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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병리학 이야기

쉽게 쓰인 일반인을 위한 의학 교과서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기본 교육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의학'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었다. 퀘퀘묵은 시대의 이야기지만 내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물' 시간에 인간의 몸에 대한 구조를 배웠던 기억이 있고, 그 외에 몸과 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살면서 터득한 엉터리와 가짜가 섞인 불충분한 지식 뿐이다. 어딘가 갑자기 흔치 않은 몸의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달려가기 보다는 인터넷의 바다 속에서 우연히 건져낸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지식에 의존한다. 요즘은 유튜브 동영상까지 많아진 데다가 서로 모순된 정보를 전하는 각기 다른 전문가들의 정보들을 취합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있다. 메타분석을 전문가들이 하는 거지 환자가 직접 해야 하는 거냐구요.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인 스탠다드 국정 교과서의 독단성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처럼 개인의 생명과 삶의 질에 있어 가장 밀접한 분야에 대한 기초적 지식, 그러니까 예를 들어 수학의 미분과 적분 혹은 그보다 낮은 2차함수나 로그 뭐 그런 정도만큼의 콘크리트적으로 확립된 기본 의학 지식을 학교에서 가르쳤다면, 지금처럼 쇼닥터의 한마디로 국민의 의료 지식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세상에서 살지는 않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이 책의 성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만일 학교에서 배웠다면 딱 좋았을 법한 책이다, 그래서 정리 하고 영어 문장 외우듯 시험도 보고, 쪽지 시험도 보고 어쩔 수 없이 종이에 적어 달달 외우고 얻어맞고 벌 서고 그렇게 체화되어 졸업해서 어른이 되었다면 조금 덜 혼란스러웠을 거란 얘기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하는 마당에 일본 저자가 쓴 책을 리뷰하는 입장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흔하고 뻔하고 허술한 일본 번역서들과는 달리 실용적이고 알찬 정보 제공을 원하는 독자를 주된 타겟으로 하는 출판사의 취지에 맞게 빼곡하고 유익하고 정돈된 정보를 보여준다. 불매 운동은 불매 운동이고, 압제와 탄압, 그리고 치욕의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우리가 막 개화를 시작해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일 때 일본의 번역 한자어를 그대로 차용한 사실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우리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렵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우리하 흔히 쓰는 거의 대부분의 병명들, 개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의학 용어들이 일본에서 번역해서 만든 것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는 책이 흔히 쓰고 있는 거의 일반 언어와 같은 의학 용어들, 병명들에 대한 어원과 한자어 등 매우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서구에서 들어온 거의 모든 병명과 의학적 언어들이 일본어 번역 한자를 같이 쓰고 있다. 생로병사가 운명인 인간의 몸은 인간에게 평생 동안 관심사지만, 막상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겼을 때에는 의사와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거의 모든 지식을 의탁해야 하는 일반인으로서, 병에 관한 기초적이고 신뢰성있는 널리 받아들여진 지식을 묶은 이 책 병리학 이야기는 무척 유용했다.

 

세상에는 병도 많고, 치료법도 많고, 이론과 연구도 많아서 책이 언급할 수 있는 병의 종류는 제한이 있다. 하지만 병을 일으키는 기본적인 생리, 면역체계, 세포의 동작을 이해하면, 자신 혹은 주변사람이 아프더라도 답답함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이고, 또한 남의 아픔을 돈벌이 수단에 이용하려는 온갖 선동에 팔랑귀를 기울이다가 몸을 더 망치는 경우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병을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적어도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지식이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의학에 있어서 기초지식이란 다시 말하지만 일본식 한자어와 영어 병명의 경우 라틴의 접두 접미어가 조금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어디에 붙어있는 조직을 뭐라 부르는지, 이런 저런 화학적 작용을 뭐라 부르는지 등에 관한 용어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점에서 아주 일반적으로 쓰이는 병명들의 한자어 뜻풀이 및 번역어 어원 등을 유추함으로써 기본부터 충실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책의 제목이자 저자의 전공이자 이 책의 주 내용인 '병리학'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하고 시작하는데, 한자어가 지시하는 대로 병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 즉 병이 왜 생기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세포, 조직, 비대, 과형성, 위축, 괴사, 허혈 경색 등 병을 이야기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면서도 그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지 갸우뚱한 단어들의 정의를 읽는 것이 병과 병을 지칭하는 언어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실제로 필자가 의학대학에서 쓰는 교과서인 로빈스 기초 병리학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의학교과서는 9장의 내용이 세포의 구조, 세포의 손상 적응 죽음, 염증과 수복, 혈행 동태의 이상 혈전증, 쇼크, 면역 이상에 따른 질환, 종양, 유정성 질환, 소아 질환, 순환, 영양 질환, 감영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책은 크게  세포, 혈액, 암 총론과 각론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암의 총론과 각론이 부분이 거의 반을 차지한다. 

