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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베크만]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자아는 기억의 누적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잃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누적된 시간 속에 켜켜히 박혀 있는 추억과 경험과 생각의 사슬들이 엮어낸 현재의 나가 그 현재를 가능하게 한 모든 과거를 잊는다면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노아와 할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은 기억을 잃어 가는 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일 것이다. 기억을 잀으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축적되는 시간과 시간이 갭 없이 연속되고 있으므로, 그 연속성이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이유를 밝혀주며 삶의 방향을 알려주지만 만일 기억의 결함으로 그 연속이 점점이 여기 저기 끊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길을 잃는 경험일 것이다. 

그렇다. 기억은 과거와 연결되지만 과거는 미래를 향해가는 방향을 결정한다. 기억은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시간을 예측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경험을 덧씌워서 합치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돤전 별개의 경험이 아닝 것이기 때문이다. 걷다가 문득 어디로 향하고 있던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즉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던 방향을 상실한 것을 말하며 이것은 과거에 어디로 갈까 정했던 기억을 잃음으로 인해 미래가 사라진 미래의 상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기억의 상실 즉 과거의 상실은 길을잃음을 뜻하고 미래의 상실을 뜻한다. 


매우 짧고 동화책 같은 포맷에 그림도 예쁘고 술술 잘 읽히기는 하는데, 문맥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노인이 손자와 대화를 나눈다. 손자를 끔찍히 사랑해서 이름을 두 번 노아노아라 부르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실제로 이루어지는 대화라기보다는 치매(이 말은 옳지 않다고 하는데 대치할만한 단어가 마땅치가 않다)에 걸린 할아버지의 머리 속을 오가는 환상이나 혹은 꿈 혹은 회상으로 여겨진다.

반전처럼 아이의 나이가 밝혀지고 노인의 병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이 모든 몽환적이고도 길을 잃은 듯한 내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둘은 어디에 있는 건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지 눈치채기 어렵고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노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디가 현실인지 어디가 환각인지 알 수 없다. 노아는 본문의 대부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기로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환각 속인 대화 속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이지만 실제로 병실에 누워있는 노인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현실이 맨 마지막 페이지에 공개될 때에는 실제로 아이가 있는 청년이고 그를 그토록 된 모습으로 아끼던 노인은 손자 노아에게 치매 레퍼토리인 '댁은 뉘슈?' 하는 노인이었던 것이다. 

슬프다. 현대인이 장수하는 대가로 발병률이 높아진 무서운 질병이지만 이미 기억을 잃어 가기 시작하면 광장의 한복판에서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어딜 향해 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청년은 누구슈라고 묻고,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을 삶을 기억하지 못한채 얼음이 되어버린다. 그레고 이제 죽을 수조차 없다. 천천히 기억이 숨쉬는 것조차 이러을 때까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견딜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