 주제들을 다룬다. 3부 부제도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이 있었던가>(이기철의 시 제목)이고, 3부 첫장인 7장은 인생의 고통에 대한 말들이다. 이웃 블로거 중 홈에 쓰는 문패에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는 말을 달고 계신 분이 적**장님이라고 계신데, 나는 이 말이 코메디언 박명수가 라디오 방송에서 처음 한 걸로 알고 있었더만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떽쥐베리의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야. 근본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도 이곳에 나온다. 법정 스님의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알지 않아도 될 일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가'라는 짧은 말도 마음을 만져준다. 공지영의 책 제목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불교 초기 경전인 수타니타파에 나오는 말인 것도 여기에서 알게 된다. 나는 절에 가면,무슨 소린지 알아먹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그나마 요즘은 잘 못듣지만) 스님들 독경 소리  잔잔한 음악처럼 너무 좋은데, 그 내용이 대략 이런 내용이었음에 놀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교 경전은 그토록 아름 다운 시였구나...

그리고 7장에는 법정스님의 독보적으로 많았다. 이어지는 8장은 예술적 상상력과 종교에 대한 말들이 주를 이루고, 9장은 배움에 대한 내용들이다. 1부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목적있는 글들이라면 2부, 3부가 훨씬 부드러운 살아가는 데 자잘한 지혜가 될만한 내용이다. 이런 류의 단편적인 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이 자기계발적인 것보다는 후자에 더 관심이 많을 것 같아서, 순서를 바꾸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 


글자수로 따지면 얼마 안되기 때문에 맘잡고 읽으면 후루룩 1시간이면 족히 읽을 수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 짧은 독립적 단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틈틈히 조금씩 필요에 따라 주제를 정해 읽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아무거나 퍼다 나르는 카톡 친구에게 복수(혹은 보답)하기 위해 하나씩 베껴 써도 좋을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이즈와 책의 두께가 부담스러워 아쉽다. 포켓 사이즈로 종이도 얇은 것으로 사용했다면 휴대가 용이했을텐데. 1부는 쫌 별로였고 2부와 3부는 좋은 말들도 많았지만, 출처없이 떠돌던 흔한 말들의 출처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