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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소설

[마일리스 드 케랑갈]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 10점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열린책들

육체와 정신은 양분될 수 없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이 정신을 관장하는 것과 같은 기관에서 이루어지므로, 정신의 모든 작용이 끝나면 육체 역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시몽의 심장이 뛴 이유는 시몽의 심장을 관장하는 뇌가 시몽의 다른 모든 정신적 조건들과 소통하며 심장의 박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뇌가 정신을 처리하지 못할 때, 뇌는 육체의 기관인 심장을 처리하지 못하고, 심장이 스스로의 몸에서 내는 에너지와 호르몬과 화학작용으로 뛰지 못할 때, 그 심장은 이미 죽은 자(뇌사자)의 통제하에서 벗어났으므로, 시몽의 것이 아니라고 간주한다(누가?)


불과 몇시간 전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도 소식을 듣고 백킬로미터를 달려 집채만한 파도를 넘나들던 활력 넘치는 시몽이 돌아오던 길 교통 사고로 죽어가고 있을 때,  아직도 푸른 파도를 향해 달려들던 그 쫄깃한 심장이 쿵쿵거리고 뛰고 있지만, 뇌가 더이상 기능하지 않아 뇌사 판정이 나자,  그 생명의 중지로 인해 반대로 꺼져가던 생명에 희망이 되는 사람이 있다. 뇌는 멀쩡한데 신체에 이상이 생긴 가람이다. 치명적인 장기 기능 장애로 기증 말고는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기증자가 생겨야 삶이 지속된다. 


장기 기증자는 스스로가 죽어야 기증할 수 있고, 죽은 자는 기증할 수 없으므로 장기 기증이라는 말은 상호 모순이다. 수혜자는 타인의 죽음으로 꺼져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삶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그것도 뇌사 판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급작스러운 비극적인 죽음, 사고를 원한다는 것에 도달한다. 심장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죽기를 원하며 자연사가 아닌, 죽기 전에 신체 기관들이 곱게 보존되어 있을 수 있는 상태의 충격적 죽음이어야 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기증자의 가족이다. 잠자듯 누워있는 아들의 심장이, 아직도 힘차게 뛰고 있는데, 그래서 아침에 전해들은 그의 사고 소식을 인정하기조차 어려운 부모들이, 뇌사 상태인 아들에 대해 과거가 아닌 현재 형으로 말하고 있는 부모들이, 장기 기증 권유에 대면한다는 것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다. 기증 여부는 평소, 사망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를 추론해서 보호자가 최종 결정한다. 


장기 적출 절차는.. 그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로 이어지지요. 예를 들자면 시몽이... 너그러웠는지를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147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정일까. 사망자는 아직 열아홉 아이이고, 그 아이의 평소 행동들에 유추해 아이의 정신으로 부모가 대신 결정해주어야 하는 기증 여부. 엄마는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면담자에게 말한다. 만일 아이가 만일 이기적이라고 말한다면, 이 면담을 끝낼 수 있는 거냐고. 


시몽의 육체는 마음대로 약탈해도 되는 장기저장고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고인의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해 본 뒤 거부로 결론 나면 절차는 중단됩니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되어 면허증을 발급할 때, 장기기증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를 표시함으로써,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쉽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유럽에서는 면허증 발급시, 별도로 표시하지 않으면 장기 기증에 자동으로 동의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어, 더욱 장기 기증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면허증에 선택적으로 장기 기증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은데, 찾아보니 그냥 면허시험소에 가서 면허증 바꾸면 되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이런 저런 서류들을 떼고 동의하고 그걸 가지고 다시 면허시험소에 가는 등 절차가 까다로와서, 기증 표시를 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쉽다. 어차피 죽을 인생, 아니 뇌사 상태라면 사망 상태라고 하니, 어차피 죽은 생, 신체 기관의 재활용이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갑작스런 비극, 도저히 그 죽음 자체를 납득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가족의 신속한 결정 상태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유럽의 현대 소설들이 조금 어렵게 읽히는 면이 자주 있는데, 그래서, 시작하려면 늘 한숨을 먼저 쉬고 시작하게 되는데,  장기 기증이라는 다소 자극적이면서도 르포르타쥬 형식을 연상시키는 소재를 보고 읽기 전, 살짝 망설였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읽기로 한 건, 그것들이 주는 낯설음에 기대감 때문이었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정말 새롭게, 사실적으로 정밀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시적인 감동을 주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첫시작부터 강렬한 시적인 언어가 시몽의 심장을, 그 심장이 처음 뛰었을 때부터  그 심장이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주요 순간들을 노래하는데, 가슴이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역사에 남을만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심장이 의미하는 것이 곧 비극적 소재가 될 것을 직감하는 독자들에게는 엄청난 무게의 감정을 싣게 된다. 


시몽 랭브루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을 튀어 오르고 울렁대고 벅차오르고 깃털처럼 가볍게 춤추거나 돌처럼 짓누르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그것을 녹아내리게 만들었는지(사랑), 시몽 생브루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p7)


시간 배경은 서핑보드를 시작한 이른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때부터, 사고가 나고,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들의 일상이 시작되고,  부모에게 사고소식이 통고된 아침과, 장기 이식 결정이 난 오후, 그리고, 숨가쁘게 시작된 수혜자 선정 작업과 각 병원의 담당의들이 활동을 개시해서, 적출과 이식이 이루어진 다음날 새벽까지의 24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르포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개입되지만, 깊이있는 감정의 세부적 변화와 내면의 세계들이 다루어지고, 전문적 사건의 전달 역시 매우 정교하고 핍진한 묘사에 기반한다. 전문적이란 것이, 새벽에 아이들이 서프를 하는 과정인데, 파도를 타는 세부 묘사가 압권이고, 장기 이식에 따른 절차적 과정 역시 이식자와 면담자, 의사들 사이의 묘한 긴장들과 감정선들이 세부적으로 다루어진다. 이식 수술 및 처리 과정 등의 의학적 절차는 말할 것도 없다. 


신파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부분이 여러군데 있었는데, 시몽의 심장 적출의 마지막 과정에서 의사가 부모의 부탁으로 그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mp3를 들려주는 장면, 그리고 심장 이식자에게 그 심장이 이식되면서, 작가가 그 심장이 듣던 노래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그랬고, 아들이 사랑한 여자친구 쥘리에트에게 소식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늦게까지 지연시키다가, 결국 말하고, 그녀가 추운 겨울 티셔츠 바람으로 뛰어 오던 장면 등등이다. 시간이 되면 한 번 더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