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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신미남] 여자의 미래

성공이라는 단어는 집안에서 애를 키우고 집안을 광채가 나도록 쓸고 닦아 눈부시게 만들어 놓고 가족을 위해 건강하고 값진 식단을 제공하고, 아이를 잘 키워 스카이와 저 멀리 아이비리그에 보내는 사람에게는 인색하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돈, 명예, 사회적 위치, 사회적 존경에 너그럽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아 사랑받고 상처없이 성장시켜야 하고, 누군가는 건강한 밥상을 차려야 하고, 먹고 난 음식을 모아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요리를 한 냄비며 음식을 담았던 통이며 접시 그릇들을 닦고, 주방을 청소하고 정리해야 하며, 또 누군가는 더러운 옷들을 거두어 세탁기에 돌려 꺼집어 내어 일일히 털어 말렸다가 걷어 접어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하고, 집안 바닥이나 소파에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뒹굴뒹굴 거릴 때 불쾌하지 않게 먼지를 빨아내고, 바닥을 닦아야 한다. 


성공한 여자들은 대개 둘 중 하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둘다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던지. 둘다 하면 슈퍼우먼이지만 둘 중 하나만 하면 엄청나게 대단하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남에게건 자신에게서건 욕을 먹는다. 이 사회가 원하는 여성, 이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은 슈퍼우먼이 선호된다. 집안일도 잘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슈퍼우먼들. 교사들이 결혼 대상 선호도 1위가 되는 이유는 정확한 출퇴근 시간으로 이 양쪽의 일을 모두 잘 해내는 슈퍼우먼을 기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돈도 벌어오면서 집안일을 할 시간도 충분하다. 이런 선호도 는 의식주를 이루는 작은 일상의 연속들이 슈퍼우먼 여성의 노동력 착취에 기반함을 암묵적으로 동의함을 말해준다. 


이런 생각은 남성들을 매우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나처럼 오랫동안 페미니즘이며, 여성의 권리며 젠더 폭력이며 이런 말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무심하게 지나가면서, 나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은적 없다는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매 끼니 식사 준비는 가족을 위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걸로 붙박여 놓으면 세상 공평하다.  하지만 저 밑에 숨겨진 진실을 하나씩 꺼집어내서 말하지 않는 이유는 한 마디 불평이 합리적으로 고려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향되어 백개의 잘잘한 균열을 만들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친구들 카톡방에서 내가 그랬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어보라고. 어떤 친구가 나는 교사라 차별받은 적 없어. 하더라.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남편한테 차별받아. 그랬더니 그 친구 왈. 나도나도 집에서는 밥순이야. 더이상 그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다 키웠고, 다시금 생각해도 눈물 나오는 그 힘겨운 시간들을 견뎠으며. 이제 순응하는 것의 아늑함을 알게 되었다. 


두번째 카테고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둘 중 하나만 하나만 하는 거다. 하나는 집안일은 '내팽개쳐'둔 채 사회생활에 몰입하는 경우고, 하나는 집안일에 몰입하는 경우다. '내팽개쳐'둔다는 말에 따옴표를 쓴 이유는 집안일에 소홀하고 밤이고 낮이고 성공을 위해 직장 일 혹은 자아 실현을 열심히 하는 기혼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말은 그것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동료건 부모건 그 누구건 할 것 없이 '팽개치'고 다니는 걸로 쉽게 말해지기 때문이다.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을 잘 혹은 최소한 작동하게 하기 위해 선택 직장 및 자아실현을 미루고 집에 있으면 82년생 김지영이 유모차를 밀고 공원에서 커피 한 잔을 들었다는 이유로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비록 현실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과장된 것이라 해도, 사회적 편견 혹은 불안감에서 오는 감정은 맘충이라는 말에서 전해지는 감정과 유사한 데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 관계망과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의 그 고립감과 불안감을 어느 누가 무엇으로 보상해줄 것인가이다.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주지 않는다. 아이를 떼어놓고 눈물 흘리며 직장에 나간 엄마가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그토록 달콤했을, 절대로 다시는 되돌아 오지 않을 간난 아기와의 시간들, 아기와 함께 보내느라 모두 다 잃어버린 사회적 관계망, 경력, 직장, 사회적 위치 때로 후자는 노력으로 전문성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믿기에 오히려 전문성을 갖춘 안전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육아를 위해 직장을 '잠시' 포기하기 쉽다. 


4차 산업사회가 만들어가는 미래의 사회는 여성이 성공하기에 유리한 사회라고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거 자체를 반기는 편이 아니다. 여성 전용 시트니, 여성 전용 기차니 그런 걸 만들기 전에, 그런 걸 만들 필요성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나은데, 그런 사회가 근대화 100년으로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먼저 여성을 보호한다? 뭐 그건 그들의 아이디어니, 그것 때문에 여험 현상들이 더 퍼지고 있더라도 별로 상관 않겠다. 성공한 여성이 되려면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여성을 착취하기에 아주 찰떡궁합으로 잘 떨어지는 말이고, 보통의 개인은 그럴만한 능력도 그럴만한 체력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그렇다. 어떻게 그 많은 집안 일을 다 하고, 또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나. 그만하자. 차라리 성공하지 말자.


사실, 책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내 생각이 우선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 한다. 자신도 엄청나게 힘겹게 성공했지만, 앞으로의 사회에서 여성의 예리한 감수성과 창의력 등의 여성에게 유리한 능력이 더욱 필요해지는 사회에 진입하게 되었으니, 그런 것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또한 자꾸 이렇게 피해의식에 있지 말고, 오히려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주었던 특권 같은 것, 힘든 일을 남성에게 미루거나 공주병 같은 거로 피해주지 말자는 그런 얘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