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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시원스쿨] Go 독학 러시아어 문법

재작년 쯤 러시아에 여행가려고 듀오링고로 러시아어를 몇 달 공부한 적이 있다. 문법은 전혀 손도 대지 않고, 단어 맞추기 게임식으로 조금씩 간단한 문장에서 조금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앱 덕분에 암기가 저절로 되니 즐겁게 몇마디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때 공부해둔 러시아어 알파벳을 그동안 모두 잊어버렸다. 사실 러시아어를 공부한 이유는 문자 자체가 너무 달라서 휴대폰에 입력하는 방법조차도 없으므로, 여행시 말도 못하는데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면 완전 장님 신세가 되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러시아 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불어 러시아 언어도 몇년 동안 고스란히 까먹었다. 얼마전 부산에 갔다가 러시아 거리에 있는 간판을 읽으려니 도통 더듬더듬 거려도 발음할 수가 없어서 전에 공부했던 것만이라도 다시 떠올려볼 생각으로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러시아어는 영어와 참으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찌보면 입문이 쉬워보이기까지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격변화가 엄청 많고 성도 많고 해서 같은 단어가 요리조리 굉장히 많이 변한다.  영어에 있는 여러가지 보조동사들이 모두 하나의 단어 내에서 격변화로 뜻을 완성시키는 듯하다.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러시아어를 조금 공부하다 보면 결국 문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진전을 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러시아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 책은 간단한 문법 책으로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나에게는 잘 안맞는 것 같다. 


제목에 입문에서 중급까지라고 되어 있지만, 입문은 어디까지나, 문법 입문을 말하는 것이지, 러시아어 입문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알파벳은 다 알고 있어야 하고, 간단한 회화 정도도 공부해서 간단한 문장을 읽을 수준이 되어야 문법 책을 읽을 수 있다. 영어도 그렇지 않은가, 뜻을 모두 풀이해놓고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러는 문법책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문장 읽는 것도 버벅거리고, 뜻도 거의 다 찾아봐야 되는 상태다 보니, 이 책으로 문법을 습득하는 데는 여러모로 고충이 있다. 


예로 든 문장들은 간단하고, 해석문이 다 나와있지만, 나의 작은 바람은 그걸 제대로 읽는 mp3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mp3와 동영상을 제공한다고 책표지에는 나와 있지만,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제공되는 5분짜리이고, 시원스쿨 홈피에서는 강의를 패키지로 판매하고 있을 뿐 이 책이랑은 크게 관계가 없다. EBS를 비롯해 많은 어문 책들이 본문 내용 중 원어 예제들을 mp3로 공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법인 경우는 그게 해당되지 않는 건지 이 책만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전에 공부하다가 부딪힌 부분 중 가장 문법적 지식이 필요해진 게 격의 개념이었는데, 가령 (듀오링고에서) 한글로 제시하는 문장을 러시아어로 바꾸면 틀렸다는 답이 나왔을 때 왜 틀렸는지 알아보면 대부분 격이 틀렸다는 거였는데, 거기서 막혀서 진도가 안나갔다. 격이라는 건 명사 형용사 대명사 등이 문장 내 쓰임에 따라 바뀌는 형태로 우리가 조사를 사용해서 문장 성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단어의 어미가 자유자재로 바뀌면서 문장의 구조를 완성한다. 이런 격이 러시아어에서 6개가 있는데, 주격, 소유격 까지는 영어에서 봐 와서 익숙하지만 나머지는 용어마저도 생소하다. 특히 여격이 어려운데 한글ㄹ는 ~에게로 번역된다. 그 밖에도 대격(을/를) 조격(~로서), 전치격 등 다 합해서 6개가 있고, 대개의 단어들은 이 6개의 형태변화와 성구분, 복수/단수형 등이 있고 함께 사용하는 전치사도 단어에 따라 다르다. 내가 이런 골치아픈 언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애초에는 글자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문법에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러시아는 북한 때문에 사방 그 어느 나라도 땅으로 닿지 못하는 우리나가와 가까이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부산 가면 러시아 사람들이 엄청 많고, 식당도 많다. 지리적 위치를 생각해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러시아와의 문화적 교류나 영향 같은 것을 서로 안받는 것 같다. 아마도 한국과 가까운 곳은 러시아로서는 아주 굉장히 변방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정리하면, 이 책은 어느 정도 글자를 읽을 줄 알고 기초적 단어도 뜻을 웬만큼은 알고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완전 초보 입문을 원한다면 알파벳과 회화 및 왕초보 탈출 같은 책으로 먼저 공부해야 할 듯하다. 나는 듀오링고로 컴백해서 좀 더 복습하고 다시 공부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