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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밖 여운/실용

[윤태성] 한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한 번 뿐인 인생은 불리해지면 다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일어나라, 다시 시작하라 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실패해서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실패한 기간만큼 내 삶도 지나간다. 실패가 거듭되면, 실패의 흔적과 상처가 쌓여, 고스란히 앞으로 남은 삶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의 빚이 된다. 사람의 인생에는 순차적으로 나이가 쌓이고, 두뇌의 세포가 변화하고 경험의 크기가 달라지고 생체적 특징과 정서적 변화도 겪기에, 어떤 나이에는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 뒤로도 앞으로도 마음대로 성급하게 방향을 틀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라는 책 제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이 조금 안된다. 인생은 한 번인데 '한 번'은 필요없는 말 아닌가,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고,  두 번 정도는 부모가 각각 원하는 인생을 살고, 또 한 번은 나라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을 읽고 나니 뜻을 알겠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뜻이다. 어떻게? 그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커리어 디자인'을 하라는 거다. 커리어 디자인은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이다. 커리어의 출발점은 인생의 오전이고,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등이다. 커리어 디자인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마다 지속적으로 디자인의 내용을 업데이트해가면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얼만큼 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커리어 디자인은 직업 원, 인생테이블, 인생조감도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백지에 내가 원하는 직업 세 개를 원 세개에 그리고, 서로 관련이 있는 만큼 원과 원 사이를 겹치게 그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직업 자체가 아니라 그 직업 내에서의 본질이다. 두번째로 연도별로 테이블을 그리고 왼쪽에는 연도를 적고 그 다음 컬럼에는, 중요 이벤트, 플랜 A, 플랜 B,  중요한 사람의 이름과 그들 각자에게 예상되는 미래의 갈림길을 적는다. 세번째는 첫번째 원들과 두번째 테이블들을 가시화한다. 이것은 인생의 조감도에 해당된다. 


인생 테이블에는 갈림길을 앞에 두고 어떤 준비를 했는지, 갈림길에서 결과적으로 어떤 플랜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등을 기록한다.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인생 테이블에 적는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은 항상 내 곁에 두고 고쳐나가는 것이 좋다. (p174) 


그러나 10년 후의 세상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세운 계획이 10년후에까지 비전이 보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생 테이블에 가까운 기간은 구체적으로 세우고 긴 미래는 내가 원하는 것의 본질적인 것이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손정의는 19세 때 이미 인생의 각 10년 주기마다의 엄청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이루었다지만, 그런 황당한 숫자들을 채우는 것보다는,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리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을 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인가, 혹은 나를 완전히 소모시켜 버릴 종류의 일은 아닐까 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과는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면 성공 그 자체가 주는 명예와 돈 외에도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품화할 수 있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별 시답지않은 신변잡기에서 흔하디 흔하고 뻔하디 뻔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인생철학을 활자로 엮어내도 되는 자격을 가지니까 말이다. 고로 성공담을 말하려면 성공해야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성공담을 먼저 말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는 것을 원하고, 또 그 성공의 뜻이 명예와 부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성공을 쫓는 사회 자체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행복도, 사랑도, 자존감도 모두 어느 정도는 최소한의 부가 뒷받침되어야 쫓을 수 있는 게 인류니까 말이다. 


나의 취미인 지적질을 좀 하자면, 커리어 디자인에 대한 설문 조사를 인용했는데, 출처가 없다. 시간을 잘게 쪼개어 관리하고 쓰라는 충고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독서의 예는 적절치 않아보인다. 매일 하루 10분씩 독서라니, 다음날 10분 읽기 위해 책을 꺼내 펼쳐 들고 어디 읽었는지를 찾아 어제까지의 내용과 연결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릴 뿐더러, 10분동안만 할 수 있는 독서라는 것의 얕음이 눈에 선하다. 독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시간관리가 중요하므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사이에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넣으라고 했는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더니 저자의 쉬는 시간이란 등산이나 운동 심지어는 책을 번역하는 것과 같은 취미생활에서부터 직업적인 일이 아닌 모든 걸 말하는 거였다. 이런 말장난은 큰 도움이 될 듯하지는 않다. 커리어디자인을 할 때 쉬운 방법으로 롤모델을 만들어 따라하라고도 했는데, 이렇게 시시각각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사회에서 한 사람의 긴 인생을 무턱대고 따라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예를 들어 작가인 윤태성 교수의 경우처럼 대기업을 나와 유학을 갔다가 일본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벤처도 설립했다가 들어와서 교수가 되는 것 같은 화려한 커리어는 본인의 능력 뿐만 아니라 그 시대적인 상황도 반영된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번역 자체가 휴식이라는 말에 선뜻 공감이 안가겠지만, 나로서는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그가 책에서 누누히 이야기했던 시간 쪼개기 신공과도 통하는데, 어떤 일이 잘 안풀리면 과감히 접고 뭔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나면 다시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때 만일 번역은 하고 있던 번잡한 생각들로부터 머리를 말끔히 비워주고 다시 그 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영감을 떠올릴 수 있다. 전공서적은 세 번은 읽으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전공을 빼도 이 말에는 공감한다. 별 내용도 없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을 정독하면서 세 번 정도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니까 좋은 지식은 반복해서 읽는 도중 휘발되는 양이 줄어들 것이다.