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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교양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무엇이 미스터리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먼저 무엇이 미스터리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지식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면 고인 물처럼  썩는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을 수십년간 써먹는 건 썩어가는 더러운 물을 마시고 사는 것과 같다. 어떤 지식이 낡은 것이 되는 과정은 과학의 패러다임의 변화다. 우리의 앎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던 것과, 배우지 않았는데 살면서 알게 되는 것들과, 책이나  TV를 통해 새로운 이론이나 과학으로 완전히 자리잡아 지식이 된 것들이 마구 섞인 채로 저장되어 있다.


읽으면서 저자의 주장과 문장에 여러가지 의혹이 들었는데, 결국 이런 책을 쓰는 이유가 뭘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욕심없이, 그저 낡은 지식을 업데이트해서, 썩은 물 대신, 최소한 정수라도 한 물을 마시고자 책을 읽는 내 바람은 한낮 욕심이란 말인가. 비문학 도서를 읽는 목적이 그렇게 작은 바람일 뿐인 내 사고방식과는 다른 차원의 책이었는데 그럼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전달해 보자면 그것은 아마도 앎을 의심해 보라는 것일 거다. 소제목도 ‘역사와 과학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들’이다. 여기서, 가설이란 말을 주목해야 한다. 책의 내용은 모두 가설들이다. 즉 학계에서 주류로 받아들일만한 근거나 증거가 없는 내용으로 대개 기존 과학의 틀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헛점들을 파헤치고, 이 구몽을 메울만한 다양한 새로운 가설들을  제시한다.


무엇이 이단인지를 알려면 정상을 먼저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첫 챕터는 신대륙이 발견되기 이전 고대때부터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교류가 절대로 불가능했다고 믿고 있어야 미스터리의 미스터리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텐데, 내 경우, 담배와 코카, 옥, 고구마, 닭등의 유래가 어느 대륙에서 몇세기에 전해졌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코카와 담배가 발견되거나, 옥으로 만든 유물이 폴리네시아에서 발견되거나 구대륙의 닭과 고구마가 중남미에서 되거나 하는 일을 따져 구대륙과 신대륙간의 교류 증거로 추론하는 과정이 미스터리하기 보다는 이러한 이론이 현재 학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제시되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역사로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우리 주변에 한 번만 겪고 다시는 재현하지 못하는 현상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이 이론이 되려면, 그러니까 그런 현상들을 설명하려면 실험을 통한 재현이 필요하다. 재현하지 못하는 기적은 거짓말, 착각, 환상과 종종 섞이고, 부족한 설명은 미스터리는 편리하게도 전지전능하신 신의 힘이 차지한다. 신의 종류는 많다. 기독교나 불교 같은 전통적인 신 말고도 자신의 경험과 판단으로 실험으로 밝혀내지 못하는 어떤 것들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 믿는 것도 넓은 의미의 종교다. 뭔가를 근거없이 믿으면 그게 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학계에서 정상과학이라고 인정하지거나 비주류 이론이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주류로 편입하기에는 근거가 증거가 부족하다. 오랫 동안 주류를 형성해온 이론을 뒤집기 위한 증거가 충분하다면 이제까지 비주류의 몫이었거나 가설에 불과했던 이론은 점차 힘을 얻게 된다. 연구 과제를 찾아 헤매는 전문가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켜 더 많은 증거들을 찾게 되고  이제까지 비주류 혹은 이단이였던 이론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이제까지 진리라 믿었던 것은 낡은 것으로 전락하거나 더이상 발전할 추진력을 잃는다.그러므로 현재의 정상과학도 현재의 주류 이론도 오래전 언젠가는 비주류였고, 놀림감이었고 이단이었을 때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거도 희박하고 증거도 불충분한 주장들이 추후 모두 주류로 편입되고 메인 패러다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주장들 지극히 일부만이 주류를 바꿀 중요 이론으로 바뀐다. 과학에서도 그렇고, 역사와 인문 철학 등도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변화한다.


사람들이 가끔 헷갈리는 게 있는데, 어떤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 딱 한번 일어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사건이며 일화다. 일화가 신화가 되는 과정에는 역사적 필연성이 관여하지만, 한 사람의 편향된 지식으로 인한0 예외적 사건의 일반화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기에 대중은 단단한 기반을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UFO와 텔레파시, 초능력, 초심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것들은 과학적인 추론이 불가능하다. 극이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우연히 재현된 현상을 현재 알려진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무수히 나타나는 UFO의 진실이, 실은 사진 조작과 착시와 유성과 드론 등등 여러가지 착각일 수도, 혹은 더 발달된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 나타난 것이었는지, 그런 것들이 실제로 외계문명의 징후라 할지라도, 현재의 과학으로 짐작도 하지 못할 세계이다. 초능력, 초심리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듯한 컨텐츠에 최재천 교수와 리처드 도킨스를 폄하하는 내용을 실었는데 문장에 감정이 실려있다. 최재천 박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자연선택설을 자연선택원리라고 부르자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다.


“생물학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물리학자들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가 있어왔다. (p173)

“잔뜩 주늑이 든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한때 물리학 선망이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쓰이기도 했다.


“최재천이 언급하고 있는 사람은 리처드 도킨스다. 그의 본업은 진화생물학자 및 동물행동학자이지만 진화론자와 무신론자, 회의론자들의 전위이자, 극렬한 다윈주의자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p173)

그렇다고 해서 물리학자인 저자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주장하는 새로운 생물학적 이론은 무엇일까. 이런 저런 예를 들며 생명 현상은 대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으며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가 있다는 것이다. 카멜레온이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다른 동료들을 위해 신호를 보낼 때 가장 극적인 색깔 변화가 나타난 사례와 나뭇잎 벌레가 나무잎과 너무 똑같아 다른 벌레가 나뭇잎으로 알고 뜯어먹는 것, 산나무두더지 똥을 먹도록 진화된 변종 식충 식물들 등의 예를 들어, 새로운 진화 패러다임에 주목할 것을 얘기하는데,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과 ‘불가능의 산을 오르다’ 등 여러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를 하고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물리학자가 생물학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우리의 과학과 여러 주류 학문,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패러다임들은 불완전하고 때때로 독단적이다.  근거없는 사이비 과학과 일화와 소설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파고 들 만한 헛점이 주류 과학과 학문에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 학문도 쫓아가기 어려운 일반 독자 입장에서, 비주류 학문들과 어차피 답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초능력 현상들을 쫓을만한 여력이 남아있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