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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파미르 노마드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떠나면 잃어버린 자아라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여행을 꿈꾸고 여행을 동경한다.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여행은 일상에서 탈출이다.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 떠나든,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싶어 떠나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나든, 만끽할 무엇을 향해 떠나든 여행은 현재의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손에는 왕복 티켓이 쥐어져 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며, 그렇다면 왜 떠났었나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어야 그 여행은 가치있는 것이 된다. 떠날 때 두고 가는 모든 것들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모든 것들은 두고 간 상태 그대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애당초 떠나는 것의 목적에 내가 두고 갔던 것들과 다른 모습으로 해후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던 일상의 질서를 깨고, 골치아픈 문제들을 잊는다. 낯선 장소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과 마주친다. 낯선 언어들은 원시적  커뮤니케이션만을 허락한다. 정교한 언어적 소통 없이 읽어내는 몸짓과 표정, 그리고 아주 짧은, 말 배우는 아기 수준의 몇마디의 현지어를 통한 의사 소통은 오히려 삶의 본질과 핵심을 마주하게 할 지 모른다. 왜 하필이면 중앙아시어일까.  중앙 아시아는 소련의 해체시 생겨난 대륙의 가장 안쪽 깊숙히 들어앉은 이름도 비슷비슷한 ~스탄 돌림으로 된 나라들이다. 구소련이 기세등등할 때 기초교육을 받은 세대에게 구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어리둥절하게 독립한 신생(?) 독립국들은 더욱 낯설 수밖에 없다. 가끔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면 요즘 대세가 남미로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아프리카로 원시힘을 찾아서, 그리고 북극이나 남극 근처로 오로라를 찾아 멀고 먼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인 것 같은데, 중앙 아시아는 별로 보지 못했다. 저자는 파미르 고원,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그 이름도 비슷한 나라들을 가이드 없이 홀로 , 그리고 두 발로 여행했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기록이다.

여행의 8할은 묵을 장소를 찾아 물어 물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제3국가를 걸어서  여행한다는 일이 여행 그 자체보다도 얼마나 숙소를 찾고 이동과 비자 등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인지 알 수 있다. 넓은 땅 위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사는 저개발국가에서 시설좋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기대할 수 없다. 공무원들은 말단 하급직원에서 최고참까지 끝을 알 수 없는 부패로 얼룩진 장기 독재의 나라의 영사관에서 다음 여정을 위한 비자를 수월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또 멀고 먼 오지까지 대중교통 수단이 존재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무수한 난관을 부딪치며 때로 이슥한 시간까지 여정을 위한 교통 수단을 알아보다 이슥한 길에서 강도를 당하고, 썩어빠진 공무원들에게 강탈을 당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덜 침입한 파미르 고원 오지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환대하고 가장 좋은 자리를 양보하며 재워주고 후하게 먹을 것을 챙겨준다. 이런 일이 굉장히 자주 있어서 댓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여행자를 위한 상업용 시설이 아닌 다음에는 말 한마디만 섞어도 집에 초대하고 차와 음섹을 내놓고 그를 대접하고 작은 보답도 받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곳곳에 있음에 놀랐다. 그런 오지에서 대가족을 이루며 가축을 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그리 많이 있을까만은, 그러한 현지인들의 친절이  불손한 의도를 가진 나쁜 여행자들에게 혹시나 잘못 이용당하지나 않울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