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두고도 계속해서 딴 쪽을 기웃거리다가 그 딴쪽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 딴 쪽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원래 하던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경우 그 사람은 참 성공적이다. 하고 싶은일 잘하는 일 그것 사이의 큰 구분이 없이 두 영역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니 말이다. 화첩기행을 쓴 김병종님은 원래는 화가였는데, 글을 잘 써서 십여년전? 아니 그 훨씬 전에 쓴 몇 권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계속 개정판이 나오고 있다. 이 분, 알고보니 글을 그냥 조금 잘 쓰는 정도가 아니라 서울대에서 각종 문학공모전에 글 써서 내고 수상받은 상금으로 용돈과 그림도구까지 벌어쓰신 모양이다. 그러니까 리뷰대회 나가서 10만원짜리 상품권 하나 달랑 받아가지고 좋아라 방방뜨는 사람이랑은 글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뭐, 이 글만 읽으면 크게 김훈이나 김연수님의 산문집과 비교해봤을 때는 딱히 글 자체만으로 크게 감동이 되거나 어떤 정보가 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은 이유 첫째, 텍스트와 사진이 조화있게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대개 이런 종류의 책은 크게 사진 위주의 책과 산문 위주의 책으로 나뉘어지는데, 전자의 경우 사진에 대한 설명 위주라서 텍스트는 사진을 보조해주는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 폼으로 독자의 감성에 부합되는 이런 저런 사진들과 그림들을 첨가하는 경우라서 때로는 별 의미도 없이 장수만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면서 텍스트가 없다면 사진을 보면서 제대로 느낌을 갖지 못했을 것 같고, 사진이 없다면 존재감없을 평범한 글이 되었을 뻔한 둘 사이를 서로가 살려주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긴 인생의 여정의 어느 순간 어떤 기회, 알고보면 선배의 압력으로 퇴촌의 남의 땅 위에 얹어져 있는 작은 집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땅주인이 성화를 해서 집이 깔고 앉은 땅을 사게 되었고, 땅과 집이 내 소유가 되니, 집이 허접하다며 다시 지으라는 주위의 권유와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런 저런 집들을 지을 생각을 하던 중, 왕십리에 재개발지구 한 가운데 있던 작은 한옥집을 옮겨짓게 되는 과정이 주내용인데, 그렇다고 딱히 집을 짓기 위한 실용적인 정보는 없고 집에 대한 예찬, 그 집을 만든 예술가들에 대한 예찬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역시 예술가시라 눈썰매와 인맥이 있어서, 국내에 내놓으라 하는 권위있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묵묵히 지키며 가꾸어온 아주 소수의 몇몇 장인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들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나무로 된 집 한 채를 짓고 함양당이라 이름짓는다. 책 제목이 예찬인데 예찬 맞다. 그 과정에서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사진작가 김남식님이 함양당의 구석구석을 사진찍어 주었는데, 그가 찍은 나무집의 표정들을 홀로 보기 아까운 이유도 이 책을 내게 되는데 한몫 했다는 설명이다.
김남식.. 뉴욕 타임스의 객원 사진기자인데 한옥 사진을 찍는 것은 아마도 함양당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함양당의 사계절 모습과 아침저녁, 그리고 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 기자재를 들고 수시로 한옥에 들락거렸다. 뚝심과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수도 없이 찍어 댔다. 그의 사진은 다분이 시적이다. 고무신에 떨어진 은행잎 하나나 장독대에 고인 빗물에서도 이야기와 정감을 이끌어냈다. 세계 최첨단의 도시에서 살다온 그가 한국의 전통 공간에 대해 찰나적인 직관을 동원하는 것을 보며 역시 실력자는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의 렌즈 안에서 함양당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났다(p85) |
어릴 때, 비록 전후 막 지은 집이긴 하지만 너른 마당에 과일 나무가 가득하고 꽃밭이 있던 한옥집에서 자랐다. 그 작은 꽃밭에 아빠가 봄이 되면 아이들을 목마 태워 데리고 동네 화원에 가서 모종을 사다 함께 심고 물 뿌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샐비아와 키작은 꽃들이 가득했던 꽃밭 앞 마당 한 가운데는 개집과 개와 수도와 펌프물도 있었던 한옥집에서 자란 기억을 간직한 나는 한옥집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사진만 봐도 아늑하고 그리운 느낌이 든다. 무슨 까닭인지 집에 식구도 많았음에도 햇빛이 말갛게 비치던 날 대청 마루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책을 보던 기억이 풍경처럼 되살아나곤 하는데, 2층 양옥집으로 이사 가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현관문으로 들어와 버리면 바깥 공간과 단절된 그 벽돌집이 답답했고, 끝까지 별로 애정을 갖지 못했었지만, 다시 눈오는 추운 겨울 신발을 챙겨신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그 불편한 나무집에 살라고 하면 노노. 그럴 순 없음이다.
아마도 나무집 예찬, 이 책은 대청 마루에 누워 쏟아져 들어오던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뒹굴거리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리만족으로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일 것이다. 가끔 사진은 실제 풍경보다 더 많은 서정을 이끌어낸다. 그 사진에 화가의 글, 집안 구석구석 목수, 철물공, 골동품 고미술가, 등등 여러 분야의 숨겨진 장인들이 만들어낸 소품들이 '시적인' 사진가의 눈에 잘 포착되었고, 또한 미술가의 글로 잘 포장되어 있다. 시집같기도 하고 선물같기도 한 책이다.
아마도 나무집 예찬, 이 책은 대청 마루에 누워 쏟아져 들어오던 햇볕과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뒹굴거리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리만족으로서 그 느낌을 공유하고픈 마음에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일 것이다. 가끔 사진은 실제 풍경보다 더 많은 서정을 이끌어낸다. 그 사진에 화가의 글, 집안 구석구석 목수, 철물공, 골동품 고미술가, 등등 여러 분야의 숨겨진 장인들이 만들어낸 소품들이 '시적인' 사진가의 눈에 잘 포착되었고, 또한 미술가의 글로 잘 포장되어 있다. 시집같기도 하고 선물같기도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