 

세포는 생명 속에 담긴, 개체의 생명을 구성하는 단위지만, 세포 그 자체 하나하나가 숨을 쉰다. 세포들이 합쳐져 덩어리가 되면 하나의 조직이 되고, 그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을 이룬다. 그러므로 세포에 생기는 현상들을 병리학적 측면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질병들의 원리들에 대한 개략적인 그림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온몸에 있는 제각기 다른 종류의 세포들은 자극과 상해에 반응해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비대와 과형성, 위축, 화생(이 용어는 한국의 일반인에게는 생소한데, 영어로 수업을 받는다는 의과대학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다) 등이 

 

그 예로 근육의 경우와 같이 세포가 분열할 수 없어 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비대와  유방의 경우와 같이 호르몬의 영향 등으로 분열하여 세포수가 증가하는 과형성, 반대로 부상으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근육이 세포 크기가 작아지는 경우와 같은 위축, 세포의 조직이 변하는 화생이 있다. 물론 이러한 크기 변화는 생리학적 변화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고, 병적인 경우가 있다. 비대의 병적인 경우의 예로, 고혈압 환자들은 심장이 압력을 받는 병적 상태가 놓이게 되고, 이러한 심근의 기능을 보상하기 위하여 심근 자체가 비대해진다. 이렇게 높은 혈압에 적응하기 위해 세포들은 비대로 대응하여 버텨주지만, 부하가 계속 걸리면 심장의 기능 자체가 불충분한 심부전이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병적인 위축의 예로, 혈관이 막혀 혈류가 줄거나 영양이 감소하는 경우 위축이 발생하는데, 이는 세포의 크기를 작아지게 함으로써 에너지의 소비를 억제하고 세포에 불리한 상태를 견디는 것인데, 어떻게 작아지느냐, 세포내 소기관들을 분해하여 먹어버림으로써 스스로 크기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토파지라고.

 

세포의 손상은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가역적 손상과 절대 원래 상태로 불가능한 불가역적 손상이 있다. 알콜 혹은 칼로리를 과잉으로 계속 섭취하면 간세포에 지방 방울이 꽉 차버리는데, 꾸준히 관리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비가역적 손상은 장기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거나 동맥이 막혀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가 죽어가며 장기 수준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경색이라고 한다. 흔히 얘기하는 뇌경색처럼, 경과 색 모두 막히다는 의미로 혈관이 꽉 막혀버려 어떤 장기의 대량의 세포가 괴사에 빠진 혈관이 막힌 상태다. 괴사가 생기면 염증반응이 생기고 백혈구가 몰려와 괴사한 세포를 탐식한다. 장기에 경색이 일어나 딱딱해진 상태는 응고괴사로 대부분의 장기의 불가역적 괴사는 응고 괴사지만 뇌의 괴사처럼 부드러워지는 융해괴사가 있다.  세균이나 진균 감염의 염증반응으로 백혈구가 와서 세균과 함께 그 부위의 조직이 괴사에 빠진 상태인 농(고름)이 있다. 따라서 농의 내용물은 죽은 세균이 여러 소화효소에 의해 걸쭉하게 융해된 상태다. 

 

이렇게 기초적이면서도 알아갈 수록 아 그랬던 거구나 끄덕끄덕 하게 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일본적인 미적지근한 농담 혹은 곁다리들이 중간중간 섞여있는데 산만할만큼은 아니고, 딱딱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읽다가 따분해지면 조금씩 숨을 돌릴만할 정도다.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라고 해도 한번 대충 쭉 읽고 구비해두면 필요할 때 궁금할 때 참조할만한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여러모로 유용할 책이다. 특히 반 이상을 차지하는 암 파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챕터 보다는 흥미가 덜했지만 암환자를 가족으로 둔 분들이 알아둘만한 상식적인 의학 지식을 제공하므로 뭘 먹으면 낫는다는 말에 현혹되기 보다는 이런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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