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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반디]고발

고발 (더블커버 특별판) - 8점
반디 지음/다산책방

다같이 행복한 사회는 불가능한가. 낙원을 건설하려고 뿌린 피는 더이상 동작하지 않는, 아니 처음부터 동작 가능하지도 않았던 공허한 미몽의 실현 과정에서 생겨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찌꺼기로 체제를 유지한다. 전세계 인류 역사를 통해 이런 게 가능했던 사회가 있었을까. 한 때 막스의 ‘공산주의 유령’이 뜨거운 피를 수혈받아 동구와 구소련을 지배하던 당시에도 북한처럼 폐쇄되고 억압된 사회였을까. 동작 불능의 체계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대신, 그 오작동 사회를 설계한 설계자를 신격화하고, 애초 피뿌리며 꿈꿨던 세상, 그곳이 바로 지금 여기라고 바로 눈 앞에 있다고 속고, 속이고, 속는 척해야 그 궁핍 속에서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형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곳, 그곳에서 오늘도 사람들이 무대위의 연극 배우처럼 유령처럼 모든 것을 지배하는 당의 요구대로 변한다.


언론을 통해 통제된 사회 제도에 대해 듣고 막연히 그곳의 사회를 상상할 수 있지만,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그런 통제가 사람의 감정과 인간관계, 그 속에서의 삶을, 그 깨알같은 디테일들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더 상세히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이 제목부터 ‘고발’이고, 서구 사회에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자 하는 취지가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보면 북한 체계에 대한 모순을 알리려는 작가의 분투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기에 다른 공산권 치하의 소설과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와 아고타 크리스토프, 미하일 불가코프 등이 최근 읽은 공산권 배경의 소설인데, 사회고발이 목적이 아니지만 억압되고 통제된 현실 속의 개인을 조명하기에 그런 체계의 실상을 경험해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소설 고발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과정 중 불가피하게 낳은 억압과 통제 도구가 결국은 그 동작불가의 사회를 굴리는 유일한 수단이 된 모습을 포착한다.


책의 내용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건, 북한에서 현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반디(저자의 필명)의 원고가 밀반출되어 츨간되기 까지의 과정이다. 책 끝 부분에 그 과정이 간단하게 적혀 있지만,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조선미디어의 뉴스와 이슈의 북한 편에서 상세히 볼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썼고,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는데, 탈북자는 너무 위험하므로 일단 탈북에  성공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그 원고를 빼나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 탈북자는 함께 간 일행이 모두 공안에 잡혀 북송되는 와중에 탈북단체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했고, 이후 정착 자금을 받아, 자신을 도운 사람에게 그 원고 이야기를 한다. 원고는 북한에 볼 일이  브로커를 통해 밀반출되는데, 탈북자가 반디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안심하고 브로커에게  원고를 맡길 것을 얘기했고, 특히 김일성 서적으로 위장을 하도록 이야기를 해서, 전달하도록 지시한다. 이 때 만일 원고가 검문에 걸린다든가 발각되었다면, 반디는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 같다.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북한의 작가 협회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북한의 실상을 그냥 티브이에서 전하는 형태로 피상적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그 동작 체계 내에서 신음하는 개인의 내면, 그 억눌린 흐느낌과 몰래 우는 울음과 꾸며 내는 웃음과 그러한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녹아 내었는데, 이는 단편집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보면 알겠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나 농담도 조소로 해석되므로 이런 류의 원고를 몰래 쓴다느 것 자체가 목숨을 건 글쓰기이다.  


단편집이고 각 작품마다 배경과 인물의 시점 성격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데, 주제는 거의 한 가지로 모아진다. 예전에 없어진, 한국의 연좌제를 상기시키는 출신 성분이라는 굴레에 갇혀 신음하는 개인, 앞서도 언급했지만 스스로를 속이고 모두를 속이고 당이 원하는 감정을 만들어내야 하는 가상 감정의 세계, 세계적으로도 이목이 집중되었던 대기아에 맨몸으로 산허리 초목들을 쥐어뜯어 성과를 내야 하는 주민들, 이주권은 물론 이동권마저 통제된 곳에서 임종 직전의 부모 방문 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통탄하다가 몰래 기차에 오른 자의 운명, 이러한 비참한 상황 묘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기쁨과 슬픔과 희망과 웃음마저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북한 사회의 내미한 모습을 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